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여부가 한-미 정상회담의 후폭풍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재협상 중이다”라고 밝힌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상회담의) 합의 외의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재협상 카드를 꺼내든 배경을 두고, ‘트럼프식’ 엄포 놓기라는 해석부터 본격적인 개정 협상을 위한 ‘터 다지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오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과 무역(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하고 있으며, 공정한 협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입장은 이날 오후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다시 확인됐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다시 재개된 것이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재협상과 협정 개정을 위한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특별 공동위원회를 소집 중이다”라고 말했다. 특별공동위 언급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기 위한 협의 채널을 열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협정문 22장을 보면 공동위원회는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1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합의 외의 얘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세계 교역량이 12% 줄었는데 한-미 교역량은 12% 늘었다. 상품에서는 미국이 적자를 보지만 서비스에서는 우리가 적자, 투자도 미국에 많이 돼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도 시정의 소지가 있다면, (미국이) 관세 외 장벽을 얘기한다면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유무역협정 영향 등을 조사, 분석, 평가해보자고 역제의하는 것으로 끝났다”며 회담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회담에 배석했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재협상에 대해 한-미 양측간 합의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재협상 논란이 ‘보호무역주의’를 선언한 트럼프 행정부의 ‘엄포 놓기’ 행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국제통상학)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지렛대로 삼아서 한국 정부가 알아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할 것을 압박하는 트럼프식 협상 방식을 활용하려는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백악관 브리핑 내용에 대해 “미국 자체 절차”라고 일축하면서 “미국 쪽이 준비가 부족한 듯 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협정문에 대한 재협상은 형식적으로 상대국의 합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개정 협상까지 이뤄질 경우,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무역수지 등에서 불만이 있는 부분은 ‘공동위원회’를 통해 논의해 고치도록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이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검토 과정에서 어떤 용어를 쓰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잘 살펴서 우리 정부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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