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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마을은 배움터로, 아이들은 마을 주인으로”

등록 2015-05-04 20:21수정 2015-05-06 10:04

지난 4월 경기 시흥시 오이도 유적 일원에서 학생들이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체험을 하고 있다.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제공
지난 4월 경기 시흥시 오이도 유적 일원에서 학생들이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체험을 하고 있다.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제공
[싱크탱크 광장] 학교+마을 공동체 ‘교육 사회적 기업’
“선생님은 왜 농촌으로 왔어요?”

충남에서 청소년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조성희 사무국장(충남교육연구소)이 자주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이곳에선 지금도 ‘서울대학교 ○○명 합격’이란 펼침막이 걸리고 마을 잔치가 열린다. 지역은 아이를 키워 서울로 보내고, 아이들은 할 일이 없어야 농촌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대한 자존감은 점점 떨어져가고, 지역을 빨리 떠나는 게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 조성희 국장은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지역을 떠나보내기 위한 일인 셈”이라고 자조한다.

지난달 28일 충남도청 회의실에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들이 모여 지역의 교육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김종수 센터장) 주관으로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의 제 역할을 찾는 워크숍 자리였다. 그간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 대부분은 방과 후나 학교 밖에서 교육활동을 펼쳐왔다. ‘방과후학교’, ‘토요프로그램’, ‘자유학기제’ 등을 통해 학교에 유입되었으나 여전히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다. 자유학기제란 한 학기 동안 진로탐색 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유연하게 수업을 운영하는 제도로 내년부터 전면 시행된다. 학교 여건에 따라 국영수 등 기본교과목 수업을 일부 감축하여 자율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비교과 영역의 교육활동을 펼쳐온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들의 주된 관심사다. 조성희 국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학교의 변화가 지속가능하려면 ‘마을교육 공동체’로 확대되어 교육의 문제를 학교와 지역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며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고, 아이들이 마을의 주인(시민)으로 성장하게 돕는 것이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의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12개 청년기업 협동조합 ‘씨드콥’
‘비교과’ 양질 프로그램으로 학교 똑똑
학교 밖서 가능한 학습영역서
믿을 만한 파트너 역할 지향

시흥교육청 행복교육지원센터
사회적기업 ‘학습 프로그램’ 지원
교사연구회서 검토·수업과 연계
“학교에 필요한 것 깊은 이해를”

지난달 28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교육 분야 사회적기업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사회적 기업의 가치와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제공
지난달 28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교육 분야 사회적기업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사회적 기업의 가치와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제공
하지만 교육 사회적 기업한테 학교의 문턱은 매우 높다. 씨드콥(SEED CO-OP)의 이승환 대표는 이를 “문고리 권력”이라고 꼬집었다. 씨드콥은 자유학기제 본격화를 앞두고 공신·어썸스쿨·더브릿지 등 12개 청년 교육기업이 뭉친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이 대표는 “청년 교육활동가들이 창업한 영세한 개별 업체는 공교육의 문고리를 열기도 어렵다. 우리 프로그램을 소개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한다. 대규모 학원형 영리업체 중심의 시장 구조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청년 교육기업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다 지난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회적 가치만을 내세워 무작정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교육이란 특수성을 지니고 있지만 엄연히 시장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좋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학의 교육공학 교수들과 협업해 프로그램을 검증해나가고 있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과거 방과후학교도 소득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지역사회 학교를 실현한다는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시행됐다. 하지만 교과과정이 높아질수록 교과목 비중이 증가해 ‘조금 덜 비싼 사교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프로그램 운영 비율이 84.6%에 이른다. 강사비는 시간당 3만~4만원이다. 경험과 자질을 갖춘 비교과 영역의 전문 강사가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경기 시흥의 ‘혁신교육지구’ 사례는, 행정 정책과 교육 사회적기업의 지향이 서로 맞물릴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를 잘 보여준다. 경기도교육청은 4년 전부터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자체 교육 예산의 용처를 콘텐츠 중심으로 바꾸었다. 시흥은 73개 학교에서 230억원의 교육 예산을 쓴다. 무상급식비를 제외하면 158억원 정도다. 이날 사례 발표에 나선 시흥교육지원청 마을교육공동체팀 안선영 팀장은 “그간 교육 부문의 세원 중 상당 부분은 학교에 체육관을 설립하는 등의 분야에 집중되고, 교육력 향상과는 거리가 먼 사업에 쓰여 왔다. 이 돈이 실제 교육 콘텐츠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시흥시청과 시흥교육지원청은 교육 예산으로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학교와 마을에 필요한 지역 교육 프로그램이나 체험 활동을 집적하고 공급하는 일을 한다. 안 팀장은 “학교 교사들에게 지역기반 교육, 자유학기제 등의 과제가 주어지지만 학교 스스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의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들이 흩어져서 고군분투하던 역량들을 모아 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고 센터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시흥교육지원청 마을교육공동체팀 안선영 팀장이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조현경 수석연구원
이날 워크숍에서 시흥교육지원청 마을교육공동체팀 안선영 팀장이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조현경 수석연구원
센터에서 사회적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품질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학교의 기본교육과정의 골격과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단체들과 만나 프로그램을 수집하고 교사들이 중심이 된 ‘교육혁신연구회’가 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하도록 했다. 고민의 당사자가 교사들이기에, 정식 교육과정과 연계할 수 있거나 학교 실정에 맞도록 프로그램에 대해 활발한 수정 의견을 냈다. 사회적 기업들은 이런 의견을 프로그램에 적극 반영했다. 이렇게 정리된 교육 프로그램과 지역의 체험처 등을 수집해 통합 프로그램을 웹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학교 입장에선 ‘찾아오는 교육 과정’을 구상한 것이다. 다른 지자체의 경우 사회적 경제 중간지원기관을 중심으로 지역의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의 프로그램을 정리한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막상 적당한 콘텐츠를 찾는다 해도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이 불편하면 망설이게 마련이다. 센터는 이런 행정 불편을 줄이고,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예산을 일원화했다. 해당 교사가 프로그램을 선택해 전화로 상담하고 신청하면 그뿐이다. 행정 절차와 비용은 센터가 담당한다. 학생들의 체험 프로그램을 위해 마을에 버스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그 비용 역시 센터가 치른다. 교육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도 센터의 몫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역의 교육 사회적 기업들은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정기연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안 팀장은 “경력 20년 교사들도 계속해서 연수를 받는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기량을 닦아나가도 부족하다. 교육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놓고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의 역할로 △직업체험 등 학교 밖 활동 사업 △지역사회의 교육 역량을 조직·지원하는 사업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확산하는 사업 등을 꼽는다. 조성희 국장은 “무엇보다 교육 분야 사회적 기업들은 스스로 믿을 만한 파트너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농촌 체험 마을로 갔는데 교육적 기능을 제대로 못하더라는 강사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의 모든 것이 교육의 소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을이 학교를 이해하고, 학교가 마을을 이해하는 서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선영 팀장은 “가진 것을 주려고 하기보다 학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유학기제처럼 비어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공교육의 본류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치밀하게 연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차별화된 전문성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갖지 못한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교사들이 볼 때 다르지 않다고 느끼면 일회성의 수혜식 교육이 되기 쉽다”고 조언했다.

지자체마다 ’마을 만들기’ 부서가 만들어질 정도로 마을 복원에 대한 열기가 뜨겁지만, 마을에서 제일 중요한 학교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날 워크숍의 한 참석자는 “마을과 학교의 벽을 허물고 아이들이 마을에 관심을 갖고 마을과 만나는 수업을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마을을 떠나야 성공한 삶이라 여기는 게 아니라 마을에 기여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성/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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