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김정호·진보 김상조 발제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논리를 깨고 개혁을 모색하는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재벌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진보쪽 발제를 맡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재벌 ‘소유경영체제’의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총수일가가 기존의 최고경영자(CEO) 대신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성과를 평가·관리하는 역할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놨다. 보수쪽 발제자인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소유경영체제의 대안도 없이 경영권 승계를 막는 것에 반대하며, 전문경영인체제가 과연 가능한지 포스코 등 대주주가 없는 기업들을 통해 실험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전문경영인체제가 잘 기능하려면
적대적 M&A통해 무능 퇴출돼야”
■ 평가 김상조 교수는 1987~2015년의 28년간 공정위가 매년 지정한 총수 있는 30대그룹의 변동을 분석한 결과, 30대그룹에 한번이라도 포함됐던 그룹은 77곳으로, 올해 현재 30대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47곳이 탈락했다고 말했다. 이들 47곳 중에서 대우·기아 등 28곳(59.6%)이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사실상 해체됐다. 김 교수는 “재벌을 대표하는 30대그룹의 위상도 안정적이지 못하며, 많은 그룹들이 부침을 거듭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부실이 만성화·악성화되었고 2015년 현재 30대그룹 중에서도 현대·한진·금호아시아나 등 7곳이 구조조정을 진행할 정도로 잠재부실이 심각하다면서, 앞으로 경제 회복 전망이 어두워 더 많은 그룹들이 유사 운명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30대그룹 중에서 범삼성 3곳(삼성·신세계·씨제이), 범현대 5곳(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현대백화점·KCC), 범엘지 3곳(엘지·지에스·엘에스), 에스케이 등 범 4대 재벌가의 친족그룹이 12곳(40%)에 달해, 한국 재벌의 판도가 소수 최상위 재벌의 친족그룹들에 의해 지배되어 기업가정신과 역동성이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겸임교수는 “재벌 경영권 승계에 반대하는 의견에 충분히 공감할만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이 경영권 승계를 막는 것에 반대한다”며 “소유경영체제를 부인한다면 종업원이나 정부가 최고경영자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오너 경영보다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같은 전문경영인체제도 집단적 의사결정에 서툴고, 노조가 강한 한국에서는 정착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30대 그룹 중 12곳이 4대재벌 친족기업
지주회사 전환 등에 대한 규율 공백”
■ 해법 김상조 교수는 “과거 한국이 ‘추격자’ 시절에는 자원동원형 리더십이 최고경영자의 주요 덕목이었으나 이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할 ‘개척자’가 된 상황에서는 관리·조정자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재벌 1~2세대에는 총수일가가 최고경영자로서 경영판단을 직접 했지만, 3세세대에는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룹 전체의 성과 평가, 위험관리 등의 역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정호 특임교수는 “(소유경영체제의 대안인) 전문경영인체제가 잘 기능하려면 무능한 경영인이 퇴출되도록 적대적 인수합병시장이 작동해야 한다. 포스코·케이티·케이티앤지 등 공기업 출신으로 대주주가 없는 기업을 통해 실험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상조 교수는 “총수일가의 불법·부당한 경영권 승계에 대한 규율장치가 상당히 개선됐으나, 일감 몰아주기 및 회사기회 유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고, 이를 통해 축적한 2·3세의 부를 그룹 지배권으로 연결하기 위한 지주회사 전환 등에 대한 규율은 공백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프랑스 대법원이 1985년부터 적용한 ‘로젠블럼 원리’를 상법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로젠블럼 원리는 종속회사가 그룹 전체에 이익이 되나 자신에는 일시적으로 손해가 될 수 있는 지시를 수용하는 경우 민형사상 면책을 인정하는 조건을 말한다. 김 교수는 순환출자 규제 등 등 공정거래법상 경제력 집중 억제책의 적용대상을 현행 자산 5조원 이상(61개 그룹)에서, 최상위 5~10대그룹과 계열분리된 친족그룹으로 줄이는 방안도 내놨다.
김정호 특임교수는 “누가 경영권을 승계해도 창업자인 1세대 기업인만은 못하겠지만, 2·3세 승계의 폐해만 문제시해서 막으면 더 큰 폐해를 낳을 수 있다”며 “오히려 경영권 승계시 상속세를 30% 할증하는 제도를 개선해서 경영권 상속을 더 쉽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적대적 M&A통해 무능 퇴출돼야”
김정호 교수
지주회사 전환 등에 대한 규율 공백”
김상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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