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큰 부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최소한의 경제적인 안정은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 혹은 ‘노동’은 현대인에게 있어 비단 소득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있게 살 수 있는 자유인의 존립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실제로 노동을 통해 행복한 삶의 조건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다양한 일자리의 질과 특성이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제7회 아시아미래포럼(AFF) 개막 첫날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발표(노동패널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일과 행복’)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산업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3개년 계획의 ‘일과 행복’ 협동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연구팀은 1차 과제로 1998년부터 2015년까지 17년 동안 축적된 ‘한국노동패널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고용형태와 임금, 근로시간, 직무특성이 가족형태 등을 매개로 노동자의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국내에서 국책연구기관이 합동으로 일과 행복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조사를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간 조사 결과를 보면, 삶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역시 고용의 안정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정규직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삶의 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기간제, 시간제, 특수고용, 용역, 파견, 일일근로 등의 차례로 행복도가 높게 나타났다. 행복도와 고용의 안정성 정도가 비례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정부가 허용 확대를 추진하는 파견직은 하루짜리 노동 수준의 낮은 행복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또 자율성이 강한 재택근로가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의 만족도를 보인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시간당 임금수준은 당연히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근로시간의 불규칙성과 계절성은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냈다.
취업자라도 남성과 여성 간 행복도에 차이가 뚜렷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남성의 경우 취업에 따른 행복 효과가 뚜렷한 반면에 여성은 취업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조사 모형에 따라 취업이 여성의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직장 여성의 출산과 양육 부담, 경력단절에 따른 불안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시간 노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성별로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남성 취업자의 경우 주당 59시간에 이르기 전에는 행복도 저하가 발생하지 않는데 여성은 노동시간의 감소에 따른 행복 효과가 남성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 미혼자는 전반적으로 행복도가 낮은 반면에 여성 미혼자의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번 연구의 총괄책임을 맡은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은 “1차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올해 노동패널조사에 설문항목을 추가하고 보완한데 이어 조사모듈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일자리 정책이 국민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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