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1989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강등한 24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시민들이 주식시황을 보여주는 증권회사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5일 ”중국의 채무 수준은 평가 등급이 높은 서구 국가와 비교해 이례적인 수준이 아니다”라며 무디스가 서구 국가와 다른 이중잣대를 중국에 들이댄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4일, 중국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었다. 무디스는 중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Aa3보다 한 단계 낮은 A1으로 강등하며 “국제금융기구(IIF)의 통계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와 정부 기업의 총부채 비율이 2016년 말 256%까지 급등했다”고 지적했다.
(내용보기) 특히 무디스는 “이상과 같은 부채 규모는 높은 국가신용등급을 받는 나라에 일반적이지 않으며, 중국의 금융시장이 더욱 발전하는 것은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가야만 타당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며,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제 전반에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료: 홍춘욱 외(2016), “중국주식 선강퉁”(※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경고를 던진 곳은 무디스뿐만 아니다. 지난해 5월 세계적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특집기사를 통해 “이렇게 단기간에 부채가 폭증한 나라치고 금융위기를 피해 간 사례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용보기) 물론 중국 정책당국 입장에서 할 말이 많겠지만, 기업 및 정부부문의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 자체에 대해 제동을 걸 필요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왜 중국 정부는 개혁을 미루고만 있을까?
이에 대해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세계적인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 교수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내용보기) 그는 경제가 좋을 때가 아닌,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가 구조적인 개혁을 추진할 적기라고 역설한다. 잠깐 그의 이야기를 청취해보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시장에서의 행동을 통제하는 제도 혹은 규제의 변경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혁은 단기에는 일정한 비용을 유발하지만, 잠재적으로 경제에 큰 이익을 주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개혁에 대한) 소수의 반대가 경제적 성과 향상 등을 통해 충분히 보상될 수 있다고 보지만, 개혁 정책이 제때 추진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중국의 국영기업을 개혁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일부 부실한 기업들을 파산시킴으로써 규율을 강화하며, 더 나아가 국영기업에 집중된 자원을 혁신적인 부문으로 보냄으로써 중국경제는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에 대해 라구람 라잔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 번째 문제는 개혁의 이익이 당장 대중들이 확인할 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자율 상한제의 철폐를 고려해보자. 대중들은 이자율 상한 폐지로 대출금리가 더 상승할 것이라고 걱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자율 상한제가 제거되면, 이자율은 대출에 따른 위험을 반영하여 대출이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 이자율 상한제는 오히려 대출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매우 안전해 보이는 사람이나 기업에 대해서만 대출해 주려 들기 때문에, 모험적인 사업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아예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그림자 금융 문제다. 신용도가 높은 대출자(ex 중국의 국영기업)가 자신이 받은 대출을 일종의 경매에 넘기는 것이다. (중략)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더 웃돈을 받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에 대출해 줄 수 있기에) 정부로부터 일종의 보조금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영기업들은 ‘매우 안전해 보이기에’ 국영은행에서 매우 낮은 금리로 대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반면, 혁신을 주도하는 중국 민간의 기업들은 돈을 조달할 방법이 없으니 국영기업들에 더 웃돈을 주고서라도 대출을 받으려 들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 국영기업들은 혁신 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요구해 결국은 국영기업이 혁신적인 민간기업의 사실상 소유주가 되는 일도 빚어질 것이다.
자료: 중국인민은행(※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라구람 라잔 박사는 경기가 나빠졌다 좋아질 때, 그때가 바로 개혁을 추진할 적기라고 지적한다.
경제가 하강국면에서 회복국면으로 접어들 때 개혁을 시작하라. 왜냐하면 경기의 하강은 사람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며, 더 나아가 경기의 회복은 더 빠른 보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흑자를 이용해 개혁을 사들여라. 개혁은 아무리 최적의 시간에 추진되더라도 힘든 일이다. 손실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상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때가 아니면 언제 사용하려는가?
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개혁으로부터 시작하라. 무역 및 금융시장 개혁은 단기에 즉각적인 편익을 제공한다. (중략)
외부의 지원을 확인하라. 국제적인 조약 체결 혹은 국제적인 클럽 가입은 외부에서의 개혁에 대한 압력을 제공한다.
라구람 라잔 박사의 네 가지 팁 중, 가장 마지막 부분에 눈길이 간다.
무디스와 이코노미스트 등 외부의 관찰자들은 중국경제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이런 외부의 지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개혁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무산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3년에 걸친 수출 감소 국면이 이제 마무리되며 경제성장률이 개선되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건전한 중국의 재정여건은 국영기업(및 금융제도) 개혁으로 발생할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중국 정책당국이 모처럼 맞이한 호기를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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