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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제조업 기반 성장모델은 정말 수명 다했나

등록 2015-12-10 20:39수정 2015-12-10 22:13

싱크탱크 광장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겨냥해 저주에 가까운 발언까지 불사하며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했던 법안 중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있다. 그는 지난 7일 청와대 회의에서 이 법안을 두고 “맨날 일자리 걱정만 하면 뭐하느냐. 이게 통과가 되면 약 7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고, 청년들이 학수고대하며 그 법이 통과될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법이 오늘까지 1437일을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서비스산업 발전이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국민경제의 발전 양상을 돌이켜봐야 한다. 세계경제는 2007~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잇따른 침체 국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애초 위기가 선진경제권에서 시작된 데 반해 오히려 지금은 신흥국발 위기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선진시장의 수요 감퇴라고 할 수 있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신흥국들에서 만들어진 상품이 세계 각지에 팔리는 것은 그동안 세계경제의 주요한 ‘성장 공식’이었는데, 최근 선진경제권에서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인구 노령화 등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자 신흥국산 제조업 제품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연쇄적으로 원자재와 각종 중간재에 대한 수요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세계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되먹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수요 감퇴는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로 봐도 좋은가? 그러기가 어렵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하버드대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때이른 탈산업화’(premature deindustrialization)라는 구절로 이 문제를 정식화한 바 있다. 흔히 한 나라의 경제는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생산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발전한다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던 나라에 옷이나 식료품을 만드는 공장이 생기면서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이 산업화 또는 공업화다. 이 과정이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생산 품목이 자동차나 전자 등 자본·기술 집약적 업종으로 고도화되고, 그다음으로 대부분 노동력이 각종 서비스업에 속하는 단계에 이르면, 탈산업화가 이루어진다.

제조업 고도화뒤 탈산업화 순서
브라질·인도 등 너무 일러 문제
새로운 발전모델 못찾아 곤경

한국도 빠르게 서비스화 진행중
제조업보다 생산성 낮고 낙후 상태
정부 경쟁력 강화 노력은 당연

한국경제 체질 전환과 다름없어
‘일자리 몇개’로 접근해서는 안돼

세계 각국 제조업 고용 정점기 및 당시 1인당 소득 수준
세계 각국 제조업 고용 정점기 및 당시 1인당 소득 수준

그런데 로드릭에 따르면, 최근 신흥국들에서 이런 탈산업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게 문제이다. 즉, 제조업이 충분히 많은 노동력을 흡수하기도 전에, 그리고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도의 경우 제조업 종사자 비중이 2000년대 초에 정점을 찍었는데 20%에도 못 미쳤고, 브라질에서는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12~15%에 머물다가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이렇게 제조업 고용 비중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꺾이는 것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충분한 경제성장을 달성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즉 국민소득이 낮은 수준에서 경제가 조기에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미국,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들이 탈산업화를 겪을 때 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안팎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탈산업화를 시작할 때 1인당 소득은 5천달러에 불과했고, 인도는 2천달러 수준이었다.

때이른 탈산업화는 신흥국들에 매우 곤란하면서도 중요한 과제를 남긴다. 앞으로 경제성장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이냐 하는 과제이다. 세계화 진전에 따른 국제경쟁 격화와 기계화·자동화 심화에 따른 노동력 절감이 때이른 탈산업화의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이는 신흥국의 탈산업화가 돌이킬 수 없다는 성격을 가지며, 기존 제조업을 통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따라서 신흥국들은 새로운 경제발전 모형을 찾아내야 한다. 서비스업이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계와 정책담당자들을 괴롭혔던 질문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로드릭의 기준에 비춰봐도 ‘때이른 탈산업화’를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용이나 생산 구조를 보면, 우리 경제도 빠르게 서비스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서비스산업이 여전히 낙후되어 있고 생산성도 제조업에 비해서나 다른 선진국에 견줘 평균적으로 낮다는 데 있다. 그러니 정부가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포기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분화와 융합의 메커니즘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결합이 전통 제조업 발달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생산 과정의 세분화와 상품구성의 다양화가 진전됨에 따라, 기존에는 잠재되어 있던 서비스적 측면들, 부가가치 생산의 영역들이 새롭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의 강화를 제조업 차원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였던 ‘완제품’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서비스업은 국제교역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금융, 정보통신기술(ICT),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정부의 서비스업 육성도 사실상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정작 대다수 노동력을 흡수하고 있는 서비스업종은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 등 교역이 어려운 분야다. 이 분야들은 제조업에서 떨어져나온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임금과 생산성도 매우 낮은 편이다. 영세 소기업·자영업자일 가능성이 많은 이들은 대기업에 비해 가격협상력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대체로 그 생산물들은 노동자들의 재생산에 쓰이는 것이 많아 사회적·정책적으로 낮은 가격이 강요되어 왔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곧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다. 여기에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관련 분야 인력 양성과 장기적인 기술 습득까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서비스산업 육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일자리 몇 개 만들고 수출 얼마 더 한다는 차원으로 접근할 일이 아닌 것이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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