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는 ‘도시형 농부시장’이다. 이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마르쉐친구들’ 송성희, 김수향, 이보은(왼쪽부터)씨.
[나는 농부다] ‘마르쉐친구들’ 이보은·김수향·송성희씨
돈과 물건 교환만 있는 시장 대신
사람·관계가 있는 대안시장 기획
도시·귀촌·2세농부들과 요리사들
다달이 서울 대학로서 장터 펼쳐
재배법, 요리법 같은 정보 나누고
카페 창업 등 변신 계기 되기도
지자체 텃밭축제 모델로도 주목
돈과 물건 교환만 있는 시장 대신
사람·관계가 있는 대안시장 기획
도시·귀촌·2세농부들과 요리사들
다달이 서울 대학로서 장터 펼쳐
재배법, 요리법 같은 정보 나누고
카페 창업 등 변신 계기 되기도
지자체 텃밭축제 모델로도 주목
단호박, 풋콩, 동부콩, 여주, 사과, 햇밤, 참다래, 갓끈동부…. 채소와 과일들이 방금 밭에서 따온 싱싱함을 머금고 있다. 가공품들도 다채롭다. 허브피클, 곡물잼, 양배추 초절임, 살구효소…. 장터에 먹을거리가 없을 수 없지. 찰강냉이범벅, 연잎밥, 들풀비빔밥, 곡물과 채소로 만든 버거, 마른나물 떡볶이, 청국장 쿠키….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선하고 ‘별난’ 먹을거리들이 음식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
“우리 집에 있는 50년 묵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보름 동안 날마다 한아름씩 떨어뜨려준 살구로 만든 빙수예요. 농약도 안 쳤고 퇴비도 안 했어요. 야생 그대로죠.” 살구빙수를 건네는 젊은이의 열띤 설명에서 사뭇 자부심이 묻어난다. “맛있었어요. 뒤끝에 샤하게 감도는 맛은 뭐예요?” 빙수를 먹은 컵을 가져온 젊은이가 묻는다. “앞마당에 키우는 허브로 민트 슈거를 만들어 곁들인 거예요.” 한 그릇의 빙수를 주고받는 관계 너머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삶이 떠오른다.
다달이 두번째 일요일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펼쳐지는 마르쉐@에서 이런 진풍경은 일상이다. 마르쉐@는 ‘도시형 농부시장’이다. 원래 프랑스어로 장터라는 뜻인데, 뒤에 장소 이름을 붙여서 어디서 열리는지를 나타낸다.
“시장의 원형질을 되찾고 싶었어요.” ‘마르쉐친구들’이라 불리는 마르쉐@ 기획자이자 주관자인 김수향(41), 이보은(45), 송성희(46)씨는 입을 모은다. 사람은 사라지고 물건과 돈의 교환만 남아 있는 마켓의 거대한 폭력성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시장을 탄탄히 자리잡게 한 이들은 “먹는 것을 통해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게 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펼쳐놓는다.
세 사람이 뜻을 모은 것은 2011년 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단지 옥상에 조성한 텃밭에서 남는 채소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보은씨가 인근 홍대 앞에서 오가닉 카페 ‘수카라’를 운영하던 수향씨를 찾으면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겪으며 내 삶의 토대인 에너지와 먹을거리를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 알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던 수향씨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보는 시장”의 그림을 꺼내 보였다. “그래, 시장을 만들자. 농사와 먹을거리를 둘러싼 삶의 경험을 나누면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상상의 궤도가 맞물리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전남 장흥으로 귀농했다가 잠시 올라와 있던 성희씨도 말을 건네자마자 공감했다.
“준비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네요.” 만만찮았나 보다. ‘도시농부들이 장터에 들고 갈 게 뭐가 있나, 한줌밖에 안 되는 걸 팔려고 장터까지 갈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시큰둥한 시선에 부닥쳤다. 하지만 도시텃밭을 하던 예술가들, 귀농귀촌한 이들, 2세 농부들이 호응하면서 윤곽이 잡혀 나갔다.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어떤 시장을 만들지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그 과정에서 합의된 것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장”이었다.
출점자와 손님, 출점자와 출점자, 농부와 요리사, 도시농부와 귀농귀촌농부, 전업농부, 그리고 손님. 각자 삶의 자리가 다른 이들의 대화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먼저, 이야기할 분위기가 나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장치들을 디자인해나갔다. 사람들의 동선 배치, 테이블 사이의 거리조차도 대화를 돕도록 고려했다. 공간만이 아니라 관계도 디자인했다. 그저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생산자가 손님을 초대하고 손님은 그 답례로 지갑을 열게 되는 관계, 매출을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농부로서 요리사로서 정보를 나누고 삶을 나누는 출점자들의 관계가 되도록. 출점자들의 워크숍, 뒤풀이는 그들의 삶을 교류하는 촉진제가 됐다. 농부는 요리하는 이들에게서 재료를 가공하는 법을, 요리사는 농부에게서 재료가 어떻게 길러지고 어떻게 맛이 다른지를 배웠고, 그 농부의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농부들의 논밭으로 일손을 거들러 나가는 일도 많아졌다. 그렇게 “거기 모이는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곳”이 돼 갔다.
그런 기획의 덕택이었을까. 대화는 분출했다. 그 에너지는 예상을 뛰어넘어 마르쉐@의 변신을 밀어 나갔다. 지난 8월 마르쉐 출점자와 기획자들의 전체 모임에서는 애초 내걸었던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장터’를 ‘도시형 농부시장’으로 바꾸기로 결의했다. 구성원의 무게중심도 농부 50%, 농부의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요리사 35%로 바꾸기로 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는 내부의 동력으로만 이루어졌다. 마르쉐와 만나면서 도시농부가 된 사람, 도시에서 아예 농사만 짓게 된 사람, 마을기업,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도시농부를 하다가 귀농귀촌해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는 이도 나타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지은 것을 들고 나왔던 딸, 아들, 며느리 등 이른바 2세 농부들이 아예 텃밭을 거들거나 물려받기도 했다. 갓 귀농해서 채 자리잡지 못한 이들이 마르쉐를 염두에 두고 농사계획을 그리는 경우도 생겼다.
음식을 들고 나오던 이들도 농부 못지않게 변신했다. 카페를 창업하거나 요리 작업실이나 스튜디오를 꾸린 이들만도 10팀가량 생겼다. 그들은 이 놀랄 만한 변화를 “대화의 마당에서 거대한 학습이 이뤄진 결과”라고 짚는다. 이런 식의 세계는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데,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이들이 요리사로, 도시농부로, 농부로 자신의 직업을 잡아간 거다.
“대화가 정말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을 가졌더라고요. 우리 모두 놀랐어요. 애초 구상했던 것들이 수정되기는커녕 그 방향으로 더 많이, 더 빨리 다가가는 거예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 속에 그런 욕구가 있었구나,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다른 많은 이들도 원하고 있었구나 확인하면서 기뻤고요.”
마르쉐@는 농부시장의 모델이 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작지만 속이 꽉 찬 이런 장터가 생겨나고 있다. 도시텃밭이 있는 곳에 농부장터는 필수라는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농부시장들이 안정적 공간에 둥지를 트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마르쉐만 해도 마로니에공원을 내년에도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한달에 한번 더 시장을 열 채비를 갖추고 장소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뚜렷이 결말을 못 보고 있기도 하다. 백악관 뒷길에 열린 농부시장에서 영부인이 물건을 사가는 미국, 공원은 물론 유적지에서도 농부시장이 열리는 유럽,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농부시장의 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닥인 셈이다.
마르쉐는 젊은이들이 생태적인 농사를 짓는 농부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었고, 여성들이 의미있는 일자리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꽃피우게 이끌었다. 지속가능한 세계의 밑돌인 가족단위 소농들이 뿌리를 내리는 디딤돌 노릇도 해왔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먹는 것을 통해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돌아보게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농부시장의 공적 가치, 충분하지 않은가?
글 이현숙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사진 최지혜
장터 과일.
마르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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