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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가계부채 1200조…저소득층 빚 탕감해 경제 살리자”

등록 2015-12-17 20:36수정 2015-12-18 09:57

지난 8월27일 장기 연체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이 공식 출범했다. 이날 서울시청 안 시민청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인 이재명 성남시장(왼쪽 다섯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왼쪽 넷째)와 이사진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 8월27일 장기 연체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이 공식 출범했다. 이날 서울시청 안 시민청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인 이재명 성남시장(왼쪽 다섯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왼쪽 넷째)와 이사진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싱크탱크 광장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아 한국 경제가 대폭발하던 당시 ‘아이엠에프 특수’를 누린 유일한 업종이 있다. 바로 채권추심업체들이다. 금융권 전 영역에서 부실채권이 마구 쏟아져 나오면서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1999년 당시 대표적인 채권추심업체인 서울신용정보는 “아이엠에프가 낳은 기린아”로 불렸다. 채권추심전문 대행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외국계투자자들까지 한국에 채권추심전문 법무법인을 설립하는 등 ‘추심산업’이 비약적으로 확장됐다. 현재 가계부채가 12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폭증하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지 오래다. 채무 취약계층은 350만명가량(2013년 8월 기준)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장기 연체자들의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롤링주빌리 프로젝트’ 채무탕감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 “저소득·다중채무자 빚 탕감을!”이라고 외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금융소비자네트워크 회원들과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앞줄 맨 오른쪽)이 지난해 4월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부실채권소각-빚 제로 다시살기 운동 제안 기자회견’을 열어 채권과 압류통지서 등을 소각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금융소비자네트워크 회원들과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앞줄 맨 오른쪽)이 지난해 4월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부실채권소각-빚 제로 다시살기 운동 제안 기자회견’을 열어 채권과 압류통지서 등을 소각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가난한 채무자에게 채무탕감을

누군가의 빚을 탕감해주자는 주장은 즉각 거센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큰 위험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11월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15 사회경제정책포럼’에서 “신용대출 탕감은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경기활성정책”이라며 “저소득·다중채무자(복수의 채무계좌 보유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역발상의 정책을 펴자”고 사뭇 놀라운 주장을 내놓았다. 전 교수는 “그러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채권자들이 결딴날 것이라고 걱정하고 반대하겠지만 한국 경제는 ‘빚 권하는 경제정책’으로 성장해왔다. 이제 거꾸로 ‘신용대출을 맘껏 탕감해주자’”고 말했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같은 자산관리회사에 부실채권을 팔아넘겨 채권추심단계까지 가지 말고 대출은행 스스로 자체적인 원금 채무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갚을 수 있는 사람까지도 탕감해주자는 주장이 아니다. 전 교수는 “고의로 상환하지 않고 있는지 궁박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 살펴봐야 한다. 탕감 대상을 1억원으로 하자는 게 아니다. 예컨대 최초대출원금 1천만원 또는 500만원 정도로 기준을 잡을 수도 있다. 최초 소액대출이 연체금이 쌓이고 대부업체로 밀려가고 추심단계로 끌려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저소득층과 다중채무자, 소액의 채무원금 등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직접 부채 탕감에 나설 경우 피해를 입는 계층이 사실상 없다. 기실 신용대출은 거의 언제나 ‘제로섬 게임’이다. 즉 금융기관은 신용평가에 따라 금리를 차별 적용하고, 대손충당금 등 완충자금을 완비하는 등 사전에 이미 채무불이행을 예비하고 있다. 또 신용대출상환 불이행의 기회비용을 다른 일반적인 이자마진에 이미 반영하고 있다. 전 교수는 “신용대출 원금 탕감에 나서게 되면 은행이 일종의 보험사로 변신하는 셈이 된다”고 설명했다. 즉 대출과정에서 신용등급을 매길 때 부도 확률과 부도 시의 회수율을 등급산정(대출이자율 결정) 기준으로 삼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체하기 이전에 매월 받아온 높은 이자 자체가 곧 은행 자신에게 지급되는 보험금 성격을 갖는 셈이다. 마치 화재보험에 들었다가 불이 났을 때 보험금을 수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득분위별 가계부채 상환 불가능 응답 비율
소득분위별 가계부채 상환 불가능 응답 비율
은행들은 채무조정을 할 때 대출원금 회수 가능성이 희박해도 원금에는 전혀 손대지 않고 이자감면, 상환기간 조정 등만 할 뿐이다. 대출원금은 추심업자한테 그냥 넘겨버리고 있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금융기관의 채무조정 시 원금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인 채무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이에 따라 채무불이행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탕감에 뒤따르게 될 논란인 ‘도덕적 해이’는 어느 수준까지 사회적으로 인내와 용인이 가능할 것인가? 탕감 대상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도덕적 해이를 말하기 이전에 은행들이 원금 감면·탕감을 포함해 자체적인 채무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 먼저 지적돼야 한다. 10년 이상 연체된, 아무리 봐도 못 갚을 것 같은 채무는 추심에 넘기지 말고 은행 단계에서 완전히 털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도 “설사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어난다 해도 탕감 얘기를 외면하기에는 소비부진과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뇌관의 불을 끄려면 은행이 적극적으로 탕감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전성인 교수, 경제정책포럼서 제안
빚 취약계층 350만…한국경제 뇌관
부실채권 면제해도 은행 손실 없어
‘약탈적 대출’ 책임 분담도 필요
‘국민행복기금’도 구제 한계 노출

저소득층, 늘어난 소득 모두 소비
총수요 자극해 실질적 경기부양
신용불량자 취업 장벽 방지 효과
‘도덕적 해이’ 논란 해소가 관건

부채 보유 중인 소득 1분위(하위 20%)의 금융부채 및 재무건전성(만원,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탕감은 적극적 경제활성화 대책

외환위기 이전에는 은행의 각 지점들이 자체적으로 부실채권 추심은 물론 경매까지도 진행했다. 상환이 불가능해 보이는 특수채권은 대출원금 1천만원일 경우 200만원만 갚으면 상각처리해 ‘최종 종결’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본점 여신관리부서에서 한데 모아 회수를 위해 노력하다가 안되면 손실로 확정 처리한 뒤 그 부실채권을 캠코에 입찰 형태로 일괄 매각하고 있다. 사실 은행으로서는 캠코에 일괄 매각하는 것이 비용효율적이고 감독당국의 심사로부터도 자유로운데다 홀가분하게 부실채권을 털어낼 수 있는 방식이다. 한 시중은행의 홍보부장은 “은행 자체적인 채무조정 방식은 수많은 채무자의 개별적인 형편과 상환능력 파악에 엄청난 인력이 투입돼야 하고 개별 채무자들과의 채무조정 협상 과정에 막대한 인적·물적·시간적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자산건전성 평가다. 부실채권은 자산건전성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으로 부실채권을 제때 정리(캠코에 매각)해 털어내지 못한 채 계속 떠안고 있으면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건전성이 나빠져 여신자금 조달에 불리해진다.

그렇다면 신용대출채권 탕감이 어떻게 저비용의 경기활성화 대책이 된다는 걸까? 전 교수는 그 근거로 ‘긍정적인 연쇄고리’ 몇 가지를 꼽았다. 즉 저소득층은 소득이 늘어난 만큼을 전부 소비로 쓰는 계층이므로 높은 한계소비성향만큼 총수요가 자극돼 확실한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온다. 또 상환이 불가능한 채무자는 연체를 거듭한 끝에 다중채무자와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는 악순환에 빠져 취업도 곤란해지기 일쑤인데, 은행 자체적으로 상각처리하면 이런 취업곤란이 줄어 장기적으로 채무자의 인적자본 훼손을 막을 수 있다. 인적자본은 경제에서 생산성의 원천이다. 대출해준 은행 단계에서 탕감 등 채무원금 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어떤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의 권익이 신장되는 ‘최후의 커튼’ 효과도 발생한다. 즉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 부실화 징후가 있을 때 신용채무자의 협상력이 증가되고, 이제 그 제도에 근거해 은행 스스로도 책임을 피하고 채무조정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된다.

은행이 채무자들과 협상해 상각처리하는 방식은 투입비용을 제쳐두고 본다면, 은행에도 좀더 많은 대출금 회수의 길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채권은 은행들이 대출채권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에 자산관리회사에 넘기고 있다. 캠코에 따르면, 일괄매입 부실채권 9조9천억원(지난해 말 현재)의 평균 매입가격은 원채무액의 3.7% 수준인 3688억원에 그친다. 이재연 연구위원은 “어차피 은행이 대손상각해 1차적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할 거라면 추심업자에게 넘기기 전에 추심에 파는 금액보다 5%만 더 받고 상환받아 완전히 끝내주는 게 은행 입장에서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은행이 당신의 대출원금 1천만원 중 600만원을 탕감하고 400만원만 3개월, 6개월, 1년 안에 갚으면 자산관리회사에 넘기지 않고 최종 종결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본질적으로 대출은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은행 간의 당사자간 대출‘계약’이란 성격을 갖는다. 빚이란 게 본래 연체도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못 갚을 수도 있는 것이 속성”이라며 “은행과 채무자 간에 협상을 통해 상환을 둘러싼 계약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사실 추심회사에 한번 양도되면 연체액이 날로 불어나 장기화하면서 끝내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 국민행복기금의 한계

현재 상환능력이 취약한 채무자들의 부실채권에 대해 채무원금을 감면(최대 50%, 기초수급자·중중장애인·70세 이상 고령자는 최대 70%)해주는 국민행복기금(캠코가 운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상당수 저소득·다중채무자에게 이런 채무조정을 적용해 ‘탈출’을 돕기란 매우 어렵다. 국민행복기금도 연대보증인에게 빚의 일부를 대신 받아내거나 지급명령·소송의 방식으로 대출채권소멸시효(통상 5년)를 연장하고 있다. 사실상 연장의 실익이 없는데도 ‘끝없는 추심’을 하고 있는 격이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경제학) 등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 ‘국민행복기금 채무감면율의 적정성에 대한 소고’에 따르면, 2013년에 국민행복기금과 체결한 채무조정 수혜자 13만9천명의 채무액 변제가능 비율이 5% 이하로 나타났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월소득으로는 5% 미만의 채무만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대출해준 채권자(은행)의 도덕적 해이도 존재한다. 이재연 연구위원은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대출해준 ‘약탈적 대출’의 책임 측면에서 은행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전례가 없는 탕감은 가능할까? 분명한 건 저소득층 부채 뇌관의 한복판에는 신용대출 빚으로 경제성장을 꾀해온 정부 정책의 실패와 이에 따른 국가의 책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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