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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마이너스 금리로 저금하는 세상 온다고요?

등록 2016-03-11 18:53수정 2016-03-12 16:34

지난 1월29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1%에서 -0.1%로 낮추는 ‘마이너스 금리’를 발표한 가운데 도쿄 시내의 주식시장 시황이 담긴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지난 1월29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1%에서 -0.1%로 낮추는 ‘마이너스 금리’를 발표한 가운데 도쿄 시내의 주식시장 시황이 담긴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6) 저축해야 할까
벌써 달포쯤 지났네요. 설날 말이에요. 오랜만에 친척들도 보고 차례 음식도 맛보았을 거예요. 어떤 친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등 어르신한테 세뱃돈도 받았을 거예요. 요즘엔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은 시대여서 제가 어릴 때보다는 세뱃돈이 더 두둑해졌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주머니를 채웠던 세뱃돈, 어떻게 했나요? 평소 갖고 싶었던 학용품이나 읽고 싶은 책을 산 친구도 있겠고, 친구들과 함께 놀이동산을 가거나 맛있는 걸 사 먹거나 장난감을 사는 데 쓴 친구도 있을 거예요. 또 이미 갖고 있는 통장에 ‘저금’한 친구도 제법 있어요. 엄마가 다 가져갔다고요?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축에 대해 알아보아요. 저축은 돈을 모은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요. 저축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돌아가지 않지요. 또 너무 많은 저축은 경제를 망치기도 하거든요. 요즘에는 저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해요. 조금 이상하죠? 한푼 두푼 저금하는 게 바람직한 일로 학교에서 배웠을 텐데…. 이상한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이자는커녕 저금한 돈보다 더 적은 돈을 돌려준다고 해도 앞다퉈 저축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도 있어요. 어찌된 일일까요?

저축의 마술과 ‘뱅크런’ 공포

여러분은 저축을 왜 해요? 두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하나는 나중에 필요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일 거예요. 한달 뒤에 친구 생일파티나 엄마, 아빠 생신이라면 돈을 마련해놓아야 할 것 아니겠어요? 선물을 사야 하니까요. 두번째는 목돈을 만들기 위해서죠. 큰돈을 만지려면 적은 돈을 모아야 해요. 만약 내년에 컴퓨터나 멋진 운동화를 사고 싶은 친구라면 이번에 받은 세뱃돈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주시는 용돈도 허투루 쓰지 않고 꼬박꼬박 저금해야 할 거예요. 이처럼 저축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돈을 쓰기 위해서 해요.

여러분 부모님이 저축하시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예요. 앞으로 써야 할 돈을 미리미리 모아두려는 거지요. 여러분이 이다음에 커서 갈 상급 학교 등록금과 같은 교육비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은퇴하신 뒤에 쓰거나 지금보다 조금 더 넓고 깨끗한 집에서 살기 위해서 저축해요.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플 때 써야 할 병원비 용도로 저축통장을 만들어두기도 하지요.

이런 것쯤 다 안다고요? 그래요. 그럼, 이제부터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여러분이 돼지저금통에 돈을 모은다면, 저축은 ‘미래의 소비’를 위해 지금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만 가져요. 그런데 은행에 저금한다면? 여기서부터 복잡한 이야기가 시작돼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거든요.

10만원을 은행에 저축했다 쳐요. 은행은 이 돈을 어떻게 할까요? 계속 금고에 넣어두고만 있을까요? 아니지요. 1만원만 금고에 넣고 나머지 9만원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기업에 빌려줘요. 물론 이자를 받고요. 그다음엔? 이 9만원을 빌려간 사람(혹은 기업)이 1만원은 쓰고 다시 8만원은 은행에 저금을 할 수도 있죠. 그러면 다시 은행은 8000원만 금고에 넣고 나머지 7만2000원은 또 누군가에게 빌려줘요. 이런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세상에 풀린 돈은 계속 불어나지 않겠어요? 종잣돈은 10만원에 불과했는데 말이에요.

이런 과정을 어려운 말로 ‘신용 창조’라고 해요. 예금과 대출이 반복되면서 돈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뜻이죠. 통계를 보니,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한국은행이 찍어낸 돈은 129조원인데, 시중에 풀린 돈은 2237조원이라 해요. 종잣돈이 무려 20배 가까이 불어난 거예요.

저축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가면 어떡하느냐고요? 음, 아주 곤란한 질문이네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은행 금고에는 내어줄 돈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요. 10만원 받아서 1만원만 금고에 넣어놨으니 말이에요. 진짜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은행에 돈이 부족해서 저축한 사람들이 맡긴 돈을 다 찾지 못하는 일 말이에요. 이러면 은행은 망하게 되고, 돈을 맡긴 사람은 돈을 떼이게 돼요. 황당하고 끔찍한 일이죠?

이런 일은 돈을 맡겨둔 사람들의 불안심리, 즉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위기의식이 커질 때 발생해요. 불안이 여러 사람을 감염시키면 앞다퉈 은행에 찾아가 ‘내 돈 내놔’ 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런 걸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해요. 은행(Bank)으로 예금자들이 모두 달려가는(Run) 모습을 떠올려봐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막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커져요. 한 은행이 망하면, 다른 은행도 도미노처럼 무너지죠. ‘국민은행이 돈을 내어주지 못하게 됐는데, 하나은행이라고 돈을 제대로 내어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다행스러운 건 이런 현상은 자주 일어나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개발돼 있다는 거지요. 예금자보호제도가 그런 것 중 하나예요. 원금(맡겨둔 돈)과 이자(맡겨둔 돈에 붙는 돈)까지 합해 5000만원까지는 은행이 망하더라도 나라에서 갚아줘요. 물론 이런 제도가 있다고 해서 뱅크런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지난해 한국은행 찍은 돈 129조원
시중에 풀린 돈은 2237조원
이게 바로 ‘저축의 마술’인데
요즈음엔 세계불황으로 돈 안 써
은행에 돈이 쌓여만 가요

저축을 많이 해서 문제라는데
“하지 말라” 할 수도 없고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
“그럼, 정부가 돈 많이 쓰면 되지”
G20 경제회의가 제안했어요

경제 망가뜨리는 ‘저축의 역설’

앞서 말한 신용 창조 과정을 거쳐 여러분이 저축한 돈은 수십, 수백 배로 불어나 시중에 풀려요. 달리 말하면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들여 물건을 만들기 위해 은행에서 빌리는 돈이 실은 여러분의 저축에서 시작됐다는 거지요. 저축이 없으면 이런 경제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겠지요?

이래서 가난한 나라는 경제성장을 위해 저축을 활성화하는 데 노력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어요.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어두지 말고 은행에 저축하라고 정부가 앞장서 홍보했지요. 제가 어릴 때는 초등학생들도 매주 얼마간 학교에 가서 저축을 했어요. 저축 안 하면 벌을 서기도 했던 기억도 나고, ‘저축 안 하면 모두 가난해질 수 있다’고 한 선생님 말씀도 떠올라요. 이처럼 저축은 개인 차원에선 미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활동이고, 나라 전체로 보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 종잣돈 구실을 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요즘에는 저축이 문제라 해요. 안 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해서라고 합니다. 저축은 무조건 좋은 일 같은데, 그렇지 않다니요? 고개가 갸웃거려져요. 저축이 효자에서 말썽꾸러기로 바뀐 사연은 이래요.

2008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대부분 나라의 경제는 엉망이 됐어요. 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되살아날 조짐마저 없지요. 언니, 오빠들이 일자리를 잘 찾지 못하거나 엄마, 아빠 봉급이 잘 오르지 않는 것도 다 이 때문이죠. 여하튼 이렇게 경제가 오랫동안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돈을 안 쓰게 돼요. 그 대신 저축을 하지요. 경제가 더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저축은 2008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어요. 앞에 말한 이유대로 저축이 늘어난 것은 달리 보면 돈을 덜 써서이기도 하고 또한 저축된 돈을 누군가 빌려가지 않아서이기도 해요. 경제가 어려운데 돈을 빌려서 공장 짓고 사람 뽑고 할 기업이 얼마나 있겠어요. 은행 금고만 가득 채워지는 거죠. 한마디로 돈이 돌지 않고 은행에 잠겨버리는 거예요.

이런 현상을 ‘저축의 역설’이라 해요. 조금 어려운 말이지요? 저축이 마술을 부려 경제를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정상인데, 외려 저축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거지요. 모두가 저축만 하고 돈을 쓰지 않으니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게 되고 물건값도 떨어지지요. 버티지 못하는 기업은 문을 닫게 되고, 엄마, 아빠도 일자리를 잃거나 봉급이 줄어들게 될 수 있어요.

“이자는 필요 없으니 맡아만 달라”

이달 초에 저축의 역설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웃나라 일본에서죠. 정부가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국채)을 2조2000억엔 발행했는데, 이자율이 마이너스였던 거예요. 이 채권은 10년 뒤에 빌린 돈을 정부가 갚아주기로 약속하는 금융상품인데요, 돈을 갚아줄 때 이자는커녕 원금도 다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 채권을 사겠다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렸다고 해요.

다시 말해 여러분이 은행에 100원을 저축했는데, 돈을 찾을 때 은행이 이자는커녕 90원만 준다는 거예요. 참 황당한 일이죠? 이럴 바에야 은행에 저축을 하기보다는 돼지저금통에 저금하거나 땅에 묻어두는 게 나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 채권을 사겠다는 사람들, 즉 손실을 보겠다고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 넘쳐났다니요.

어찌 보면 이 부당하게 보이는 거래에 많은 사람이 참여한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경제가 어려워서지요. 어디다가 10년 동안 돈을 묻어둘 만한 곳이 없다는 거예요. 손실을 볼지언정 10년간 돈을 안전하게만 맡아달라는 거지요. 예전에는 한푼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쪽에 저금을 했다면, 이제는 이자는 필요 없으니 맡아만 달라며 저금을 하고 있는 거예요. 손실은 일종의 보관료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돈을 맡아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쯤 될까요.

아직 우리나라는 이 정도 상황은 아니에요. 일본만큼은 경제 형편이 나쁘지는 않다는 얘기죠.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쓰는 돈보다 저축을 하는 돈이 더 빨리 불어나고 있고, 은행에 잠겨 있는 돈도 그만큼 불어나고 있어서 일본에서 벌어진 일을 ‘남의 일’이라고 밀쳐놓을 수만은 없어요. 언제라도 우리도 그런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상황이 이쯤 되니, 어쩌면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도 바뀔지 모르겠어요. 저축이 바람직하다고만 지금은 배우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축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배울 수 있겠죠. 소비가 갖는 긍정적 의미를 선생님이 강조하실 수도 있겠네요.

여하튼 저축이 문제인, 참 신기한 혹은 어려운 시대에 여러분은 살고 있어요. 더구나 똑 떨어지는 해법은 그 누구도 잘 찾지 못하고 있어요. 저축이 문제니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저축하는 사람에게 돈을 쓰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한가지 제안은 있어요.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쓰라는 거지요. 가계와 기업이 모두 저축을 하고 소비를 하지 않으니, 그 빈자리를 정부가 채우라는 뜻이에요.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경제회의에서 나온 제안이죠. 그러나 이 방법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요. 정부도 경제가 어려운 탓에 곳간이 점점 비어가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많이 쓰게 되면 그만큼 내야 하는 빚도 늘어나게 될 것 아니에요. 자, 그래서 빚을 내더라도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할지, 아니면 경제가 더 어려워지더라도 정부도 돈을 덜 써야 할지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워해요. 저축의 시대, 경제는 곪아가고 있습니다.

김경락 기자
김경락 기자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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