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 330여명의 얼굴과 이름, 닉네임을 모두 공개하는 회사. 성형수술·시술 비용을 복리후생의 하나로 제공하는 회사. 임직원과의 약속을 위해 창업자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회사. 바로 온라인 자유여행 서비스 기업인 여행박사 얘기다.
2000년 설립한 여행박사의 경영철학은 ‘고객도 직원도 즐거워야 한다’는 이른바 ‘펀(fun) 경영’이다. 재밌는 직장을 추구하는 만큼 톡톡 튀는 제도도 많다. 성형수술, 미용시술, 치아 교정에다 네일아트, 헤어숍까지 자기계발비 명목으로 지원한다. 전체 임직원 중 70% 이상이 20~30대 여성인 점을 고려한 복지제도다. 임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마라톤이나 골프를 권장하는데, 개인 기록이 정해진 기준을 넘으면 포상금을 주기도 한다. 비성수기에는 한달에 한번 3시간 앞당겨 퇴근할 수 있는 ‘라운지 데이’도 있다. 회사와 집 사이의 거리가 편도 70㎞가 넘는 임직원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 온 재기발랄한 인재들이 집값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여행박사는 사옥 안에 체력단련실을 마련해 임직원의 건강관리를 돕고 있다. 여행박사 제공
하지만 정작 여행박사가 ‘신바람’ 나는 일터로 업계에 알려진 이유는 따로 있다. 재미있고 독특한 복지제도 외에 업무에서 자기결정권이 크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중심에 있다. 여행박사의 업무는 팀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팀장의 결재만 있으면 새로운 여행상품 기획부터 진행까지 걸림돌이 없다. 대표이사가 결재하는 사안은 회사 전체적으로 1년에 대여섯번 정도다. 채용 등 인사 업무도 실무팀 의견이 절대적이다. 전사 차원의 채용 프로세스에 따라 인사팀이 채용 전반을 주관하는 타 기업과 달리 여행박사는 실무팀의 필요와 요구사항에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 서류 심사부터 면접까지 실무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직책이나 직위에 따른 격식도 없다. 사내에서 임직원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하며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다. 불필요한 격식이 줄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일한 만큼 보상도 확실하다. 한 해 매출에서 비용을 뺀 수익은 모든 임직원과 나눈다는 것이 여행박사의 경영 원칙 중 하나다. 매년 팀 단위로 목표 매출을 수립하고 이를 달성할 경우 차액은 직원들의 성과급으로 돌아간다. 목표 매출은 매년 시장 상황에 따라 팀과 회사가 상의해 결정한다. 2010년엔 매출 3억원을 약속한 직원이 이를 달성해 1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아가기도 했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의 토대는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다. 여행박사는 사소한 약속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일화도 있다. 2013년 대표이사 선거 때 당시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던 창업주가 회사 내규인 재신임률 70%보다 높은 80% 이상 득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단 1표 차로 80%에 미치지 못하자 미련 없이 대표이사 자리를 내놨다. 서신혜 마케팅부 홍보팀 대리는 “여행박사의 독특한 복지제도와 즐거운 분위기는 직장생활에 큰 힘이 된다. 그 저변엔 서로를 존중하는 조직문화와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가 있어 임직원 스스로 더 신나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