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지금 우리 시대의 질문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질문이다. 행복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는 단순한 뜻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이 살고 있는 사회경제적 모습이 그것을 의문으로 제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엔이 올해 초에 발표한 ‘2016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행복지수)는 평균 5.8점(최저 0점, 최고 10점)으로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58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만 보면 최하위권(29위)이다. 각각 세계 11위와 28위(2015년)인 한국의 국내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 규모에 비춰보면, 한국은 ‘행복 없는 사회·경제’에 빠져 있음이 한눈에 드러난다.
행복 결핍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소득뿐 아니라 행복에서도 불평등하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 응답자의 행복감 표준편차(행복불평등지수)는 2.15점으로, 157개국 중 96번째로 높다. 한국인들 사이에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감 격차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오이시디 안에서만 보면 행복불평등지수는 31위로 최하위권이다. 즉 행복불평등이 5번째로 높다.
사실 한국의 소득불평등 지표(가처분소득 지니계수 2012년 0.307)는 경제력이 비슷한 오이시디 다른 나라에 견줘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국민이 느끼는 행복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더 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득분배 구조에 비해 행복총량의 분배 구조가 훨씬 더 나쁜 상태인 것이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40여년간의 고도성장기를 마감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경기둔화’에 빠져든 한국 사회경제의 진로와 관련해 이 ‘행복결핍’과 ‘행복불평등’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오는 23~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열리는 ‘2016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은 이 질문을 던지고, 또 통찰력과 감성이 동시에 살아 있는 대답을 찾아 나서는 국제포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할 만한 행복을 둘러싸고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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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이며 정치적인 주제 ‘행복’] 한겨레신문사가 아시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며 2010년부터 열고 있는 ‘아시아미래포럼’은 올해로 7회째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성장을 넘어, ‘더불어 행복’을 찾아서”다. 행복불평등을 줄이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이행하려면 사회·경제정책 그리고 정치영역에서까지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해야 할까? 국가·사회·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무엇을 혁신하고 또 정책적으로 조준해야 할까? 국내외 전문가·교수·활동가·기업인·지방자치단체장·정책담당자들이 함께 모여 때로는 격렬한 말로 논쟁·진단하고, 때로는 정교한 분석과 실증통계를 동원해 토론하는 장이다. 이틀간의 포럼 프로그램 구성을 크게 보면, 첫날은 ‘국가와 사회’, 둘째날 오전은 ‘기업 일터’, 둘째날 오후는 ‘지역’ 수준에서의 행복을 논의하는 장으로 마련된다.
23일 포럼 첫날 기조강연자들은 ‘행복의 역설’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이탈리아 로마 룸사대·시민경제학)는 말한다. “우리는 ‘기쁨 없는 경제’에 살고 있다. 시장 ‘경제’가 좋다고 해서, 시장 ‘사회’가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들이 정작 중요하다. 즉 신뢰와 우정, 정서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시민경제가 행복을 생산하는 비밀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특별강연에서 행복 자체보다는 ‘좋은 삶’을 주창한다. 오직 소득과 소비만을 인간의 경제적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하는 대개의 경제학자들과는 결이 다른 얘기다. 장 교수는 건강한 노동과 공정한 사회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설파한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개인의 주관적 만족감을 넘어, 좋은 사회에 기반한 좋은 삶이어야 한다고 두 강연자는 말한다.
행복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측정하거나 서열을 매기려 들면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주제다. 측정 자체가 애초에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첫날 또다른 기조강연에 나서는, 지구행복지수(HPI)를 개발한 닉 마크스 영국 ‘행복한 일’(HW) 대표는 이 문제를 파고든다. 행복을 과연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해봄직한 ‘행복으로 가는 다섯 가지 길’도 제시한다. 이어 카르마 치팀 전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위원장은 ‘행복국가’ 부탄을 만들어온 정책 경험을 들려준다. 국내총생산(GDP)보다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정책목표로 표방해온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의 경험은 ‘저성장 체제’와 ‘행복결핍’ 두 가지를 동시에 겪고 있는 한국에 무엇을 말해주는가? “삶에는 지디피의 차가운 숫자들과 경제학 통계들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국민총행복을 말하는 치팀도, 국민소득계정을 대체하는 국민웰빙계정을 주장하는 닉 마크스도 삶의 질을 측정하는 새 지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치팀과 닉 마크스는 “지디피는 틀렸다”며, 지디피로 대표되는 숨가쁜 성장의 맹목적 추구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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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들의 특강…한국인의 뇌행복] 장하준 교수 이외에 다른 한국 지성들의 특강도 열린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의 뇌에게 ‘지속가능한 행복’을 묻는다. 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인의 좌뇌와 우뇌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통찰력과 분석력 그리고 감성까지 갖춘 ‘전뇌적 사고’를 그는 주창한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인의 일과 행복 변화상’을 실증 통계지표로 한눈에 보여준다. 놀라운 몇 가지가 발견된다. 한국노동패널조사(표본 5천가구)는 한국인의 행복 정점이 주당 59시간 노동에서야(!) 비로소 멈춘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게다가 법정 초과근로 허용시간(주 12시간)보다 더 긴 주당 16시간 초과근로에 이를 때까지 행복도는 멈추지 않고 증가한다. 이와 관련해 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발표한 유명한 논문 ‘경제성장이 인간의 운명을 개선시키는가’ 이후 지디피는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지디피의 시계열 추이는 오른쪽 위를 향해 선형적으로 줄기차게 성장하지만 행복의 시계열 그래프는 그 아래서 끈질기게 수평선을 유지하는 이 간명한 그래프가 보여준 ‘이스털린 역설’은 “성장이 일정한 소득 문턱을 넘어서면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놀라운 발견과 충격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적어도 노동시간(임금)에서는 아직도(!) 이 역설이 입증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 한국인의 좋은 삶과 ‘추구할 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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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복공동체’ 선언한다] 행복은 주관적·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추상적이고, 그래서 논쟁적인 단어다. 지금 한국에서 특히 행복(불평등)은 우리 내면 깊숙이 꿈틀거리며 불을 지르는 진지한 정치적 단어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행복도 자유처럼 투쟁해 얻어내야 할 대상일지 모른다. 포럼 등을 통해 행복을 둘러싼 토론과 연구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포럼을 주관하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세계 각국의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아 연구·조사해본 결과는 흥미롭다. 정부 차원에서 ‘행복 연구’를 오래 해온 국가들을 보면 네덜란드 43년, 뉴질랜드·캐나다 17년이다. 행복 연구를 오랫동안 많이 해온 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
개인적 행복을 넘어 사회적인 ‘더불어 행복’을 추구한다면 무엇보다 기업 일터가 그 한복판에 있다. 포럼 둘째날인 24일은 이병남 전 엘지(LG)인화원 원장이 ‘행복한 일터의 조건’을 진단한다. 이어 ‘2016 한겨레 행복일터’ 시상식이 열린다. 시상 무대에 오르는 기업들은 더 많은 직원들이 삶 전반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직장 여건을 마련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이어 이날 오후에 열리는 사회적 경제 세션은 지역 수준의 행복 토론장이다. 한국과 아시아의 각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과 마을이 참여해 사회적 경제를 통한 ‘모두를 위한 시민행복 경제’를 한목소리로 주창한다. 특히 올해 포럼은 폐막식에 앞서 ‘2016 시민행복공동체 선언문’ 채택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 선언문 발표에 서울시와 경기도를 비롯해 각 지방정부 단체장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행복공동체 실천’에 동참한다.
그리고 포럼 둘째날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맞은편 회의장에서는 동시진행 세션으로 하루종일 ‘발전경제학’ 학술포럼이 열린다. 이 세션에는 자야티 고시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교수, 장하준 교수,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주안둥 중국 칭화대 교수, 요코카와 노부하루 일본 무사시대 교수 등이 참여해 ‘저성장 시대, 아시아의 대안적 발전모델’을 탐색한다.
2015년10월28일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 6회 아시아미래포럼 원탁토론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좌장 박영철 고려대 석좌 교수, ,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이지순 한국경제학회 학회장, 신관호 고려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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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에 대한 도전] 단순히 행복 향연의 장을 펼치려는 포럼이 아니다. 내면의 행복철학을 설파하자는 것도, 멋진 행복지표를 설계해보려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사회·정치·경제적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번 포럼이 “행복을 정책목표로 조준하자”고 주창하는 까닭이다. 포럼 참가자들은 저마다, 우리 모두가 ‘더불어 행복’에 당도하기 위한 사회·경제정책의 전환을 찾아 나선다.
지디피는 더 이상 ‘진보’를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아니다. 포럼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우리가 추구할 만한 진정한 행복의 얼굴은 지디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디피 지표의 외형 성장에 맞춰온 경제·사회정책의 목표를 ‘행복총생산’ 증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경제 성과가 좋을수록 국민들 역시 더 행복하다”는 통념은 이제 의문시되고 있다. 지디피로 대표되는 소득·소비에는 인간적 삶의 질과 행복이 빠져 있다. 지디피 수치만으로는 국민의 행복을 대략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번 포럼은 더 많은 사람의 더 많은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를 지배하고 열광케 하고 때로 현혹해온 물량적 수치 지디피와 싸우는 국제포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20세기 내내 지디피와 그것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을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들을 푸는 해법”이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경제적 진보를 표현하는 그 숫자는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란 대목에 이르면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고, 나아가 환멸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포럼은 여전히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무소불위, 난공불락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20세기 가장 위대하고 가장 흥행한 발명품” 지디피의 지위와 권위에 도전한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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