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지배하고, 특히 혁신산업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나오는 답이 ‘미국의 뛰어난 인재’이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에서 미국의 학생들은 과학 분야에서 항상 최하위권 성적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답은 아니다. 참고로 PISA란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성취도를 측정하는 대규모 시험으로 2000년 이후 3년마다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두 가지 면에서 압도적인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벤처 캐피탈 업계의 막대한 자금력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의 인재를 미국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소프트 파워가 그것이다. 여기서 소프트 파워란, 국방력 등의 이른바 하드 파워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의견에 동조시키는 능력’을 지칭한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유럽 등의 다른 경쟁자에 비해 소프트 파워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두뇌 유출(Brain Drain)이다. 한국의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에 유학 간 다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은 일은 매우 빈번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해외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이민자들은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 걸까?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의 책 <직업의 지리학>은 “이민자의 기여가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고 답한다(책 352페이지).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 내) 소수민족들의 혁신 기여도를 측정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미국 특허청이 이 문제를 추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경제학자 윌리엄 케르가 마케팅 담당자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소수민족 성(姓)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 어느 소수민족이 미국의 기술 발전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지를 측정했다.
예컨대 어느 발명가의 성이 ‘창’이면 중국인으로 분류하고, 만약 성이 ‘굽타’라면 인도인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케르 교수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소수민족 발명가들, 특히 중국 및 인도계 발명가들에게 1990년대에 교부된 특허의 비율 증가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비단 ‘특허’ 분야에서만 이민자들의 약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민자들의 힘은 바로 ‘창업’에 있다(책 354~355페이지).
외국 태생 근로자들은 미국 노동 인구의 15%를 차지하지만 모든 엔지니어 중에서는 1/3, 박사학위가 있는 노동 인구 중에서는 절반을 차지한다. 이민자들이 없다면 미국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과학 분야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중략)
더 중요한 것은 이민자들이 창업할 가능성이 비(非) 이민자보다 30% 이상 더 높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1990년 이래 벤처 지원을 받은 모든 상장 기업의 25%를 차지하며, 매출 100만 달러 이상 신생 첨단 기술 기업의 25%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성공은 뛰어난 이민자를 잘 유치한 덕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뛰어난 이민자들은 저숙련 미국인들의 직장을 뺏기보다는 더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책 356~357페이지).
고숙련 이민자들의 효과는 특히 저숙련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인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숙련 이민자들은 저숙련 미국인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집단은 서로를 보완하는 데, 이는 고숙련 이민자들의 증가가 저숙련 미국인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기업들은 고숙련 이민자들의 유입에 대해 투자 증대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신규 투자는 저숙련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추가로 높일 수 있다.
셋째, 숙련 이민자들은 지역 수준에서 지식 전파자로 역할한다. 왜냐하면 한 도시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개인들의 증가는 지역 경제를 강화하며, 따라서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토착민들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제니퍼 헌트는 최근 어떤 종류의 고숙련 이민자가 미국 토착민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를 밝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대학교육을 받은 이민자들의 상세한 표본을 사용해 그녀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박사 취득 후 연구원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하는 사람들이 독창적 연구와 특허를 발생시키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스스로 그 복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 행정부가 이슬람 국가 출신의 영주권자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직 이민(H-1B visa)마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H-1B visa를 통해 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람들은 매년 8만 5,000명에 달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H-1B visa 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 개혁에 나설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H-1B visa가 몰려드는 지원자로 인해 일종의 로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쿼터마저 줄어들 경우 미국으로의 취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질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잠깐 한국의 현실을 보자. 한국은 항상 두뇌 유출의 피해 국가였으며, 이 결과 안 그래도 부족한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분야의 인재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아래의 ‘표’는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자료 “’14~’24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에서 인용한 것으로, 인문/사회/사범 계열에 엄청난 공급과잉이 발생한 반면 공학/의학 계열에서는 반대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답답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1990년대 대학 진학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과정에서 4년제 대학의 신설 및 입학정원 증가가 나타났으며, 특히 많은 투자가 필요 없는 인문/사회/사범 계열 전공 입학정원이 상대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4년 “대학 교육의 질 제고 및 학령인구 급감 대비를 위한 대학 구조개혁 추진 계획”을 발표하여, 새로운 대학 평가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부실 대학을 퇴출하고 정원을 감축하는 중이다. 다만,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국경제는 인문/사회/사범 전공자의 공급과잉과 공학/의학 전공자의 공급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대안은 바로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H-1B visa’ 제도의 도입 및 강화가 아닐까?
미국이 스스로 세계 최고 인재 유치의 문을 닫아 버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삭줍기를 하자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경제 내에 어마어마한 유휴인력이 존재하는 데 다시 인력을 수입하자는 것에 대해 감정적인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직업의 지리학>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뛰어난 인력의 수입에 따른 경쟁력의 강화 및 창업 증가는 더 많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을 높인다.
어차피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경제이며, 최근 각처에서 제기하는 비관론의 근원도 결국은 ‘수출 부진’에 대한 우려 때문 아니겠는가? 따라서 뛰어난 외국인을 수입함으로써 경쟁력을 개선하고 창업활동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비관론의 근원을 제거하는 일 아닐까? 15~64세의 생산활동인구가 2016년부터 줄어든다며 자산시장의 붕괴 가능성을 걱정하기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준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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