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코드 맞추기’에 나선 각 정부 부처는 전임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추진했던 ‘정부3.0’ 개념을 축소·폐지하고 나섰다. 사진은 2013년 6월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부 3.0 비전 선포식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관료 사회가 재빨리 ‘코드 전환’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대해 적극 검토하는 한편, 참여정부 시절 국가비전 보고서를 다시 꺼내보는 풍경도 엿보인다.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문 대통령의 1순위 공약이었던 ‘일자리 추경(추가경정예산) 공약’에 대한 태도를 180도로 바꿨다. 기재부는 5·9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10조원 규모 일자리 추경’ 공약에 대해, 국가재정법이 정하고 있는 추경요건(경기침체, 대량실업)을 들어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기회복세가 완연하다는 판단이었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1분기 경기지표만 봐서는 추경을 편성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는 지난 12일 ‘최근 경제동향 5월호’에서 “일자리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고용의 질적 개선이 미흡하다”며 추경 편성을 공식화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미 관련부서에서 추경과 관련된 사항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코드 맞추기’는 예산당국뿐만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정부 부처는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추진했던 ‘정부3.0’ 개념을 축소·폐지하고 있다. ‘정부3.0’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18대 대선 당시 가장 먼저 발표한 공약이었다. 부처별 칸막이를 없애고, 공공정보를 국민들에게 공유하겠다는 취지였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정부3.0 로고와 관련 직제 등을 모두 폐기하는 중”이라며 “정부3.0의 이념과 업무 자체는 이어가야겠지만, 네이밍 자체가 지난 정부와 강하게 연관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 관련 안내 책자와 홍보물, 관계 업무 등도 자취를 감췄다. 참여정부 당시 정책기조에 대한 복습이 이뤄지기도 한다. 한 국책연구기관은 최근 참여정부 당시 정책 자료를 살펴보라는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연구위원들이 과거 보고서를 꺼내들고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제부처 일부에서도 참여정부 시절 복지국가로 가는 청사진을 제시한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전 2030’ 보고서가 정책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민간 합동작업단이 작성해 2006년 8월에 나온 ‘비전 2030’ 보고서는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인 복지지출 비중을 높이는 등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강조한 복지확충 등의 과제와도 관련이 깊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발탁 인사가 ‘참여정부’ 코드에 대한 명백한 신호를 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이런 기류가 좀더 빠르게 퍼진 측면도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참여정부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당시 비전과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관가에서는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새 정부 내각 구성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홍남기 실장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선 장관 인선에 앞서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실무형 차관’을 미리 임명해 정부 운영을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 국무조정실장은 매주 목요일 각 부처 차관들을 모아 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기재부의 과장급 간부는 “신임 국무조정실장이 당장 시급한 정부 운용의 공식 채널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은 차관회의의 역할이 크지 않았지만, 당분간은 사실상 미니 국무회의로 역할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김경락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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