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초연금과 누리과정(만 3~5살 유치원·어린이집 공통 교육과정) 등 복지재원 조달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누가 책임지느냐’로 보이지만, 결국 핵심은 중앙이든 지방이든 ‘돈 나올 곳’이 없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복지사업을 대리수행하는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마저 경기 부진으로 인한 재정적자에 허덕인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한국사회 복지 논쟁이 ‘어떤 복지를 제공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증세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조세 저항을 돌파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증세가 과연 가능할까?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에선 사회복지 목적세인 ‘사회복지세’ 도입 가능성이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의 사회로 열린 ‘한국 사회의 사회안전망을 점검한다: 재원 부문’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 방식에는 의견차를 보였다.
■ ‘사회복지세’ 현실성 있나?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복지세 도입을 다시금 역설했다. 사회복지세는 세입을 모두 복지 분야에만 사용하는 목적세를 말한다.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 등에 복지예산이 쏠리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축소돼 ‘복지 불균형’이 가속화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사회복지세로 모인 재원으로 현재 복지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보육과 기초연금을 책임지고, 일반예산으로 국민기초생활 보장 급여 인상, 장애인 복지 등 취약계층 복지에 활용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우선 증세 논의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국민들의 ‘조세 저항’이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현재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민들의 복지체험이 이뤄지고 있다”며 ‘긍정의 에너지’가 모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201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벌인 ‘한국인의 복지의식 조사’를 보면, 복지 확대에 따른 세금을 더 부담할 수 있다는 답이 49.2%로 부정적 답변(3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 체험 경험이 증세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있다는 해석이 조심스레 나오는 배경이다.
오 위원장은 소득세·법인세 등 기존 직접세에 세액의 20%를 추가 징수하는 방식으로, 연 20조원의 복지재정을 마련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누진적 성격이 강한 이들 세금에 사회복지세를 추가 부과하면, 자연스레 소득 상위계층과 대기업이 세금 책임을 강하게 지는 ‘부자 증세’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3인 가구 노동자로 월 소득 200만원 이하는 지금 소득세를 내지 않으니 사회복지세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중상위 계층부터는 소득세 누진 구조에 따라 사회복지세도 높아져, 연봉 6000만원 초과 소득자 167만명, 즉 전체 근로소득자의 10%가 사회복지세(소득세 수입 부문)의 80%를 책임지는 구조다. 법인세 몫 사회복지세 역시 법인의 1% 미만(0.6%)의 책임이 커진다. 이에 대해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과)는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목적세 도입을 통한 증세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교수는 목적세를 도입할 경우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며, “개인소득세 기준세율 40% 이상 구간을 신설하고, 자본이득세를 도입해 세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증세 없이는 복지 확충 불가능”
사회복지세 도입이든 전면적인 증세든,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특단의 조처’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1.2%씩 복지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현재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로 예측한 것이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복지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제도 확충분까지 포함할 경우 지출증가율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문제는 다시 ‘돈’이다. 증세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입·세출 조정을 통한 재원 확보를 강조하고 있지만 토목, 국방 분야의 지출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감면 축소, 금융소득 과세 강화 등을 통해 51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 역시 실행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결국 복지공약이 축소되고 재정 책임은 지방정부에 떠넘겨지면서, 기초연금·누리과정 재정 지원 등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갈등만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담뱃세·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등으로 세수 확대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으로 인한 세수효과가 각각 1800억원, 1200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연금 등 사회보험의 자연증가분만 고려해도, 복지재정은 2020년에는 지디피 대비 12.9%, 2040년에는 22.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우리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감안할 때 자연증가분을 뛰어넘는 복지재원 확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오건호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일부 증세를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작은 재정과 세입,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대적 민심을 고려하면, 증세 규모가 매우 적다”며 “세입을 모두 사회복지에만 사용하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통해 복지재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송/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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