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의 역사
초국적 기업에 공공서비스 내줘
요금인상·고용불안 등 부작용
초국적 기업에 공공서비스 내줘
요금인상·고용불안 등 부작용
사전적 의미로 ‘민영화’는 공공기관의 정부 소유권을 부채 감축과 투자 유치, 효율성 제고 등의 목적으로 민간에 넘기는 것을 뜻한다. 엄밀하게 따져 더 정확한 표현은 ‘사유화’나 ‘사영화’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원래 민간이 핵심 기간산업을 담당했지만 2차대전 이후 공공부문이 확장되다가 다시 민영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년대 이후 지난 20여년간 전세계적으로 약 1조달러 규모에 이르는 공기업이 민영화됐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탈국유화와 영국 대처 내각의 대규모 민영화가 큰 획을 그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흐름은 거꾸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부분 산업은 재벌 대기업을 통해 설립됐지만 전력·통신·철도 등 네트워크 산업(망 산업)은 정부가 공기업을 설립해 육성했다. 이후 1960~1970년대 대한항공과 상업은행 등 기계공업과 운수업, 은행업을 시작으로 차츰 민간에 넘겨주는 수순을 밟았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도 상당수 공기업의 지분이 부분 혹은 완전 매각됐다. 유공을 거쳐 현재의 에스케이(SK)로 탈바꿈한 대한석유공사와 한일·제일·조흥·서울신탁 등 시중은행 민영화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민영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서다. 외채를 갚으려면 공기업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가 주도했다. 정부는 4대 개혁과제 가운데 하나로 ‘공공부문 개혁’을 포함시켰고 그 핵심은 민영화로 귀결됐다. 국정교과서와 종합기술금융, 대한송유관공사, 한국중공업 등이 특정 민간업체에 넘겨졌고 한국통신·포항제철·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은 소유분산 형식으로 매각됐다. 공공성이 강하게 작동될 필요가 있는 전력·철도 등의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 추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한 게 이즈음이다. 송유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연구실장은 “민영화 추진은 유지·보수 등 돈이 들어가는 부문에 대한 투자회피 등으로 이어지면서 철도의 잦은 사고, 발전소의 운영 정지, 원자력발전의 안전성 저하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민영화 추진 대상이었던 한국전력이 발전설비만 분할하는 구조개편에 그친 것도 이런 반대 여론에 밀린 결과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주식 매각 형태의 민영화는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민자 고속도로처럼 민간 투자 사업 대상을 확대하거나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 같은 ‘우회적 민영화’는 계속 추진됐다. 각종 민간 투자 사업은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권을 갖지만 기업들이 공공 기반시설을 짓고 운영권을 얻는 식으로 시장에 길을 터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이런 움직임이 한층 가속화됐다. ‘돈이 되는 부문’을 분할하거나 자회사를 신설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민간 위탁을 확대하는 등 좀더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고 있다.
남종석 부산대 강사(경제학)는 “민영화는 경기불황으로 이윤 추구 기회가 줄어든 대기업과 해외 초국적 기업에 공공서비스 공급을 독점할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 대가는 전부 시민들이 치른다”며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 기회가 줄어들고 서비스 요금이 인상되며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에 시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각종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추진이 계속 주목을 받는 데는 기존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서비스 이용자 대표인 시민과 생산자 대표인 노동자,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참여형 이사회’를 도입해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제안이 나온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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