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청년 취업시장에서 여성들은 흔히 ‘남자가 최고의 스펙’이라는 자조 섞인 탄식을 내뱉는다. 비슷한 혹은 더 뛰어난 스펙을 지니고도 번번이 남성들에게 밀리는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질 좋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대기업 공채를 보면 매년 남녀 응시비율은 비슷한데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 성비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높다. 요즘처럼 고용이 얼어붙은 때에 여성 청년구직자들이 느끼는 이 불문율은 이제 차라리 ‘철의 법칙’이 되고 만다. 반면 질 나쁜 비정규직에선 여성이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 627만명 가운데 여성은 339만명(54.0%)이다. 1년 전에 견줘 남성 비정규직은 2.0% 증가한 반면 여성은 4.3%나 증가(13만8천명)했다. 임금격차도 심해졌다. 비정규직 중 고용의 질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제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남성은 79만3천원, 여성은 66만6천원으로 12만7천원의 차이가 난다. 지난해에는 7만원 차이였다. ‘차별의 이름’ 비정규직이 여성한테 집중되면서 ‘빈곤의 여성화’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시급한 사회문제인 청년 고용과 비정규직 문제 안에서도 여성은 차별받고, 낮은 위치에 서 있다. 젠더별 역할분담, 다시 말해 가족이 먹을 빵을 남성이 벌어들이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문화가 구성된 것도 그 한가지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옛 산업화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지난 11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20~60대 여성 66명의 경제적 자립도에 관한 심층면접 결과는 대부분의 여성이 일정기간 이상 생계부양자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면접에 응한 다양한 연령·계층의 여성들은 대부분 경제적 주체로서 사회 안에 편입되는 것에 구조적 어려움을 느끼고 좌절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자로서의 여성’ 단독 지위를 여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일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도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반을 두고 구축됐으며, 여성 경제활동을 여러 ‘변수’의 하나로만 설정하고 있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고용동향’을 비롯해 정부가 생산하는 각종 고용통계 지표 어디를 봐도 ‘여성 단신 노동가구’ 자료는 별도로 작성·공표되지 않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서 찾아낼 수 있는 관련 지표는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여성 1인가구(15세 이상)는 224만가구이며, 여성 가구 중 ‘일하였음’(104만)·‘일하지 않았음’(120만)이란 현황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단순히 소득 여부를 넘어 한 인간의 생애주기와 노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각 부문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때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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