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는 2011년 ‘스마트워크’를 도입하며 서울 강남 대치동 본사 7개 층 가운데 하나를 스마트오피스로 바꿨다. 자리마다 촘촘히 쳐져 있던 칸막이와 고정된 개인 자리를 없애고 빈 책상에 아무나 와서 일할 수 있는 개방형 좌석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방형 좌석보다 파격적인 건 회의실 겸 임원실이었다. 많은 임원실이 임원들의 외부 업무 등으로 빌 때가 많아 공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바꿨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벽은 통유리로 바꿔 임원이 없는 걸 확인하면 누구나 들어가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취재를 갔던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임원이 없다고 편하게 들어가서 회의를 할 수 있을까? 회의하다가 임원이 돌아오면 회의를 중단하고 나가나?
회의실 겸 임원실 문패에서 ‘임원실’ 떼어져
5년 뒤 다시 찾아간 사무실에 회의실 겸 임원실은 사라지고 회의실만 더 늘어나 있었다. ‘임원실을 다른 층에 다시 만들었겠지’ 생각했는데 담당자의 대답이 뜻밖이다. “임원실을 없앴습니다.” 그동안 7개 층 모두 스마트오피스로 바뀌었고 임원들은 다른 평직원들과 함께 개방형 좌석을 공유하며 업무를 보게 되었다. 임원실 없는 회사. 소통과 협업에 초점을 맞춘 유한킴벌리의 스마트워크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개방형 좌석에서 임원 근처에라도 앉게 되면 불편하지 않을까? “처음엔 낯설었지만 결재를 받기 위해 임원실 문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문턱이 낮아진 느낌이에요. 오히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옆자리로 찾아가 바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니 업무효율도 좋아졌고 상하 간 격의도 줄어들었어요.” 올해로 입사 9년차인 인사기획팀 최민영 과장이 말했다.
임신 7개월의 최 과장은 임신 초에 재택근무를 했다. “특별히 임신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팀장이 임신 초기가 더 힘들다고 하더라면서 재택근무를 권유해 두 달 반 정도 재택근무를 했다”고 한다. 재택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이 더러 있지만 유한킴벌리처럼 활발하게 쓰는 곳은 많지 않다. 임산부 배려 정책이 아니라 원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저는 채용과 성과를 담당하고 있는데 업무분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집에서 일한다고 더 느슨해지지는 않더라고요. 직원들 사이에서도 각자 성향이나 개인적 효율을 따져가면서 선택을 하죠.” 임신 중기에 출근을 재개한 최씨는 복잡한 출퇴근시간을 피하기 위해 8시 출근, 5시 퇴근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했고, 임신 후기에는 다시 재택근무를 할 계획이다.
전국 8곳 스마트워크센터 명절에 효과 톡톡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 등이 스마트워크의 시간적 운영이라면, 스마트워크센터는 스마트오피스를 공간적으로 더 확장한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본사 사무실 외에 죽전, 군포, 충주, 대전, 김천, 부산, 대구, 광주 등 8곳에 스마트워크센터를 만들었다. 연구원과 공장, 영업 지사 등 기존에 쓰던 공간 등을 활용해 본사와 똑같이 개방형 좌석제로 스마트오피스를 구축했다. 출퇴근 거리가 먼 직원들이 집 가까운 곳에서 일하며 불필요한 시간과 체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홈뷰티케어본부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박나은(28) 대리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죽전 스마트워크센터로 출근했다. 용인 수지구 동천동 집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다.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다가 결혼하면서 용인에서 살게 됐어요. 중요한 회의가 있거나 외부 약속이 없으면 팀장에게 간단히 보고하고 죽전 센터로 출근합니다. 업무 환경이 본사와 비슷해 불편함이 없어서 분당이나 용인 쪽 사는 직원들이 많이 활용해요.” 죽전과 군포 쪽 사무실로 출근하는 인원이 하루 평균 40명 정도 된다. 노트북컴퓨터와 휴대전화, 충전기만 챙겨서 출근하는 건 본사와 다른 스마트워크센터가 똑같다. 본사 쪽에 대면보고가 필요할 때는 스카이프를 활용한다. 스마트워크센터가 가장 빛을 발하는 때는 명절 연휴다. 회사에서는 막히는 귀성길과 귀경길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고향에 갔다가 느지막이 돌아오라고 권유했다. 휴가를 더 쓸 필요는 없었다. 고향 근처에 있는 스마트센터에 출근해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워크 서비스를 담당하는 안태건 부장은 “탄력근무제나 자유좌석제 같은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도입 뒤에도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해나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개방형 변동좌석제를 도입했을 때 난감해하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단순히 익숙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집중이 안된다는 호소도 꽤 있었다. “회의실 블라인드 설치 등 개방형 스마트오피스 원칙에 어긋나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집중 업무를 필요로 하는 직원들을 위해서 밀폐형 독서실 구조 같은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7개 층의 사무실들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같은 개방형 사무실이라도 용도와 기능이 제각각 다르다. 또 50개에 이르는 회의실도 스탠딩 회의를 위한 곳과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도록 카페형으로 만든 곳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직원들의 관리자에서 조력자로
가장 최근에 생긴 장소는 2015년 봄에 만든 5층 사무실 옆의 ‘창의공간’이다. 실내체육실처럼 널찍한 마룻바닥 주변을 커다란 쿠션들, 요가매트, 운동기구, 탁구대, 손 축구 놀이 같은 게 둘러싸고 있다. 말 그대로 운동도, 게임도, 회의도, 회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스케줄 표에 비어 있는 시간만 확인하면 무엇으로든 쓸 수 있다. 한 예술대학에 있는 공간을 본떴다고 한다. 물론 만들기 전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학교가 아닌 기업에 이런 공간이 어울릴까? 과연 충분히 활용이 될까? 중요한 건 직원들이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험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안 부장은 “보여주기 위해서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단계별로 시도하고 효용성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간다. 주요 부서들이 직원들의 관리자가 아니라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게 스마트워크의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