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집 원아들이 지난해 2월13일 설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노인복지센터를 찾아 동요와 율동을 선보이며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싱크탱크 광장
‘행복을 정책적으로 정조준해야 할 때다.’ 2012년 유엔(UN·국제연합)의 제1차 ‘세계행복보고서’ 발간은 각국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공공정책이 시민들의 행복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2013년 제2차 보고서, 2015년 제3차 보고서가 발간됐다. 이 보고서의 출현으로 세계와 국가, 도시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해야’ 하며, 사람을 위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공공정책이 어떤 개입을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 성찰적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경제 중심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자각과 반성이 급속히 제출되기 시작한 셈이다. 또다른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도 2011년부터 ‘더 나은 삶을 향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 34개 회원국의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부탄은 이미 1970년대에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행복’을 기준으로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이른바 ‘행복정치’를 표방했다.
■ 세계는 지금 ‘행복’ 정책 개입 중
세계 각국은 이미 시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정책적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치 인플레이션타기팅(물가안정목표제)처럼 ‘행복 타기팅’ 정책을 제대로 펴려면 우선 시민들의 주관적 행복 수준을 다각도로 정교하게 측정해야 한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는 세계 15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갤럽 ‘삶의 평가’ 자료를 기반으로 1인당 지디피, 사회적 지지, 기대수명, 자기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부패로부터의 자유, 관용 등 6가지 변수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2012년 조사 결과를 보면, 세계적으로 지난 30년간 행복도는 평균 0.14배 증가했다. 가장 행복한 4개국(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네덜란드)은 평균 7.6점, 행복도가 가장 낮은 4개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은 평균 3.4점이었다. 특히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 이외에 ‘사회적 신뢰’ 같은 다른 변수들이 행복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13년 세계행복도 조사(6.2점)에서 41위였다. 오이시디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더 나은 삶 지수’(2014)에 따르면 한국은 25위다. 11개 평가영역에서 시민참여(3위)·교육(4위)·안전(6위)은 상위권인 반면, 환경(30위)·건강(30위)·공동체(34위)·일과 삶의 균형(34위)은 하위권이다.
영국은 2010년, 성장을 포괄적으로 측정하기에는 불완전한 지디피 경제지표를 대체할 웰빙지표(GWB)를 중요한 사회발전 지표로 제시했다. 행복지수를 통해 삶에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재평가해 장기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기로 한 셈이다. 2011년엔 영국 통계청이 실시한 전국 가구 조사에서 행복 관련 질문(4개)이 최초로 수록됐다. 2012년 초에는 통계청 주관으로 수십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대중협의회’를 열어 ‘국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측정 범위·지표들을 구축했다. 2012년 이후 매년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영국의 ‘국민 웰빙 지표’는 개인 행복감·관계·건강·일·주거지·경제 등 총 10개 영역에 걸쳐 42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캐나다의 행복지수인 ‘삶의 질 지표’(CIW)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장기간 논의를 거쳐 2011년에 확정됐다. 온타리오주 워털루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가단위 연구로, 총 8개 영역(건강, 생활수준, 커뮤니티 활력, 교육, 환경 등)에 걸쳐 64개 지표로 구성된다. 이 행복지수 데이터는 주로 캐나다 통계청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뉴질랜드의 ‘삶의 질 서베이’(QLS)는 오클랜드 등 6개 지역위원회와 협력해 2003년부터 2년에 한번씩 조사되고 있다. 2014년 조사는 국제여론조사기관 닐슨이 5200여명을 대상으로 수행했다. 이 서베이는 총 8개 영역(건강과 웰빙, 범죄와 안전, 커뮤니티, 공공교통 등)에 걸쳐 30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네덜란드의 ‘행복지표’(LSI)는 네덜란드 통계청과 국책연구기관인 사회연구소가 이미 1974년부터 개발·조사하고 있다. 2년에 한번씩 삶의 질 지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8개 영역(건강·주거·이동성·휴가·사회참여·스포츠 등)의 19개 지표로 구성돼 있다.
유엔 2012년 ‘세계행복보고서’ 발간
각국 정책 패러다임 전환 획 그어
OECD도 회원국 삶의 질 종합적 측정 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도
건강·환경 등 다양한 영역 조사
국민의 ‘행복지표’ 체계화 한국 행복 측정 연구는 더뎌
개별적 일회성 연구에 그쳐
“정책목표에 행복지표 활용 필요” ■ 행복 영향 요인, 소득·건강 등 다양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거시적 요인으로서 ‘소득’이다. 소득은 경제발달이 낮은 단계에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 변수이지만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고 나면 제한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수많은 국제 행복연구에서의 일치된 결론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현실 만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소득이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욕구의 기대치 역시 상승하게 되면 소득의 절대적 증가로부터 얻는 주관적 행복감은 이전과 비교할 때 불변이거나 심지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여러 연구들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행복 불평등’ 역시 커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나이와 성별도 한가지 변수다. 나이와 행복감의 관계는, 40대 중반까지 행복지수가 낮아지다가 그 이후부터 증가한다는 주장(U자형)과 51살까지 행복지수가 높아지다가 이후부터는 감소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일반적으로 U자형 주장이 다수다. 다만 성별에 따른 행복도의 차이는 일반화하기 어렵다. 성별은, 그 자체가 행복을 결정짓는 직접 요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인구사회학적 및 환경적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영향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건강을 보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큰 행복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는 교육 그 자체의 영향보다는 교육이 가져온 안정된 경제적 지위 때문일 수 있다. 여러 행복연구들에 따르면, 건강과 행복은 일관되게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건강이 행복 수준을 직접적으로 결정짓기도 하지만, 소득 수준과 교육 등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때조차 건강을 매개로 구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와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여러 실증연구에 따르면, 가족·이웃·지역공동체와의 연대가 강할수록 또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응답자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삶의 만족도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신뢰’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행복을 증진하려면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정책이 집중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요인도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민주정치체제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국가 간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를 통제(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일수록 행복에 대한 민주주의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 한국, 정책개입 아직 초보단계 한국 사회의 행복 측정 연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디고 늦은 편이다. 아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개별적인 일회성 연구에 그치고 있다. 주관적 지표의 경우 측정 내용이 제각각이고 설문 항목이나 질문 방식도 서로 다른 기준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행복지표의 정책적 활용은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지표도 개발해야 한다. 고승희 충남연구원 행정복지연구부장은 “행복 측정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건 사용된 개별 지표들이 적절히 선택되었는지, 부여된 가중치가 적절한지 등의 문제다. 행복지수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우선순위 선정과 평가에 기여하려면 시계열적인 변화 양상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측정된 행복지표 조사 결과를 정책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삶의 어떤 측면이 행복에 중요성을 갖는지, 행복도를 높이려면 어떤 사회문제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식별’이 이뤄져야 한다. 고승희 부장은 “정책 목표와 우선순위 설정, 이를 위한 예산 책정 등 자원 투입, 행복 관련 정책의 성과 평가 등 여러 과정에서 행복지표를 활용하도록 제도적 절차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행복지표는 지속적이고 방대한 자료 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중앙과 지역의 각 기관에서 운영중인 행복 관련 지표를 체계적으로 통합분석할 전문조직도 필요하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서울시민의 체감 행복지수(10년 전, 현재, 10년 후) 평가
각국 정책 패러다임 전환 획 그어
OECD도 회원국 삶의 질 종합적 측정 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도
건강·환경 등 다양한 영역 조사
국민의 ‘행복지표’ 체계화 한국 행복 측정 연구는 더뎌
개별적 일회성 연구에 그쳐
“정책목표에 행복지표 활용 필요” ■ 행복 영향 요인, 소득·건강 등 다양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거시적 요인으로서 ‘소득’이다. 소득은 경제발달이 낮은 단계에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 변수이지만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고 나면 제한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수많은 국제 행복연구에서의 일치된 결론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현실 만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소득이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욕구의 기대치 역시 상승하게 되면 소득의 절대적 증가로부터 얻는 주관적 행복감은 이전과 비교할 때 불변이거나 심지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여러 연구들은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행복 불평등’ 역시 커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나이와 성별도 한가지 변수다. 나이와 행복감의 관계는, 40대 중반까지 행복지수가 낮아지다가 그 이후부터 증가한다는 주장(U자형)과 51살까지 행복지수가 높아지다가 이후부터는 감소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일반적으로 U자형 주장이 다수다. 다만 성별에 따른 행복도의 차이는 일반화하기 어렵다. 성별은, 그 자체가 행복을 결정짓는 직접 요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인구사회학적 및 환경적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영향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건강을 보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큰 행복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는 교육 그 자체의 영향보다는 교육이 가져온 안정된 경제적 지위 때문일 수 있다. 여러 행복연구들에 따르면, 건강과 행복은 일관되게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건강이 행복 수준을 직접적으로 결정짓기도 하지만, 소득 수준과 교육 등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때조차 건강을 매개로 구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회적 신뢰와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여러 실증연구에 따르면, 가족·이웃·지역공동체와의 연대가 강할수록 또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응답자들의 행복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삶의 만족도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신뢰’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은 “행복을 증진하려면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정책이 집중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요인도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민주정치체제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국가 간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를 통제(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일수록 행복에 대한 민주주의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 한국, 정책개입 아직 초보단계 한국 사회의 행복 측정 연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디고 늦은 편이다. 아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개별적인 일회성 연구에 그치고 있다. 주관적 지표의 경우 측정 내용이 제각각이고 설문 항목이나 질문 방식도 서로 다른 기준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행복지표의 정책적 활용은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지표도 개발해야 한다. 고승희 충남연구원 행정복지연구부장은 “행복 측정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건 사용된 개별 지표들이 적절히 선택되었는지, 부여된 가중치가 적절한지 등의 문제다. 행복지수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우선순위 선정과 평가에 기여하려면 시계열적인 변화 양상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측정된 행복지표 조사 결과를 정책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삶의 어떤 측면이 행복에 중요성을 갖는지, 행복도를 높이려면 어떤 사회문제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식별’이 이뤄져야 한다. 고승희 부장은 “정책 목표와 우선순위 설정, 이를 위한 예산 책정 등 자원 투입, 행복 관련 정책의 성과 평가 등 여러 과정에서 행복지표를 활용하도록 제도적 절차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행복지표는 지속적이고 방대한 자료 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중앙과 지역의 각 기관에서 운영중인 행복 관련 지표를 체계적으로 통합분석할 전문조직도 필요하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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