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6돌 연중 기획] 사람이 중심이다
공공성 무너진 나라
공공성 무너진 나라
고물 선박 띄우고 계약직에 맡겨
정부는 규제 더 풀어주고
국민 안전 관리는 민간에 맡겨
청해진해운이 나미노우에를 사들였다. 회사는 비싼 새 배를 사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헌 배를 샀다. 회사의 주수입원이었던 오하마나호도 2003년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 배였다. 1989년에 건조된 배였다. 회사는 오하마나호 한 척이 다니는 인천~제주 항로에 배를 한 척 더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 돈을 벌려는 계산에서였다. 청해진해운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퇴사한 한 간부는 “인천~제주는 노른자 항로였다”고 말했다. 돈 되는 항로에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고, 항로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대한해협을 건너온 나미노우에호는 2012년 10월에 전남 목포에 있는 한 작은 조선소에 맡겨졌다. 낡은 배는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넉달에 걸쳐 고쳐졌다. 이름도 세월호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여객선 두 척 가운데 한 척은 같은 이유로 개조된다. 세월호 개조를 맡은 조선소는 일감을 맡겨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청해진해운 이사에게 6000만원가량을 건넸다. 4층에서 5층으로 높아진 세월호가 태울 수 있는 정원은 840명에서 956명으로 늘었다. 일본에서 들여올 때 595명이던 오하마나호의 정원도 4차례 개조를 거쳐 937명으로 증가했다. 안전은 ‘아껴야 할 비용’…‘돈의 맛’에 무너진 안전매뉴얼 세월호는 수리비로만 51억원이 넘게 들었지만, 오하마나호가 그랬던 것처럼 얼마 되지 않아 본전을 뽑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세월호를 굴릴 시간도 넉넉히 확보돼 있었다. 지난해 3월 첫 출항을 시작한 세월호는 이미 19살이었지만, 11년 이상 운항할 수 있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덕이었다. 2008년 5월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업 부담 해소’란 명분 아래 배의 나이 제한이 25년에서 30년으로 늘었다. 정부는 “기업의 비용절감 효과가 해마다 2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말만 달랐지, 사실상 기업의 이윤증대 효과를 의미했다. 이날 하루 동안 국무회의에서 없어진 행정규칙은 94건이었다. 이윤을 뽑아낼 더 긴 시간을 보장받았지만, 회사는 만족하지 못했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낯익은 방법들이 동원됐다. 청해진해운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아파트 경비원을 하던 이준석씨를 다시 부른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퇴직 전에 정규직 선장으로 있던 그는 촉탁직 선장이 됐다. 1년마다 계약을 새롭게 맺어야 했다. 하는 일은 같았지만, 신분이 바뀌었다. 월급은 270만원(연간 3240만원)으로 확 줄었다. 한 연안여객선사 관계자는 “수당 등을 다 포함하면 큰 연안여객선의 선장 연봉은 보통 6000만~7000만원은 된다”고 말했다. 회사는 비정규직으로 선장을 고용해 매월 3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한때 잘나가는 원양선 선장이었던 그는 94년부터 가까운 바다에서 승객과 짐을 나르는 연안여객선 선장이 됐다. 임금도 낮고 잦은 출항과 승객 관리를 해야 하는 연안여객선은 선원들 사이에서 ‘3D 업종’으로 불린다. 내항선 임금은 외항선의 60%를 조금 웃돈다. 불꽃놀이까지 관람할 수 있는 화려한 여객선, 하지만 그 안에서 근무하는 선원들의 신분은 대체로 불안정했다.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가운데 12명이 4~12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었다. 임금을 줄이고 직접 고용에 따른 부담을 덜려는 회사의 ‘효율적’ 인력 운용의 결과물이었다. 1~3등 기관사의 월급은 170만~200만원에 그쳤다. 회사는 배를 잘 아는 오래된 선원을 원치 않았다. 정규직을 최소화하면서 세월호에서만 매달 수천만원의 임금을 아꼈다. 이충배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청해진해운은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결국 ‘저급’ 선원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커질까봐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 전직 간부는 “노조를 못 만들게 했다. 노조를 만들 기미가 보이면 바로 잘라버린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지주사 및 다른 계열사에도 노조가 없다. 청해진해운에서 퇴직금과 수당 미지급 등이 잦았던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 안전은 기업에 비용을 의미한다.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려는 기업에 안전은 ‘이윤 통제선’이자, 최소화해야 할 비용이었다. 세월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정한 한계선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지난달 15일 저녁 인천항은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모든 배들이 항구에 묶여 있었지만, 세월호만이 홀로 운무를 뚫고 밤 9시께 출항했다. 안전은 뒷전이었다. 무리한 출항에 과적까지 겹쳤다. 차량과 컨테이너 등을 다 더해 1107t 이상 실을 수 없는데도, 이날 세월호에는 3608t의 화물이 실렸다. 한도를 3.4배 초과했다. 회사의 수입이 그만큼 늘어났지만, 배가 가라앉을 확률도 더 높아졌다. 과적은 일상이었다. 세월호는 지난해부터 인천~제주 노선을 240차례(편도 기준) 다니면서 138번이나 과적했다. 이렇게 해서 30억원의 수익을 추가로 올렸다. 과적을 하기 전에도 배는 이미 복원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배가 기울어졌을 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능력이 훼손된 것이다. 애초 더 많은 승객과 짐짝을 싣기 위해 무리하게 증축한 결과였다. 세월호의 정규직 선장인 신아무개씨가 회사에 얘기했으나 묵살됐다. 화물 과적의 위험성도 경고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회사는 배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적게 실었다. 대신 그 자리에 더 많은 화물을 실었다. 과적을 하다 걸리더라도 과태료를 내면 그만이었다. ‘안전 매뉴얼’은 ‘돈의 매뉴얼’을 제어하지 못했다. 정부도 안전의 문턱을 낮춰줬다. 기업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없애거나 기준을 완화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선령 제한이 연장된 데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20건이 넘는 선박·해운 관련 안전규제가 이미 풀렸거나, 완화가 추진중이었다. 내항선을 운항하는 선장에게 주어진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의 보고 의무 등이 폐지됐다. 덩달아 안전을 제대로 지키는지 관리·감독하는 정부의 권한도 하나둘씩 민간의 손에 넘어갔다. 자율 준수란 이름 아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할 주체에게 관리·감독권이 주어졌다. 15일 밤 세월호가 인천항을 떠나기 전에 받은 안전점검의 주체는 한국해운조합이었다. 비영리를 표방하는 조합은 실은 여객선사(배를 소유한 회사)들을 회원으로 하는 이익단체다.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건(326명 사망)을 계기로 해운조합에 안전점검 권한이 주어진 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조합의 운항관리자가 조합원인 청해진해운을 제대로 감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여느 때처럼 세월호에 대한 안전점검은 요식행위에 그쳤다. 한국해운조합 관계자는 “청해진해운은 가입비로 10만원, 연회비로 96만원을 납부했다”고 말했다. 청해진해운은 네 등급으로 된 조합원 가운데 가장 많은 연회비를 납부한다. 그만큼 조합 내 입김도 셀 수밖에 없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안전 의무를 어겼을 때 조합이 배의 출항을 정지시켜야 하지만, 같은 편인데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의 안전검사는 한국선급에도 위탁됐다. 비영리를 내세운 선급은 위탁 업무로 영리를 챙길 수 있었다. 이곳에서 세월호는 모두 5번의 검사를 받았다. 그렇게 한국선급으로 흘러들어간 검사비만 1억50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세월호는 지난해 증축했을 때도, 지난 2월 정기검사를 받았을 때도, 문제없이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했다. 검사는 매번 통과의례였다. 정부 위탁 업무로 인한 한국선급의 수익은 보장됐지만, 배의 안전은 보장되지 못했다. 지난 2월 구명벌 등 17개 항목에 대한 안전검사를 수행한 한국해양안전설비 쪽도 실제 점검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양호’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46개 구명벌 가운데 단 하나만 펴졌다. 한국해양안전설비는 목포해양항만청이 지정한 우수정비사업장이었다. 한국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은 이사장이나 회장 자리를 해양수산부나 국토해양부 차관 등 관련 부처 고위 공직자들에게 매번 내주었다. 기업의 ‘대리인’이 된 퇴직 공무원은 현직 공무원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부가 해야 할 ‘감시견’ 역할을 마비시켰다. 그들에게 수억원의 연봉을 챙겨주지만, 그 이상의 대가가 조합과 법인에 돌아온다. 수십년째 카르텔이 깨지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다. 19년된 낡은 세월호 싸게 산 청해진
MB정부 규제완화탓 11년 운항 가능
더 많은 승객·화물 싣게 배 고치고
선원들 비정규직 고용 ‘비용 최소화’
극대화된 이윤은 대주주 주머니로
박근혜정부 규제완화까지 더해져
민영화된 안전점검 요식행위 그쳐
국민의 생명 지킬 정부 업무마저
민영화되면서 부패고리 생겨나
‘돈이 매뉴얼’인 사회는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해운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기 좋은 토양이었다. 이렇게 악착같이 불린 기업의 이윤은 정작 어디로 흘러들어간 걸까? 주식회사 청해진해운이란 기업의 외피를 벗겨내면, 불과 몇 사람에게 이윤이 집중되는 구조가 드러난다. 이 회사의 전신인 세모그룹의 회장을 지낸 유병언씨는 청해진해운의 주식이 한 주도 없다. 회사와는 아무런 법적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매달 고문료 명목으로 1000만원씩을 챙겨갔다. 인건비를 줄이려 선원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썼던 기업의 ‘속살’이었다. 유씨가 빼간 돈은 이준석 선장과 같은 비정규직 선장 4명분의 임금이다. 유씨 일가가 청해진해운과 이 회사의 지배회사인 주식회사 천해지, 그 위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 등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을 써서 빼돌린 돈도 수백억원에 이른다. 이는 유씨 일가가 축적한 재산 2500억원의 종자와 거름이 되었다. ‘돈의 흐름’은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구조적 원인들뿐 아니라, 침몰 이후 ‘구조 0명’이라는 비극적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본의 탐욕과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정부가 세월호를 좌초시켰다면, ‘예산절감’이라는 단순 논리가 낳은 정부의 무능력은 좌초 뒤 구조·구난의 실패로 이어졌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정부가 조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으나, 민간에 너무 의지한 채 임무 수행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언딘’이란 민간업체에 크게 의존했다. 효율적 정부란 명분 아래, 정부는 구조·구난에서 민간의 역할과 능력을 키웠다. 해경은 대놓고 “구조나 수색 이런 점에선 오히려 민간(언딘)이 실력이 낫다”고까지 말했다. 2011년 10월18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회의실, 임창수 당시 해경 차장은 의원들에게 ‘수난구호법 전면개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저희들(해경)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것보다는 (민간) 자율구조대를…네트워킹을 잘 만들어 놓고 활성화를 시키면 예산도 절감되고 오히려 저희들이 장비를 가지는 것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냐.” 이에 김진애 당시 민주당 의원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의 책임을 미루는 거다”라며 반대했지만, 결국 해경의 바람대로 처리됐다. 정부에 스며든 기업의 비용 최소화 원리는 정부 업무의 민영화로 이어졌다. 개정안은 “행정기관이 위탁하는 업무의 수행과 해양 구조·구난 업계의 건전한 발전” 등을 위해 해양구조협회를 설립하도록 했다. 지난해 발족한 이 협회는 해경 본청 민원실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의 구조·구난을 독점한 언딘의 대표이사가 이 협회의 부회장이다. 한국선급과 한국해운조합은 당연직 회원이다. 해경 출신 ‘낙하산’들도 포진해 있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도 지원됐다. 협회는 해양 이해집단의 공생관계를 보여주는 압축판과도 같았다. 해경은 큰 해양 사고가 있을 때마다 몸집을 불려왔지만, 정작 구조·구난 전문 인력은 많지 않다. 안전 관련 예산도 전체 약 1조1136억원의 예산 가운데 1.6%(181억원)에 불과하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해경 인력의 상당 부분이 구조 및 구난보다 수사나 정보 쪽에 편중돼 있다. 정부 차원의 구조 시스템은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자신들 은퇴 이후 내려갈 수 있는 해양구조협회를 만들어놨다. 안전을 민영화한 것이다. 거기에서 공무원과 민간업자, 국회의원의 부패 고리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부분적으로 ‘민영화’했지만, 임창수 전 차장의 말대로 예산이 절감되긴 글렀다. 언딘 쪽은 “어떤 형태로든 국가에 최대한 (구난 비용을)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결코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수백명의 생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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