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삶과 행복(인간복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소득과 소비를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보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노동’과 ‘공정 성’이행복의 조건이라고 주창한다.
한발 더 나아간다. “인생에서 공정한 경주가 이루어지려면 기회 균등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까지 보장돼야 한다. 한국은 소득·행복 불평등을 줄이는 과거의 시스템이 완전히 한계에 봉착했다.” 오는 23일, 2016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특별강연에 나서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주창이다.
경제학 관점서 ‘행복’ 강연
“신고전 경제학자들이 숭배하는
소득·소비로 복지 측정 한계
건강한 노동과 공정성 중요”
한국 더불어 행복하려면…
“보편적 복지 통한 재분배로
결과의 균등 이루어진다면
공정한 사회 만들 수 있어”
장하준 교수가 2014년 7월 서울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 교수는 경제 발전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다. 행복경제학은 그의 전공이 아니다. 하지만 발전과 인간 행복은 각각 서로를 향해 어느 정도는 목적이자 동시에 조건이기도 하다. 포럼 첫날 특별강연에서 그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행복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로 말한다.
그는 추상적인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닌 ‘인간복지’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소득이 인간복지 측정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경제학자들이 소득보다는 더 광범한 행복 개념으로 인간복지를 측정하려 하고 있다.” 장 교수가 이번 포럼에서 강조할 “행복과 좋은 삶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고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건강한 노동, 그리고 공정성이다.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신고전파 경제학은 소득과 소비를 인간복지를 증가시키는 수단을 넘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노동의 문제를 거의 무시해왔다.” 그러나 노동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일부이며, 따라서 복지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간은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은 인간복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고용 불안을 조성하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복지를 크게 떨어뜨린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자본개방·자유화를 통해 기업 경영이 단기주의화되고 노동시장 규제가 완화되면서 고용불안이 증가했다.” 한국은 소득수준에 비해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한국인의 복지는 소득만 보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소득과 노동 못지않게 인간복지의 중요한 변수는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 여부다. “사회가 공정하면 소득도 더 잘 늘어나고, 자기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더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공정한 사회는 어떤 것일까?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공정한 사회는 기회가 균등한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회균등이 제도적으로 완전 보장된다 해도 그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건 아니다. 실제 인생에서 공정한 경주가 이루어지려면 기회 균등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이 보장돼야 한다.”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아이들을 집단 탁아소에서 키우기 전에는,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과의 평등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장 교수는 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재분배를 우선 강조한다. 또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도 필요하다. “한국은 중소기업 보호 고유업종 지정 등 시장이 불평등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많이 제약해오긴 했지만 소득 재분배는 매우 취약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복지국가를 통한 재분배 이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이지만, 워낙 재분배를 적게 하기 때문에 재분배 후에는 오히려 불평등도가 평균 이상으로 높아진다.”
사전적 시장규제로 불평등을 줄이는 방식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지만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선별적 보호를 하기 때문에 다 같이 경제적 약자임에도 어떤 사람들은 보호를 많이 받고 어떤 사람들은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개방화·시장자유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런 보호제도의 구멍이 많이 생겼다. “선별적 보호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과거의 시스템이 완전히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자살률의 경우 한국은 1995년까지 오이시디 평균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은 1등까지 높아졌다. ‘선별적 보호’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과거의 시스템이 완전히 한계에 봉착했다는 좋은 증거다.” 한국은 복지국가 건설이 공정성 성취를 위한 필수조건이 된 단계에 와 있다는 얘기다.
복지와 경제성장은 상충관계에 있다는 다수의 주장에 대해, 장 교수는 실증적 근거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보여주듯이, 복지국가가 잘되어 의료·교육 등 기본생활이 보장되고, 실업수당과 직업재교육이 제공되면 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적어지고 필요한 새 기술을 더 빨리 취득할 수 있어서 경제가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성장도 더 잘할 수 있다.” 미국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1.5배가량 많은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빠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하준 교수는 제대로 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무엇보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강조한다. “가난한 사람은 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는 하지만,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는 내니까 ‘공짜’가 아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다.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진정한 사회복지이고, 그래야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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