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12월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가장 활발한 때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제일 바쁠 때이기도 하다. 일년 중 가장 주목받고 빛나야 할 이들의 얼굴이 올해는 유독 어두워 보인다.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에 따라 사회책임경영(CSR) 관련 예산이 줄어든 때문이다. 사업 일부가 폐지될 위기에 놓여 있는 기업도 많다. 몇몇 기업에서는 사회책임경영 담당 부서를 다른 기능을 하는 조직과 통합하거나 아예 폐지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아직까지도 국내 기업들은 사회책임경영 관련 예산을 단순 비용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불황기일수록 기업들은 가장 먼저 삭감할 비용으로 사회책임경영 항목을 꼽는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관련 예산은 2조6708억원(2014년 기준)으로 전년도에 견줘 3.7% 감소했다. 경기 둔화 우려로 내년에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에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국제적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엔은 올해 초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해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무를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 막을 내린 파리 기후변화협약 총회의 영향으로 기업에 대한 환경 규제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에 맞춰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각국 정부들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관련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더 강화하고 있다. 대만 증권거래소는 지난 10월 상장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의무화 제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권 여러 나라의 증권 당국이 상장기업들의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 대상을 넓히고 있다. 일본은 기관투자가들의 기업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난해 도입했다. 이어 올해 6월에는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제시하는 등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높이고 있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경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핑계로 ‘산업계 달래기’에만 바쁘다. 올해 국내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산업계의 ‘우는소리’에 맞춰 정부는 산업부문 감축 목표를 애초보다 완화해 국제적 비판을 사기도 했다. 시장의 국경간 장벽이 점차 낮아지는 것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세계화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기업을 ‘우물 안 개구리’로 보호하려는가?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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