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환 대표(오른쪽 둘째)를 비롯한 매화동 마을기업 보드미 직원들이 전통한과를 만들고 있다.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제공
[싱크탱크 광장] 지방정부협의회 사회적경제포럼
시흥 매화동 아파트 주민과 농민들
‘호조벌 축제’ 놓고 대립·갈등 겪다
공동체 만들기 나서 마을기업 설립
도일시장선 점포주ㆍ노점상 합심
‘5일장 부활’로 지역재생에 큰 보탬
“다양성은 갈등 불씨 아닌 미래 자산”
시흥 매화동 아파트 주민과 농민들
‘호조벌 축제’ 놓고 대립·갈등 겪다
공동체 만들기 나서 마을기업 설립
도일시장선 점포주ㆍ노점상 합심
‘5일장 부활’로 지역재생에 큰 보탬
“다양성은 갈등 불씨 아닌 미래 자산”
서울에서 경기도 시흥으로 들어서면 드넓은 들판이 나온다. 조선 경종(1721년) 때 재정 충당과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호조에서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다. 그래서 이름도 호조벌이다. 가을 들녘 벼이삭이 일렁이는 5㎢(150만평) 호조벌의 아름다움은 시흥시의 자랑이다. 이곳에 사는 매화동 주민들은 2004년부터 ‘호조벌 축제’를 개최해 왔다. 농로를 따라 8㎞를 걸으며 전통 농기구, 새끼꼬기, 떡메치기 등을 즐기는 이 행사에 매년 수천명이 참가하며 시흥시의 대표적인 마을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10년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축제일이 벼 수확 시기와 겹친 것이다. 외부에서 전입해온 아파트 주민으로 축제 조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배제된 농민들은 축제일에 콤바인 두 대로 농로를 가로막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갈등의 심각성을 인식한 아파트 주민과 농민들은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호조벌 일부 텃밭을 공동 경작하고, 초등학생 체험활동도 병행했다. 기존 농법으로 농사짓던 논의 일부에 오리농법을 도입해 친환경재배단지도 만들었다. 2011년 봄 아파트 주민들은 오리 1마리를 5000원에 분양받아 논에 풀었다 호조벌 축제 때 되돌려 받기로 했다. 장마철 큰비로 대부분의 오리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수확한 쌀을 대신 받았지만, 농민과 아파트 주민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이렇게 재배한 친환경 쌀 ‘햇토미’로 전통한과를 생산하기 위해 2012년에는 마을기업을 설립했다. 주민 24명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보드미는 최근 밑반찬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시흥시청에서 열린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 제5차 사회적경제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보드미 윤봉환 대표는 “한과는 연간 4개월만 주문이 몰리는 단점이 있고, 아파트 주민의 70% 이상이 맞벌이 부부인 점을 고려해 호조벌에서 나온 친환경 재료로 밑반찬을 만들어 집까지 배달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선 도일시장의 마을만들기 사례도 발표됐다. 1959년에 문을 연 도일시장은 당시만 해도 우시장과 극장이 들어선 중심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주변 지역에 대형 상가와 마트가 들어서면서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1970년대 풍경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 1층 점포, 2층 살림집 구조에 벽을 공유한 합벽주택이라 수리도 쉽지 않았다.
시장의 현대화를 위해 2011년부터 재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사업성이 없어 2012년말 포기하고 마을만들기로 눈을 돌렸다. 다른 시장과 달리 대부분의 점포주가 2층 살림집에 거주하는 주민이라 마을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번영회는 명맥만 유지되던 5일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점포 상인들의 협조를 구해 점포 앞에 노점 구획을 새로 칠했다.
도일시장에서 만난 최창진 노점상 대표는 “시화나 안산 등 다른 5일장에선 하루 임대료를 받는데, 도일시장은 안 받는다”며 “점포 상인들이 노점상을 배려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도일시장 마을계획가(번영회 총무)는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노점상을 배려하는 전통도 50여년간 유지된 것 같다”며 “점포주들은 5일장이 활성화되면 점포 영업도 잘될 수 있으니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규 시흥시 주민자치과장은 “2010년부터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오면서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 사례도 참 많다. 이런 실패 사례들을 분석하면 성공 사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자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인 임정엽 완주군수는 “마을만들기는 인내가 필요한 사업이다. 단체장이 임기 중에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100% 실패한다. 내가 기초라도 튼튼히 다져놓아 다음 사람이 받아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송경용 서울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은 “시흥은 들도 있고 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 농업도시이자 공업도시이자 해양도시”라며 “이 다양성을 갈등의 불씨가 아니라 미래의 큰 자산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관계가 단절되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세대간 격차도 커진 도시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입장에선 마을만들기가 빛바랜 사진을 보는 것처럼 기억을 더듬어 가는 일인 것 같다. 그런 만큼 행정은 인내심을 갖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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