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혁신안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해체’ 대신 이름을 바꿔 새 출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칭 변경과 함께 주요 회원사들의 탈퇴로 자연스럽게 강요된 조직 축소가 혁신안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전경련은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직과 예산을 40% 이상 감축하고, 대기업과 극우단체 등을 연결하는 지원 통로로 쓰인 사회협력회계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정치와 연계될 수 있는 고리를 원천 차단하겠다. 부당한 요청에 따른 협찬과 모금활동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도 “이제 돈(사회협력회계)도 없고 조직도 없어서 만약 청와대가 (모금을) 원한다면 개별 기업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단체 이름도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바꾸기로 했다.
혁신안 내용을 보면, 기존 7본부를 1본부 2실로 바꿔 경제계의 국내외 소통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축소한다. 재벌 총수들 중심의 회장단회의는 폐지하고 경영이사회를 꾸린다. 전경련은 “이사회 중심으로 바뀌면 사무국의 독단적 결정 등의 관행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활동과 재무 현황을 연 2회 누리집을 통해 공익법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기존 경제·산업 본부의 정책 연구 기능은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해 이 연구원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조직·예산을 축소하겠다고 했지만, 일부는 산하기관으로 이관되는 것이다. 허창수 회장은 “대기업 이슈에 국한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같은 국가적 어젠다의 해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 자금줄 역할을 해온 삼성을 비롯해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한 상황이라 불가피해진 조직과 예산 축소를 쇄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경련은 앞서 싱크탱크 전환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혁신안의 핵심은 이름 바꿔 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재벌들의 탈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조직 축소라는 지적에 대해 권태신 부회장은 “해체 문제를 두고 언론사와 국회의원, 회원사 사장들을 만난 결과, 많은 분이 전경련은 고유 기능이 있어서 존속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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