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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박대통령 ‘관피아’ 해법, 되레 ‘민관유착’ 더 키울수도

등록 2014-05-22 20:17수정 2014-05-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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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국세청→김앤장…
삼성전자→국세청→삼성SDS 등
민간→공직→민간 ‘회전문 인사’

공공성보다 시장논리 우선시
업계복귀 고려해 정책 만들수도

공직자 재취업 제한 적용도 안받아
영국 임용평가 ‘전문성보다 공공성’
2006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팀장을 맡고 있던 이철행씨는 정부 개방형 직위제도에 응모해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으로 3년간 일했다. 3년 뒤 이씨는 삼성에스디에스(SDS) 컨설팅사업부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국내 최대 법률회사인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이지수 변호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판사 출신인 이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일하다 2009년 국세청 납세보호관에 임용된다. 납세보호관은 세무조사 중지, 조사반 교체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국세청 내 요직으로 꼽힌다. 이 변호사 역시 3년간 근무를 마친 뒤, 다시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복귀했다.

1999년 ‘공무원의 경쟁력 제고’ 등을 내세우며 개방형 직위제가 시작된 이래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기업체에서 공직으로, 공직에서 사기업체로 옮겨다니는 소위 ‘회전문 인사’다. ‘회전문 인사’는 미국 등에 특히 많이 퍼져 있는 관행으로, 민관유착이 형성될 수 있는 대표적인 경로로 평가된다. 사기업체에서 공직으로 옮겨온 사람은 기업체에서 몸에 익힌 시장논리를 공직에서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적용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자신이 다시 돌아갈 업계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와 얽히는 인간적 관계망도 훨씬 강하게 형성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5급 공채의 30% 가까이 민간경력자로 뽑고 있고,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 일부를 개방형 직위제로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별로 민간전문가를 뽑는 전문경력관제도 있다. 앞으로 이런 민간경력자의 관료 충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방안의 주요한 뼈대로 ‘민간 인재’ 충원 대폭 확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세월호 참사 대책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창의성에 기반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민간전문가들이 공직에 보다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채용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5급 공채(행정고시)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같은 수준으로 맞추고, 장기적으로 행시를 폐지하는 한편, 개방형 충원제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공직자가 사기업체로 이직하는 것을 현행 제도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제한은 민간경력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에서도 민간경력자는 공무원으로 일하기 전 종사했던 분야로 재취업할 경우 취업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 회전문 인사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민간 인재’를 더 중시하는 흐름으로 갈 경우, 취업 제한을 새로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임도빈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민간경력자들은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숙성된, 그들만의 이해관계에 밀접하게 동화된 사람들”이라며 “‘민간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더 좋지 않은 그들만의 커넥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박근혜 대통령은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민간경력자로 채운다는 발상을 하는 것 같은데, 이 방안은 시장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을 더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간 충원의 큰 명분은 ‘전문성’ 확보다. 하지만 민간경력자들의 전문성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쌓은, 사적 개인으로서의 전문성이다. 2006년부터 직위 개방을 시작한 국세청의 경우 전산정보관리관에 삼성 출신 이철행씨를, 그의 후임으로는 엘지그룹 출신 임수경씨를 임명했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임수경씨도 퇴직 후 관련 업계인 케이티(KT)로 재취업했다. 2007년부터 3년간 관세청 감사관으로 근무한 류상기씨도 엘지그룹 출신이고, 2011년부터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오태식씨도 방사청과 밀접한 업무 연관이 있는 삼성항공산업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임원 출신이다. 하지만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전체 사회의 공공성을 대변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 그리고 투철한 공직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공무원계급제와 고위공무원단제를 혼용하고 있는 영국의 고위 공무원 직무 특성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기준은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력, 행정 결과의 전달, 소속직원 관리, 의사전달, 재정 등 자원관리, 개인적 효과성, 지적능력, 전문성 등 9가지다. 고위 공무원은 이 기준에 따라 근무 평정과 급여가 결정된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9개 항목에 기초해 70개 세부지표로 고위 공무원들을 평가하고 있는데, 이 중 전문성을 측정하는 세부지표는 6개에 그친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고위 공직자 자질의 한 요소는 될 수 있지만, 전부 내지 핵심적인 자질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간’, ‘시장’ 등을 활용해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는 것은 사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부개혁, 즉 정부 영역에 경쟁력이나 효율성 같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큰 흐름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기업 등 민간은 이윤을 추구하고, 정부는 공익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은 정부에 시장 ‘원리’를 이식해왔고, 이제 박근혜 정부는 시장 ‘사람’의 이식까지 본격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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