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불균형, 가계 내의 계층에 따른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아직은 다른 나라에 견줘 양호한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를 활용해 우선적으로 복지 확대에 나서고, 장기적으로는 증세를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재정의 건전성은 2000년대 들어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이다. 대체로 거둬들인 세금의 규모 안에서 돈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정부 지출이 크게 늘어난 2009년(3.8%) 한 해만 빼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줄곧 1% 안팎에 머물렀다. 2010년 이후 조금씩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그 폭은 크지 않다. 2013년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1.5%에 그친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산정할 때 주요 기준으로 삼는 일반정부 부채(국가채무 기준의 하나) 수준도 다른 나라들에 견줘 우리나라는 낮은 쪽에 속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에스토니아와 룩셈부르크,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4번째로 낮다. 무디스·피치·스탠더드앤푸어스 등 3대 국제신평사들이 모두 우리나라에 최상위에 가까운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주요 이유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에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재정지출 규모를 키우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재정 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양호한 ‘재정 건전성’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쓸 돈을 안 쓰면서 정부의 역할을 스스로 줄인 데 따른 결과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는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나아가 재정 건전성은 복지 등 꼭 필요한 지출을 억제하는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 확대 요구에 맞서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재원 부족을 빌미로 ‘전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공약을 수정했다.
물론 재정 건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재정지출 확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가부채의 과도한 증가는 정부의 이자비용 증가, 국제신인도 하락, 복지 확대에 대한 저항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지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재의 세입·세출 구조로는 자칫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적자 재정 운용으로 필요한 지출을 해나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증세를 통한 세입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비과세감면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 소극적 세입확대 방안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세 방안으로는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인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 인상부터 사회복지세와 같은 별도의 목적세 도입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일단 이명박 정부 때 급격히 낮아진 법인세율(25%→22%·최고세율 기준)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는 ‘부자감세 철회’ 주장을 하고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보수진영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지출 축소를 통해 재정수지를 맞추는 방향으로만 몰아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고령화 추세, 높아지는 복지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세입을 확충해 재정수지를 맞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해서는 세입 확대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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