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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두환·차떼기·어버이·미르…정경유착 ‘끝판왕’ 전경련 운명은?

등록 2016-10-09 12:00수정 2016-10-10 09:28

[경제의 창] 전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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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미르 및 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과 관련해 해체 압력을 받고 있다.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는 물론 같은 보수진영인 여당 의원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언론들까지 해체론에 동조하며, 전경련은 설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1961년 출범한 전경련은 ‘경제단체의 맏형’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계에서 대표성을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그룹들조차 “전경련이 기업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무용론’을 말한다. 전경련은 왜 사면초가에 직면했을까?

전경련의 55년 역사는 밝은 빛과 어두운 그림자가 교차한다. 설립 과정부터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전경련은 스스로의 뿌리를 1961년 창립한 한국경제협의회에서 찾는다. “민간경제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설립된 순수 민간종합경제단체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데 설립 목적을 두었다.” 하지만 진보 성향인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전경련의 출발은 재벌기업들이 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부정축재자 처벌’을 피하는 대신 경제 재건에 헌신할 것을 약속하면서 설립한 경제재건촉진회”라며 전경련이 태생적으로 정경유착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전경련의 역대 회장을 살펴보면, 초대 삼성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현대 정주영, 엘지(LG) 구자경, 에스케이(SK) 최종현, 대우 김우중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의 얼굴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모두 한국 현대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 기업인들이다. 전경련 회장이 한때 ‘재계의 총리’라고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2004~2007년 전경련 회장 역임)은 ‘전경련 50년사’에서 “36년간의 일제 침략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피폐해진 이 땅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진 경제인들이 조국 근대화를 위해 힘과 의지를 모았다”며 “전경련은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온 주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해 왔다”고 자부했다. 전경련 해체론을 펴는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도 산업화 초기 전경련이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는 국내 자본이 없었고, 수출 중심이 되다보니 한국경제가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힘을 합쳐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대기업 모임인 전경련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전경련은 지금도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경제사절단의 참가 기업 모집을 주관하고, 정부와 민간의 각종 위원회에 경제계 대표로 참석하는 등 대한상의와 함께 경제단체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진보-보수 해체론 한목소리 ‘사면초가’
미르·K스포츠 의혹으로 최대 위기
재벌들도 “도움보다 부담된다” 외면

55년 역사 빛과 그림자 교차
“정부와 손잡고 경제발전 기여” 평가
이병철·정주영·구자경·최종현 등 수장
‘재계 총리’·‘경제단체 맏형’ 영예

5·16 쿠데타세력과의 정경유착 산물
“부정축재 묵인 대신 경제재건” 타협
전·노 비자금, 차떼기 대선자금 등 얼룩

87년 민주화·97년 외환위기에 내리막
재벌 기득권만 대변, 시대변화 적응 실패
환경변화 적응 못해 사라진 공룡 닮은꼴

“사무국도 권력 민원창구 전락” 원성
싱크탱크 전환·상의 흡수통합론도

하지만 전경련이 남긴 그림자는 빛만큼이나 짙다. 설립 이후 정경유착의 창구 역할을 하며 각종 특혜와 부정부패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모금한 사실이 5공 청문회에서 밝혀졌고,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한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유죄 선고를 받자 “음성적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은 계속 이어졌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23개 대기업에서 166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세풍사건, 이른바 ‘차떼기’로 유명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서도 지난해 교과서 국정화와 야당 후보 총선 낙선운동에 앞장선 자유경제원에 매년 20억원씩 지원하고 있는 게 밝혀졌다. 올 들어서는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불법적으로 자금 지원을 한 사실에 이어 급기야 대통령 비선 실세와 청와대 개입 의혹이 제기된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사건이 터졌다. 김상조 소장은 “정경유착은 전경련이 설립목적으로 내세우는 자유시장경제 창달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며 “전경련 스스로 설립목적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전경련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회장단회의가 수년 전부터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전락했다. 회장단회의는 현재 허창수 회장을 비롯해 19명(이승철 상근부회장 제외)의 주요 그룹 총수들로 구성돼 있지만, 그 중 상당수가 사실상 유고 상태다. 롯데 신동빈, 한화 김승연,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은 불법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처벌 절차가 진행중이다. 한진 조양호, 동부 김준기 회장은 그룹 경영난으로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전경련의 대주주 격인 현대차 정몽구, 엘지 구본무 회장은 바쁘다는 이유로 수년째 전경련을 외면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장기 불참자인데, 2014년 5월 이후는 아예 병환으로 누워 있다. 두산 박용만 회장은 2013년 대한상의 회장에 선임된 뒤 사의를 밝혔다. 결국 회장단회의에 정상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총수는 정원의 절반 이하다. 상위 10대그룹 총수로는 지에스 허창수, 포스코 권오준 회장 둘뿐이다. 이전에는 격월로 회장단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 사전 고지가 되고, 회의를 마친 뒤에는 별도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장단 회의가 비공개로 바뀌었고, 지금은 회의가 언제 열리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아예 관심 밖이 됐다.

‘재계 총리’로 불리던 전경련 회장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1998년 김우중 회장이 맡을 때까지만 해도 상위 그룹 총수들이 돌아가며 맡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김 회장이 대우 부도로 1년 만에 중도 퇴진한 뒤에는 모두들 외면하고 있다. 결국 경방의 김각중, 동아제약 강신호, 효성의 조석래 회장 등 중하위 그룹의 총수가 등 떠밀리듯 맡다보니 전경련의 구심력은 더욱 약화됐다. 2011년부터 재계 6위인 지에스의 허창수 회장이 상위 그룹으로는 오랜만에 회장직을 맡았으니 이미 무너진 전경련의 위상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9월1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20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이 대한상의 주최로 열렸다. 4년 전 19대까지는 전경련이 경제 5단체를 대표해서 주최하던 행사다. 올해도 원래는 4·13 총선이 끝난 뒤 전경련이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불법 지원 사건이 터진 뒤 국회의원들이 전경련 주최 행사에 참석하기를 꺼리는 굴욕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한상의가 뒤늦게 경제 5단체를 대표해 주최한 행사는 국회의원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전경련의 위상 추락은 한국 사회의 변화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1987년 정치 민주화는 재벌들의 정경유착이 힘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4대그룹의 한 전직 사장은 “(재벌의 대마불사 신화가 무너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경련의 영향력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4년 정치자금 제공을 엄격히 제한한 ‘오세훈법’(정치관계법)은 정치자금 모금창구 역할을 하던 전경련에 결정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본격화하고 재벌들 간에도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부상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불렸던 재벌이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죽이는 ‘갑질’의 대명사로 몰렸다. 전경련 출신의 한 재계 인사는 “전경련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기업과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계속 혁신을 해야 하는데 소수 재벌의 기득권만 대변하는 모습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마치 한때는 지구의 지배자였으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망한 공룡처럼….

“전경련이 국가 경제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경제단체로 재도약하기 위해, 전경련 발전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했습니다.” 2013년 11월 전경련 회장단회의 발표문 중 일부다. 전경련은 외부 비판이 쏟아지자 한때 혁신 추진을 선언했다. 하지만 2014년 2월 총회에서 발표한 결과는 초라했다. 경제계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에스엠엔터테인먼트, 하나투어 등 50여개 중견기업들을 신규 가입시킨 게 고작이었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회적 책임 강화를 내걸고 윤리경영 실천 등을 담아 발표한 ‘경제계 기업경영헌장 및 실천지침’도 어버이연합 불법 지원,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의혹에서 드러나듯 ‘말장난’으로 끝났다. 2011년 취임한 허창수 회장은 2년 주기 총회 때마다 “국민들이 경제계의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으나 보여준 게 없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위기의 중심에는 회장단을 보좌해 내부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국이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사무국은 2013년부터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경련 사무국은 지난 4월 어버이연합 지원에 대한 의혹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사건 진상을 묻는 언론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 의혹으로 해산론이 쏟아지는 것과 관련해 대국민사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생각해본 적 없다. (사과는) 잘못한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여론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준다. 전경련 직원들 사이에서는 “밖에서는 모두 위기라고 하는데 안에서는 아무도 위기를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전경련 사무국 수뇌부가 자신들의 주된 구실을 회원사들을 위한 활동보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사태에서 나타나듯 정치권력의 요구를 대기업에 전달하는 통로 노릇에서 찾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경련의 향후 행보에 관해서는 해체안 외에 싱크탱크 전환론과 대한상의 흡수통합론이 함께 나온다. 엘지그룹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전경련이 싱크탱크로 전환해서 한국 경제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재계 내부에서 진작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정경유착으로 유명한 경단련이 2002년 일경련과 통합하면서 공익성을 강화한 사례가 있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 아베 내각이 내수 확대를 위해 일본 대기업에 임금 인상을 촉구할 때마다 일본 경단련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실제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했다”며 전경련과 비교했다. 하지만 법정단체인 대한상의는 정경유착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전경련과의 통합에 부정적이다. 대한상의는 2013년 박용만 회장이 취임한 뒤 회원사 이익만 좇던 종전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 발전도 중시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전경련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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