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3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 한 뒤 인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3일 정경유착 근절, 투명성 강화 등을 담은 혁신안을 내놓고 이름까지 한기련(한국기업연합회)으로 바꿨다. 그러나 ‘재벌총수 모임’이라는 기존의 전경련 위상을 대체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해체론을 고수하고, 대한상공회의소도 대기업 대표 기능 강화에 나서는 등 ‘3중고’에 직면하면서 위기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혁적 시민단체들은 29일 일제히 전경련 해체를 재촉구하고 나섰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우찬 소장(고려대 교수)은 “전경련 혁신안은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없어 국민에게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전경련 스스로 해산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사단법인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지난해 이후 19개 공공기관이 전경련을 탈퇴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전경련이 아무리 이름을 바꿔도 해체를 통한 근본 쇄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회원사들의 탈퇴 러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혁신안에 대한 반응이 이처럼 싸늘한 것은 형식적인 대국민 사과로 국민의 신뢰를 못 얻은 점과 함께 ‘재벌총수 모임’이라는 기존의 위상을 대체할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실패한 요인도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전경련은 기존 회장단회의를 없애고 회원기업의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경영이사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허창수 회장은 이에 대해 “대기업 오너 중심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재벌그룹 총수들로 구성된 회장단회의는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그동안 전경련의 상징과도 같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달 한 차례씩 열려 경제 현안을 논의한 뒤 재계의 공동 입장을 발표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 이전의 회장단회의에는 삼성 이건희, 현대차 정몽구, 에스케이(SK) 최태원, 엘지(LG) 구본무, 롯데 신동빈,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4대 그룹의 집단 탈퇴에 이어 회장단회의 폐지로 전경련은 재벌총수들이 주도하고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라는 기존의 위상을 모두 잃었지만, 뚜렷한 대안 제시가 없는 상태다. 경제5단체의 한 간부는 “대한상의, 경총,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 규모와 분야별로 이미 여러 경제단체가 있는 상황에서 전경련이 굳이 이름까지 바꿔가며 계속 존속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경영이사회를 20대 그룹이 추천하는 전문경영인들로 구성하고, 그룹 총수들도 전경련 산하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계속 활동할 예정”이라고 해명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는 않고 있다.
대한상의가 대기업위원회의 신설을 추진하는 것도 전경련의 숨통을 조이는 요인이다. 대한상의는 “대기업 회원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기존에 활동 중인 중소기업위원회나 중견기업위원회와 비슷한 대기업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에 대기업위원회가 신설되면, 대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제단체가 필요하다는 전경련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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