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들 ‘경영권 승계 폐해’ 토론
“재벌이 2% 소유권으로 30~40%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익 편취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보수 쪽 토론자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기업 가치가 떨어져도 총수 일가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여서 능력이 없어도 경영권을 잇기도 한다.”(진보 쪽 토론자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
3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재벌의 경영권 승계 관행, 어떻게 평가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진영과 상관없이 참석자들은 재벌의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의견을 보였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가 1.2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순환출자 등을 통한 지배력은 52.73%에 이른다. 사회자인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 교수도 “국내 재벌들이 2~3% 소유로 40~50%의 지배력을 행사해왔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는 같은 의견을 보였다”고 말했다.
신광식 교수는 ‘금수저’ 논란을 낳는 가족 승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프랑스나 독일의 가족기업은 소유권 40%, 지배권 55%”라며 “우리 재벌은 괴리가 훨씬 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지배의 사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심한 괴리 현상은 총수 일가가 사익 추구는 물론 승계 분쟁 등 지배권에 집착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박경서 교수도 “한국이 직계가족에 의한 경영자 승계에 집착하는 현상은 예외적”이라며 “순환출자 등으로 우호지분 확보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총수 일가가 경영에 직접 참여해 얻을 수 있는 사적 혜택이 매우 크고 이에 대한 제재나 규율은 적어 가족 승계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승계를 시장에 맡기자는 의견도 나왔다. 진보 쪽 토론자로 나선 이계안 전 의원은 현대차 사장을 지낸 경험을 얘기하며 “과거에는 정주영 회장의 뜻에 정세영, 정몽구 회장 등 승계가 이뤄졌다”며 “이제는 회사 성장에 전문경영과 총수경영 가운데 유리한 것을 시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쪽 토론자인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일본 도요타를 예로 들며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다 실적이 나빠지자 총수가 직접 경영하는 것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은 재벌의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어졌다. 먼저 재벌의 ‘오너’에 대한 개념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 교수는 “총수 일가의 소유권이 2~3%인데도 ‘오너경영’이라고 한다”며 “정확히는 창업자 경영이나 창업자 가족 경영이 맞다”고 말했다. 토론을 참관한 최운열 서강대 석좌교수도 “‘오너’라는 말 때문에 주인이 회사를 뜻대로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잘못된 인식을 준다”며 동의했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시 불이익을 많이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경서 교수는 “무능해도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총수 일가는 이익을 유지하는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신광식 교수도 “재벌 후계자가 무능해 경영을 실패하면 국민 전체가 그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며 “지배주주 일가는 경영 감시 역할을 하고 전문경영인을 도입하는 방향이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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