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풀고, 한국은행은 죄고.’
12일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으로 새 정부의 거시 경제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 재분배를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는 공격수를, 한은은 금융시장 안정 등에 주목해 돈을 현재보다 덜 풀거나 죄는 수비수 역할을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긴축 재정·통화 완화’ 정책을 편 박근혜 전 정부와는
180도 다른 정책 조합이다. 이 총재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회동을 갖는다.
이날 이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한 발언의 배경은 달라진 대내외 경제 환경에 있다. 올해 들어 수출과 설비투자는 뚜렷한 개선세를 보여왔다. 반도체 등 특정 업종에 기댄 회복세라는 평가도 있지만 지난해 심각한 부진에서 점차 벗어나는 흐름이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에 온기가 돌면서 수출 중심 경제 구조인 한국이 즉각 수혜를 입는 모양새다.
한은은 물가 안정을 통화정책 운용의 목표로 삼는다. 경기 회복세와 유가 상승 영향으로 소비자물가는 올들어 2% 안팎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이며,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이다. 지난해보다 물가 상승폭이 커졌으며, 그 수준은 한은이 삼고 있는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속도를 높여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발걸음도 한은으로선 부담이다. 한-미간 정책금리 차이는 조만간 0%에 수렴할 예정이다.
한은은 이런 기조 변화를 여러차례 내비쳐 왔다.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이 총재는 “경기 여건을 고려할 때 현재의 금리 수준은 충분히 완화적”이라고 말했다. 시장 일부의 금리 추가 인하 기대를 자른 것이다. 지난 4월 펴낸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 금리 수준을 ‘완화적’이라고 제시했다.
금리 인상 단행 시기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한은도 이 총재의 발언이 확대 해석되는 데 경계감을 드러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총재가 긴축을 시사한 것은 아니다. 성장경로 불확실성이 크고 당분간 물가 상승압력이 제한적이라는 언급도 했다. 경기회복세가 뚜렷이 개선될 때 (통화 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새 정부에서 통화 정책의 큰 물줄기를 중립 혹은 긴축으로 바꾼다는 속내는 감추지 않았다. 윤 부총재보는 “지난 번(5월25일) 이 총재의 메시지는 기준 금리 추가 인하 필요가 줄었다는 데까지 갔는데 이번에는 반걸음만 더 가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가는 “올 4분기에는 금리 인상 관련 시그널이 더 강해지며 내년 1분기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선 이 총재의 퇴임 시기(내년 4월)와 금리 인상 시점이 연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은의 이런 변화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통화정책이 수비수 역할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정부가
재정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자산가격 급등 등 부작용을 줄이는 쪽에 힘을 싣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최근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데 이어 문 대통령 임기 동안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을 기존 계획보다 두 배(7%)가량 높게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부총재보는 “최근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날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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