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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경제 공약이 죄다 뻥이라고요?

등록 2016-04-08 20:09수정 2016-04-09 16:26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필요한 대상을 정해 지원하는 양적 완화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월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필요한 대상을 정해 지원하는 양적 완화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월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8) 국회의원 선거
바야흐로 선거철이에요. 요즘 텔레비전만 켜면 선거 뉴스, 선거 토론, 선거 홍보가 나와요. 신문을 펼쳐도 마찬가지예요. 엄마·아빠도 여러분이 사는 마을에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나선 후보들을 놓고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실 거예요. 할아버지·할머니도 경로당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입씨름하실지 모르겠네요.

‘뭔 상관이야!’ 투표권이 없는 여러분 중에도 아는 체하며 볼멘소리 하는 친구가 제법 있을 거예요. 어떤 친구는 “그 나물에 그 밥 아냐” “선거한다고 더 나아지나”라며 어른들 말을 따 푸념하기도 하죠? 우리네 살림살이가 선거 한번으로 달라질 것도 아닌데, 어른들이 너무 호들갑 떤다고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도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데 한 표!

그런데 말이에요. 선거가 우리네 삶을 확 바꾸지는 못해도 좀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는 있어요. 지금보다 더 훌륭한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그 지름길이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지금껏 숨어 있던 참신한 아이디어가 토론의 장에 머리를 내밀기도 하기 때문이죠. 성긴 듯한 이 아이디어가 가다듬어져 근사한 정책이나 제도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요.

이번 선거에서도 눈에 띄는 참신한 경제 공약이 여럿 있어요. 물론 곧바로 우리네 삶에 적용할 정도로 구체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실현 가능성도 낮아 보여요. 하지만 한 번쯤 아니 골똘히 생각해볼 만한 게 적지 않아요. 선거 바람이 지나고 나면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가져 보네요. 어떤 아이디어들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양적 완화

정권을 잡고 있는 새누리당 공약 중 하나부터 먼저 살펴봐요. ‘양적 완화’라고 불리는 녀석이에요. 이 공약이 발표 이후 한 열흘 정도 텔레비전에서 쉬지 않고 소개가 됐으니, 여러분도 한 번쯤 들어는 봤을 거예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이 안 오죠?

양적 완화는 은행 중의 은행인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푸는 한 방법이에요. 원래 한국은행은 돈을 풀었다 죄었다 하면서 물건값(물가)과 경기를 관리하는 구실을 해요. 돈이 풀리면 물건값은 오르고 죄면 물가는 떨어져요. 다만 양적 완화가 주목을 받은 건, 지금껏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서예요.

그간 한국은행은 ‘이자율’(금리)을 올리거나 내리는 방법으로 돈을 풀거나 걷어들였어요. 가령 이런 거예요. 이자가 비싸면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질 거 아니에요. 그러면 돈은 시장에 풀리지 않게 돼요. 반대로 이자가 얼마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돈을 빌리는 데 부담이 줄어들게 되어서 시장엔 돈이 풀리지요. 경기가 안 좋으면 한국은행은 이자율을 내려서 사람들이나 기업들이 쉽게 돈을 빌려가도록 해요. 돈을 빌려서 투자도 하고 물건도 사도록 해서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거지요.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이 매우 싼 이자만 받고 필요한 쪽에 직접 빌려주는 방식이에요. 이자율을 조정하는 방식이 돈이 필요한 쪽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돈을 푸는 방식이라면, 양적 완화는 돈을 푸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에요. 불공평하다고요? 그렇게도 보여요. 한국은행이 대상을 딱 정해서 돈을 싸게 빌려주는 거니까요.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다른 데 있어요. 바로 불공평할 수도 있는 일을 선거 공약으로까지 제안한 배경이에요. 일단 전통적인 돈 푸는 방식인 이자율 조정이 그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어요. 2012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은행이 이자율을 3.25%에서 1.5%까지 많이 내렸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도무지 살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요.

이자율을 내리면 사람이나 기업이 돈을 많이 빌려가서 투자도 하고 물건도 사고 해서 경기가 활기를 띠어야 할 텐데, 마치 물에 젖은 옷처럼 경기는 5년 넘게 쭉 처져 있어요. 지금도 이자율이 1.5%이니 더 내릴 여지가 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자율을 더 내리더라도 ‘과연 경제가 살아날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해요.

이처럼 우리 경제가 매우 특이한 상황에 내몰린 만큼 전통적인 ‘이자율 조정’ 방식 말고 또다른 방식으로 양적 완화가 제안됐다고 볼 수 있어요. 이자율 조정 방식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꼭 필요한 가계나 기업으로는 돈이 흘러가지 않았고, 그래서 이번에는 꼭 필요한 대상을 골라서 돈을 푸는 양적 완화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인 거죠.

사실 양적 완화는 다른 나라 몇 곳에선 이미 사용했거나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돈 풀기 방식이에요.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하고 있지요. 물론 이 나라들 역시 2008년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던 ‘금융위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또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안이 됐고 시행되고 있어요. 효과가 있었냐고요?

‘있었다’ ‘없었다’ 무 자르듯이 딱 말하기는 힘들어요. 애매한 상황이죠. 이들 나라 경기가 눈에 띄게 좋아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지도 않았으니까요. 다만 분명한 건, 양적 완화가 제안되고 막 시작할 때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고,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에요. 지금은 양적 완화 규모를 더 늘려야 할지, 아니면 또다른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지를 놓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자율 내려 시장에 돈을 풀어도
투자·소비 안 늘고 경기는 썰렁하죠
대상 콕 집어 지원하는 양적완화
미국·일본·유럽은 이미 시행 중
효과 판단하기엔 아직 일러요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해도
빈부 격차 커지며 양극화 뚜렷해요
공평한 기회 주자는 경제민주화
공공주택 늘리며 최소한의 삶 보장
돈은 누가 내야 할지 의문이죠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은 빈부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2015년 8월19일 서울 종로구 금천교 상가 상인들이 권리금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은 빈부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2015년 8월19일 서울 종로구 금천교 상가 상인들이 권리금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제민주화

이번엔 야당 중 국회의원 수가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을 들여다봐요.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공약을 ‘경제민주화’라는 한 꾸러미에 담아 설명해요. ‘민주화’도 들어봤고, ‘경제’도 어렵지 않은 낱말인데, 두 개를 합쳐 놓으니 무슨 말인지 헷갈리지요?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뭐야?” 여러분이 푹푹 내쉬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군요.

들어는 봤을 거예요.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 법 중의 으뜸인 헌법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요.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쯤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문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게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라는 사실이에요.

자본주의 경제에선 ‘양극화 현상’이라는 게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부자는 힘이 더 세지고 가난한 사람은 힘이 더 약해지는 모습을 피할 수 없다는 거죠. 민주주의란 건 조금 다른 거잖아요.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니까요. 대기업 회장님이라고 해서 투표권을 더 갖는 게 아닌 이유도 그래서죠.

‘경제민주화’ 공약은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해져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요.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나타나는 양극화가 너무 심해져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고 더불어민주당은 보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놓는 경제민주화 공약은 양극화 현상을 줄이는 내용이 중심을 이뤄요.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을 줄여 민주주의를 살려보자는 생각인 거지요. 경제민주화 공약을 뜯어보면 둘 중 하나예요. 가난한 사람이나 기업의 힘을 키워주거나, 부자인 사람이나 기업의 힘을 줄이거나.

가령 공공임대주택 많이 짓겠다는 내용의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 걱정 없이 편안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거예요.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경제민주화 2호 공약도 형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어르신들한테 최소한의 삶은 누릴 수 있도록 나라가 돈을 매월 꼬박꼬박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또 빚더미에 올라앉았으나 일자리가 없거나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 없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한해 빚 일부를 깎아준다는 공약, 형편이 어려운데도 많은 돈을 내야 하거나 혹은 돈벌이가 좋은데도 적은 돈을 내도록 돼 있는 건강보험료를 걷는 방식을 바꾸는 공약도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 공약이라며 제시하고 있지요.

갈고닦아 보석으로 만들자

새누리당의 양적 완화 공약이든,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이든 다 좋게 보여요. 또 방식이 다를 뿐 현재 고달픈 우리의 살림살이를 더 낫게 하자는 목적만큼은 같아요. 그럼에도 이런 공약에 대한 냉소도 적지 않지요. 왜냐고요? 요모조모 따져보니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여서죠. ‘표를 얻기 위해 그럴듯하게 꾸민 말 아니냐?’, ‘선거만 끝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체하며 지나가는 것 아니냐?’ 따위의 비판에 귀가 따가워요.

정말 그러면 안 되겠지만, 어쩌죠. 제가 봐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양적 완화 공약은 자칫 나랏빚만 늘리거나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들의 돈이 일순간에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우리 경제가 크게 흔들릴 위험을 불러올 수 있어요. 경제를 살리려다 경제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경제민주화 공약도 마찬가지예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건 좋은데, 그 돈은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오는지 도통 명확하지 않아요.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제시한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낙담하지 말아요. 외면하지도 말고요. 모두가 외면하면 정말 이 공약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관심을 갖고 공약의 부족한 점을 꼬집어내고, 가능하다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안도 해야 해요. 국민들이 선거에서 등장한 여러 공약들을 남의 집 문제인 양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우리나라 경제는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 있어요.

또 여러분을 포함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볼 때 구체성도 떨어지고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공약들이 점차 모습을 제대로 갖춰 우리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하는 정책과 제도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어요. 물론 처음부터 각 정당이 완벽한 답을 준비해서 내놓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말이에요.

이제 막 싹을 틔운 양적 완화든 경제민주화든 간에 이번 선거에서 나온 경제 공약들이 우리 모두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지도 쳐주고 흙도 갈아주고 해봐요. 부모님이 개구쟁이인 여러분을 야단도 치고 보듬어 안아주면서 키우는 것처럼요.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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