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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행복 불평등, 중·일보다 높아…‘흙수저’는 기회 박탈에 절망

등록 2016-10-17 09:00수정 2016-11-04 11:02

[2016 아시아미래포럼]
내달 포럼 ‘행복 불평등’ 화두 왜?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지니계수가 있듯이 유사한 산출방식으로 ‘행복지니계수’도 구할 수 있다. 외국의 여러 행복 실증연구는 행복지니계수가 소득지니계수의 절반 정도라고 보고한다. 이에 비춰보면 2016년 유엔 행복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행복평등 96위’(총 157개국)는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소득의 성장과 분배 구조에 비해 행복총량의 분배 구조가 훨씬 더 나쁜 상태인 것이다.

몇해 전부터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 소득·자산 불평등 심화 추세를 각국 경제의 당면 해결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소득지표뿐 아니라 주관적인 만족감(행복)을 둘러싼 불평등 역시 우리의 일상 삶에 본원적인 박탈감을 안겨준다. 전통적 경제지표 외에 행복불평등의 구조와 양상에 지금 관심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의 행복불평등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 유엔 행복보고서의 ‘삶의 만족도’를 보면, 개별 응답자들의 만족도가 국민 전체 평균(척도 10점 만점)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정도인 표준편차는 한국(2.16점), 중국(1.99점), 일본(1.88점) 순이다.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에서의 격차가 우리 사회 내부에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계층별로 행복불평등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지난해 11월 전국 19살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행복감(“전반적인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현재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10점 만점)을 조사한 결과, 전체 평균은 6.33점, 표준편차는 2.19점으로 나타났다. 유엔 행복보고서의 한국 표준편차(2.15점)와 엇비슷하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별로 행복감을 보면 ‘상층·중상층’(7.53점), 중간층(6.47점), 중하층(5.88점), 빈곤층(5.10점) 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행복감 역시 낮은 것이다. 실제 벌어들이는 소득 범주에서도 집단간 행복감 격차가 뚜렷하다. 월소득 401만원 이상(6.68점), 201만~400만원(6.19점), 200만원 이하(5.89점) 순이다.

종사하는 직업별로도 행복감에 큰 격차가 존재한다. 화이트칼라(6.75점)와 주부(6.41점)는 높은 반면 블루칼라(6.16점)는 낮고, 특히 자영업(5.84점)의 행복감은 현격히 떨어진다. 게다가 자영업자 내부에서도 행복불평등이 적지 않다. 자영업 종사자의 행복감 차이(표준편차 2.58점)는 농림어업(2.96점)과 함께 매우 높다. 자영업 내부의 소득양극화가 행복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회적 관계지수 OECD ‘꼴찌’
도움 필요할 때 기댈 곳 없어
연령별 행복도 ‘거꾸로 된 U자형’
20대·50대·60살 이상 낮게 나와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나” 질문에
중상층 7.5점, 빈곤층 5.1점
“매우 행복” 2% 그대로인데
“매우 불행” 14%→24% 늘어

‘불평등한 한국인 행복지도’는 연령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나이가 들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행복결정 요인을 실증분석한 선진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령과 국민행복지수는 흔히 ‘U자형’ 상관관계를 보인다. 청소년기까지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다가 생산활동인구에 들어가면서 조금 떨어진 다음, 은퇴 시기를 전후에 다시 행복도가 높아지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꾸로 된 U자형’을 보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연령별 행복감은 40대(6.54점)·30대(6.32점)에서 높은 편이고, 20대(6.24점)·50대(6.22점)·60살 이상(6.28점)에서 상대적으로 낮다. 청소년·노인 자살률 세계 1위, 오이시디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노인빈곤율 49.6%(2015년 기준) 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60살 이상 노인 집단 내부의 행복감 표준편차(2.45점)는 다른 모든 연령대에 견줘 가장 크다. 노년의 삶에서 행복이 가장 불균등하게 분포하고 있는 셈이다.

연령 및 사회경제적 집단 사이의 행복불평등은 다른 조사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서베이조사연구센터가 전국 2만명을 대상으로 벌인 ‘삶의 질’ 조사(2013년)에서도 행복도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아지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화이트칼라일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행복불평등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일까? 네덜란드 뤼트 페인호번 교수(에라스뮈스대)가 구축한 세계행복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0~2009년 한국의 행복불평등(0~3.5점 척도)은 평균 2.03점이다. 오이시디 평균(1.99)을 웃돌고, 오이시디 회원국 중 19번째로 높다. 한국의 행복불평등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며,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내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불평등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한국종합사회조사(전국 18살 이상 성인남녀 1400여명 조사)를 보면, “매우 행복하다”와 “전혀 행복하지 않다”가 2007년에 각각 2.36%, 14.57%였는데 2012년에는 각각 2.29%, 23.78%로 나타났다. 행복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별다른 변동이 없는 반면,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은 크게 늘고 있다.

행복불평등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소득불평등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꼭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가난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건 이미 1970년대에 ‘이스털린의 역설’로 확인된 바 있다.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고 나면 그때부터 행복도는 추가 소득에 비례해 더 이상 늘지 않고 끈질기게 수평선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행복불평등 한국’을 낳는, 한국에 특징적인 소득 이외의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이 지목된다. 오이시디의 ‘더 나은 삶 지수’(소득·일자리·시민참여·환경·건강 등 11개 영역 측정, 2015년)를 보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관계’(Community) 영역에서 꼴찌(36위)다. 오이시디 평균은 7.2점(표준화한 10점 만점)인데 한국은 놀랍게도 거의 0점에 가깝다.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등 사회적 관계의 질이 매우 취약한 것이다. 이런 기회 측면의 사회적 관계는 이른바 ‘흙수저’ 계층일수록 더 빈곤하기 십상이다. 기회 불평등에서 오는 절망이 곧 행복불평등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일과 삶의 불균형 배분’도 행복불평등 심화를 초래하고 있다. 더 나은 삶 지수의 ‘일과 삶의 균형’ 영역에서 한국은 5.0점으로 오이시디 평균(6.7점)보다 낮고, 오이시디 36개국 중 터키·멕시코·칠레 다음으로 33위다. 우리 사회에는 한쪽에는 1주일 50시간 이상 일하는 과다노동이 존재하고, 다른 쪽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거나 비정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과소노동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체 노동시간의 효율적 배분에서의 실패가 행복 배분의 실패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주관적·개인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 같은 사회적·정치적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다. “경제 성과가 좋을수록 국민들 역시 더 행복하다”는 통념은 이제 의문시되고 있다. 지디피 지표의 외형 성장은 소득뿐 아니라 행복 영역에서도 차별적 분배를 악화시켜 왔다. 국가 차원의 집합적인 행복총량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우리 내부의 행복불평등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국민들이 행복을 골고루 나누고 있는 국가일수록 전체 행복지수가 일관되게 높다. 네덜란드·덴마크·스위스가 대표적이다. 행복은 다른 재화와 달리 나눌수록 더 많은 행복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행복불평등이 줄어들수록 국가 전체의 행복 수준도 증가한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이민영 선임연구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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