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일자리위원회 위촉장 수여식에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과 박병원 경총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의 첫 만남이 향후 5년간 문재인 정부와 재벌의 관계가 협력과 갈등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모임을 준비한 대한상공회의소는 21일 김 위원장과 4대 그룹 간 만남이 23일 오후 2시 서울 남대문로 상의회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4대 그룹의 참석자는 총수가 아닌 최고위급 전문경영인으로 조율됐다. 현대차는 대관담당인 정진행 사장, 에스케이(SK)는 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자 에스케이텔레콤(SKT) 대표인 박정호 사장, 엘지(LG)는 그룹 지주회사인 ㈜엘지의 대표인 하현회 사장으로 확정됐다. 그룹 컨트롤타워가 해체된 삼성은 삼성전자 대표인 권오현 부회장과 최고재무책임자(경영지원실장)인 이상훈 사장 중에서 정하기로 했다.
자료 : CEO스코어(2014년부터 2017년 1분기까지 기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강철규 공정위원장과 4대 그룹 총수 간 회동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회동 시간과 장소를 알아내려고 언론사의 취재 경쟁이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이번 회동은 공개로 진행된다. 대한상의는 김 위원장과 이동근 상근 부회장의 인사말까지 언론에 공개하고, 이후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최대 관심은 4대 그룹이 어떤 답을 내놓느냐로 모아진다. 김 위원장은 “재벌이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맞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며 “이런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계속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정위가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이미 화두를 던진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향후 재벌과 직접 만날 계획이어서, 재벌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변화의 압력에 직면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4대 그룹이 새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많다.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그런 자리에서 기업이 어떻게 정부 정책에 대해 딴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 정부가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마련하면 잘 맞춰 나가겠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또 다른 4대 그룹 임원은 “기업들은 김 위원장의 얘기를 주로 듣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검토 중인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4대 그룹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는 ‘선물’을 준비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10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대다수 기업들이 문재인 후보의 당선에 대비해 대선 전부터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 불공정행위 등 법 위반 소지가 있는 취약 분야를 중점 점검하고 개선 노력을 폈다”며 “상위 그룹들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일자리 창출 대책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솔직히 4대 그룹이 변화에 앞장선다면 나머지 하위 그룹들은 대부분 따라갈 것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1분까지 최근 3년여 동안 공정위의 30대 그룹 제재 건수는 모두 318건, 제재 금액은 1조3천억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4대 그룹의 제재 건수는 88건(28%), 제재 금액은 5826억원(45%)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