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적절한’ 조치 입증 요구
ISO, 내년 말 ‘반부패 경영 표준’ 발간
ISO, 내년 말 ‘반부패 경영 표준’ 발간
지난 3월 제정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마지막 24조에는 ‘양벌 규정’이 있다. 법에 저촉되는 부패 행위의 행위자는 물론 그가 소속된 법인 및 단체에도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단, 조직이 부패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기울인 경우 면책을 하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다. ‘상당한 주의와 감독’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2010년 제정된 영국의 뇌물수수법(The Bribery Act)에도 기업이 부패를 예방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음을 입증하면 면책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반부패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장려하기 위함이다.
2011년 영국 법무부에서 발간한 이행 지침(가이드라인)에서는 △적절한 절차 수립 △최고경영진의 의지 △리스크 평가 △선관주의 의무 △의사소통 △모니터링 및 검토 등 6개 원칙을 반부패 시스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행 지침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법에 의거해 작성되었고, 연성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적절한 절차 수립은 기업 규모나 사업의 복잡성에 비례해 반부패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정기적인 회의나 구두 보고만으로도 반부패 정책과 관련 사안을 전달할 수 있으나, 사업 단위가 크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대기업은 체계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진의 의지는 기업이 뇌물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대내외에 공표하고 동시에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반부패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리스크 평가는 기업 활동 시 잠재적 부패 위험의 속성과 범위를 평가하는 것이다. 부패 리스크는 활동 국가나 연관된 산업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예컨대 기업이 해외 진출을 계획할 때 해당 국가의 반부패에 대한 사회 인식이 높고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다면 부패 리스크는 낮을 것이다. 타 산업에 비해 뇌물 및 부패 빈도가 높은 건설과 기반시설 산업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선관주의 원칙은 사업 진행 시 각 단위에서 충분히 반부패 노력을 기울일 것을 의미한다. 부패 위험이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 반부패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사소통은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반부패 정책과 절차를 충분히 인지시키는 것을 뜻한다.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반부패 절차와 노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이 법은 영국 기업뿐 아니라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 영국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에도 적용된다.
영국 정부가 기업의 반부패 경영 체제를 구축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부패가 비용을 높인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뇌물이 전체 사업비의 10%까지 비용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난다. 반부패 경영 체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은 글로벌 단위의 흐름이기도 하다.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내년 말 ‘반부패 경영 표준’(ISO 37001)을 발간할 예정이다. 노한균 국민대 교수는 “국가별 특수성이 있겠지만 국제 통용 기준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국제 기준과의 교집합을 넓혀가는 쪽으로 가지 않겠나”고 의견을 밝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은 8월 중 입법 예고될 예정이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연재싱크탱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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