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중 한 곳인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2006년 한 대학 캠퍼스에서 중장비로 붓글씨를 쓰며 회사 홍보에 나선 모습. 두산인프라코어는 얼마 전 회사가 어렵다며 신입사원에게도 사표를 내라고 요구했다가 그룹 회장이 사과를 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은 여러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기업을 수렁에서 건져주는 ‘양날의 칼’이다. 연합뉴스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2) 기업 구조조정 바람
(12) 기업 구조조정 바람
농부는 여름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논으로 달려갑니다. 벼 이삭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물길을 트기 위해서라고 해요. 이삭이 오랫동안 물에 잠기면 쉬이 썩어버리거든요. 쓰러진 벼 이삭을 곧추세우기도 하고, 가망 없는 이삭들은 솎아내는 일도 합니다. 장마철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언젠가 홍수가 할퀴고 지나간 어느 마을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본 일도 있을 거예요. 어떠하던가요? 텔레비전,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들이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고, 무너져 내린 집의 시멘트 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물 밑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온갖 쓰레기가 물이 다 빠지고 나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기업 구조조정’을 이야기해보려 해요. 얼마 전엔 10대 그룹 중 한곳인 두산그룹의 한 계열사가 신입사원에게도 회사가 어렵다며 사표를 내라고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그룹 회장이 사과를 하는 일이 있었죠. 또 한때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던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요즘에는 1순위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소식도 곧잘 들려요. 또 지난 한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 조선회사들이 대대적으로 인력을 줄이기도 했죠.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자의 반 타의 반 나서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때요? 이 말만 들어서는 구조조정은 나쁜 것 같아요.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주니까요. 그런데 눈을 조금 돌리면 다른 뉘앙스의 글들도 볼 수 있을 거예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 ‘선거를 앞두고 구조조정이 잘 안될 가능성이 크다’란 주장들이요. 이런 주장을 듣다 보면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이 바로 구조조정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오래달리기 시합’을 상상해보세요
선생님이 한달 뒤 오래달리기 시합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쳐요. 평소 운동을 많이 한 친구라면 ‘그쯤은 뭐’ 하며 별걱정을 안 할 거예요.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지 않겠어요? 숨쉬기 운동만 한 친구라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죠. 여러분 중에도 이런 친구 많을 거예요. 1등은 포기했다 치더라도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헉헉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끔찍이 싫을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죠. 오래달리기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해요. 군살도 빼고 다리에 힘도 올려야겠지요. 아픈 데가 있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요. 친구들과 논다고 종종 거르거나 대충 먹던 끼니도 잘 챙겨야 해요.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미리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러저러해서 시합에 참여할 수 없다고요.
기업 구조조정도 이런 거예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을 정리하는 거죠. 불필요하게 갖고 있는 땅이 있다면 팔고(자산매각),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 사업 분야가 있다면 좀더 잘할 수 있는 다른 기업에 넘겨야 해요(사업재편). 또 직원에게 급여를 지나치게 많이 주고 있다면 줄여야 하고, 이마저도 부족하다면 직원을 내보낼 수도 있겠죠(인력 조정). 그 대신 좀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거죠. 이런 과정을 모두 구조조정이라 불러요.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채 모두 끌어안고 있거나 그대로 있다가는 결국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해요. 시민단체나 공기업처럼 추구하는 다른 목적이 없는 민간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못 벌면 존재할 이유도, 존재할 수도 없어요.
구조조정은 개별 기업이 스스로 하기도 하지만 은행이 나서기도 해요. 무슨 권리로 은행이 기업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냐고요?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지요. 돈 빌려간 기업이 경쟁력을 잃어 돈을 벌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다면 은행으로선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거 아니겠어요? 은행이 자꾸 돈이 떼이다 보면, 이 은행에 돈을 맡겨둔 여러분 엄마, 아빠들이 손해를 볼 수가 있답니다. 여하튼 그런 일이 있기 전에 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은행은 필요하다면 빌려준 돈을 깎아주기도 하고, 더 빌려주기도 하죠. 물론 더 이상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면 거래를 끊기도 해요. 이미 빌려준 돈을 떼인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거죠.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않는 대신 기업의 경영권을 뺏거나 경영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기업구조조정은 왜 어려울까요
은행과 주주, 경영진과 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이 많은데다
짊어질 고통의 몫 줄이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때는 정부 역할이 중요해요
돈을 더 꿔주면 살아날 기업을
잘 골라 은행이 빌려주도록 하고
재산 숨겨둔 경영진 감시해야죠
일자리 잃은 직원들 돌봐야 하고요 돈 풍년 시절이 지나가고 있대요 이런 구조조정은 원래 평소에 하는 거예요. 어려울 때만 구조조정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실제 오래가는 강한 기업들은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조금씩 구조조정을 해나가죠.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며 군살 빼고 체력을 길러온 친구가 오래달리기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독 구조조정 바람이 부는 이유가 뭘까요?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까지 나서 “구조조정은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필수적 과제”라며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근본적으로 제대로 해야만 한다”고까지 말씀하셨네요. 구조조정이 개별 기업 수준을 떠나 국가 과제가 된 듯한 모양새가 됐어요. 이는 그만큼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이 많다는 뜻이겠죠. 실제 돈을 잘 벌지 못하고 빌린 돈도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기업이 한둘이 아니에요. 갑자기 이런 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돈을 빌리는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장마철 농촌 풍경과 홍수가 덮친 마을 이야기를 했잖아요. 최근 4~5년간 기업들은 그야말로 돈의 홍수 속에 살았어요. 매우 값싸게 돈을 빌릴 수 있었죠. 은행들도 쉽게 돈을 꿔주었지요. 그러다 보니 사업을 잘 못해 돈벌이를 못하더라도 은행에서 꿔간 돈으로 생명을 연장해간 기업들이 적지 않았어요.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면서요. 그런데 지금 돈 풍년 시절이 점차 지나가고 있는 거예요. 마치 홍수가 난 마을에 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쓰레기더미가 고개를 내밀듯 돈 풍년 시절에 가려져 있거나 주목받지 않던 부실한 기업들이 하나둘 제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이런 기업들 중에는 덩치가 큰 대기업들도 적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욱 빨라질 거라고들 해요. 돈 풍년을 가져왔던 미국이 점차 돈을 거둬들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래요. 미국이랑 우리나라는 경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거든요.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면 우리나라 은행들도 돈줄을 죌 수밖에 없어요. 부실한 기업들은 돈을 꾸기 어렵게 됐으니 땅이나 공장 등 갖고 있는 재산을 팔거나 임원과 직원들의 월급을 깎거나 하는 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미루고 미뤄왔던 구조조정을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거예요. 모두가 공감할 규칙을 세워야 해요 구조조정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쉬웠다면 그간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많은데다, 서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각자 짊어져야 할 고통의 몫을 줄이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에요. 이해관계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구조조정의 방식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에요. 일단 돈을 빌려준 은행은 최대한 이자까지 포함해 돈을 다 받아내려 해요. 기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은 기업에 추가로 자신의 돈을 집어넣으려 하기보다는 은행에 돈을 더 빌려달라고 하거나 직원들의 월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경영진은 끝까지 경영권을 놓으려 하지 않아요. 직원들 역시 고통 부담은 달갑지 않죠. 그래서 구조조정을 할 때는 원칙을 잘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거죠. 무엇보다 회사를 어렵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를 잘 따져야 해요. 책임이 큰 쪽이 더 많은 고통의 짐을 져야 하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거예요. 또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쪽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하는지도 잘 판단을 해야겠지요. 새로운 살길을 찾지 못한다면 고통 분담의 의미도 빛이 바래지 않겠어요? 이런 게 법으로 모두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정답이 있지도 않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걸 잘해내야 기업은 살아나고, 각자의 희생도 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종종 아니 자주 이런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고통을 주로 기업 내에서 직원들이 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회사가 어려워지면 일단 직원들 임금부터 줄이고, 더 어려워지면 회사 밖으로 밀어내는 일부터 하려는 경영진이나 은행들이 많다는 거죠. 직원들이 은행이나 경영진에 견줘 상대적으로 힘이 달리기 때문이지요. 이래서 법(근로기준법)에선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직원을 한꺼번에 내쫓는 행위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요. 불가피한 경우, 즉 다른 수단을 다 써본 뒤에 마지막으로 직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거예요. 이는 다른 이해관계자들보다 직원들의 힘이 달려서이기도 하지만, 직원 입장에선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삶 자체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법의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서 직원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발적으로 회사문을 걸어 나오는 직원들도 있어요.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처럼 무더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요. 대규모 구조조정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또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직원들이 져야 할 짐보다 더 많은 짐을 지는 경우도 많이 나타날 우려가 있어서예요. 일단 정부는 갑자기 돈줄이 말라서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있는지부터 잘 살펴봐야 합니다. 돈을 조금만 더 꿔주면 살아날 수 있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기업들은 골라내는 거죠. 은행들이 이런 기업에도 돈을 잘 꿔주지 않으려 한다면,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책은행들이 나서서 돈을 빌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기 재산을 빼돌리거나 숨겨둔 경영진이 없는지도 감시해야 합니다. 이런 꼼수를 경영진이 부리면 부릴수록 이해관계자 간 신뢰가 무너지고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면서 희생만 커지게 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일반 직원들을 돌보는 구실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 형편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튼실하게 갖춰야 해요. 또 직업 훈련이나 일자리 알선과 같은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요. 기업만 살고 기업 안의 사람이 죽는다면 어떤 구조조정도 환영받지는 못할 거예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정부의 이런 구실은 반드시 필요해요. 일자리를 잃고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떤 직원이 구조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겠어요.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은행과 주주, 경영진과 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이 많은데다
짊어질 고통의 몫 줄이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때는 정부 역할이 중요해요
돈을 더 꿔주면 살아날 기업을
잘 골라 은행이 빌려주도록 하고
재산 숨겨둔 경영진 감시해야죠
일자리 잃은 직원들 돌봐야 하고요 돈 풍년 시절이 지나가고 있대요 이런 구조조정은 원래 평소에 하는 거예요. 어려울 때만 구조조정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실제 오래가는 강한 기업들은 누가 뭐라 하기 전에 조금씩 구조조정을 해나가죠.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며 군살 빼고 체력을 길러온 친구가 오래달리기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독 구조조정 바람이 부는 이유가 뭘까요? 새해 벽두부터 대통령까지 나서 “구조조정은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필수적 과제”라며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근본적으로 제대로 해야만 한다”고까지 말씀하셨네요. 구조조정이 개별 기업 수준을 떠나 국가 과제가 된 듯한 모양새가 됐어요. 이는 그만큼 구조조정을 해야 할 기업이 많다는 뜻이겠죠. 실제 돈을 잘 벌지 못하고 빌린 돈도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기업이 한둘이 아니에요. 갑자기 이런 기업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돈을 빌리는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장마철 농촌 풍경과 홍수가 덮친 마을 이야기를 했잖아요. 최근 4~5년간 기업들은 그야말로 돈의 홍수 속에 살았어요. 매우 값싸게 돈을 빌릴 수 있었죠. 은행들도 쉽게 돈을 꿔주었지요. 그러다 보니 사업을 잘 못해 돈벌이를 못하더라도 은행에서 꿔간 돈으로 생명을 연장해간 기업들이 적지 않았어요.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면서요. 그런데 지금 돈 풍년 시절이 점차 지나가고 있는 거예요. 마치 홍수가 난 마을에 물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쓰레기더미가 고개를 내밀듯 돈 풍년 시절에 가려져 있거나 주목받지 않던 부실한 기업들이 하나둘 제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이런 기업들 중에는 덩치가 큰 대기업들도 적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욱 빨라질 거라고들 해요. 돈 풍년을 가져왔던 미국이 점차 돈을 거둬들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래요. 미국이랑 우리나라는 경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거든요.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면 우리나라 은행들도 돈줄을 죌 수밖에 없어요. 부실한 기업들은 돈을 꾸기 어렵게 됐으니 땅이나 공장 등 갖고 있는 재산을 팔거나 임원과 직원들의 월급을 깎거나 하는 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미루고 미뤄왔던 구조조정을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거예요. 모두가 공감할 규칙을 세워야 해요 구조조정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쉬웠다면 그간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많은데다, 서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각자 짊어져야 할 고통의 몫을 줄이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이에요. 이해관계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구조조정의 방식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에요. 일단 돈을 빌려준 은행은 최대한 이자까지 포함해 돈을 다 받아내려 해요. 기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은 기업에 추가로 자신의 돈을 집어넣으려 하기보다는 은행에 돈을 더 빌려달라고 하거나 직원들의 월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경영진은 끝까지 경영권을 놓으려 하지 않아요. 직원들 역시 고통 부담은 달갑지 않죠. 그래서 구조조정을 할 때는 원칙을 잘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을 만드는 거죠. 무엇보다 회사를 어렵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는지를 잘 따져야 해요. 책임이 큰 쪽이 더 많은 고통의 짐을 져야 하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거예요. 또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쪽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하는지도 잘 판단을 해야겠지요. 새로운 살길을 찾지 못한다면 고통 분담의 의미도 빛이 바래지 않겠어요? 이런 게 법으로 모두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정답이 있지도 않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걸 잘해내야 기업은 살아나고, 각자의 희생도 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종종 아니 자주 이런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고통을 주로 기업 내에서 직원들이 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요. 회사가 어려워지면 일단 직원들 임금부터 줄이고, 더 어려워지면 회사 밖으로 밀어내는 일부터 하려는 경영진이나 은행들이 많다는 거죠. 직원들이 은행이나 경영진에 견줘 상대적으로 힘이 달리기 때문이지요. 이래서 법(근로기준법)에선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직원을 한꺼번에 내쫓는 행위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요. 불가피한 경우, 즉 다른 수단을 다 써본 뒤에 마지막으로 직원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거예요. 이는 다른 이해관계자들보다 직원들의 힘이 달려서이기도 하지만, 직원 입장에선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삶 자체가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법의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서 직원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발적으로 회사문을 걸어 나오는 직원들도 있어요.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처럼 무더기로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요. 대규모 구조조정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또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직원들이 져야 할 짐보다 더 많은 짐을 지는 경우도 많이 나타날 우려가 있어서예요. 일단 정부는 갑자기 돈줄이 말라서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있는지부터 잘 살펴봐야 합니다. 돈을 조금만 더 꿔주면 살아날 수 있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기업들은 골라내는 거죠. 은행들이 이런 기업에도 돈을 잘 꿔주지 않으려 한다면, 정부가 직접 운영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책은행들이 나서서 돈을 빌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기 재산을 빼돌리거나 숨겨둔 경영진이 없는지도 감시해야 합니다. 이런 꼼수를 경영진이 부리면 부릴수록 이해관계자 간 신뢰가 무너지고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면서 희생만 커지게 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일반 직원들을 돌보는 구실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 형편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튼실하게 갖춰야 해요. 또 직업 훈련이나 일자리 알선과 같은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요. 기업만 살고 기업 안의 사람이 죽는다면 어떤 구조조정도 환영받지는 못할 거예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정부의 이런 구실은 반드시 필요해요. 일자리를 잃고 삶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떤 직원이 구조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겠어요.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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