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민영화의 그늘
‘전력난 비상’에 민자발전사가 속으로 웃는 까닭
‘전력난 비상’에 민자발전사가 속으로 웃는 까닭
전력난으로 말 그대로 온 나라가 난리다. 연일 전력 경보가 발령되고, “절전!” 구호가 외쳐진다. 국민과 기업들 모두 언제 정전이 될지 몰라 불안불안하다. 반면 ‘민자발전사’라고 불리는 일부 대기업들은 올 여름 ‘큰 장’을 예상하며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전력난이 심화할수록 이들의 주머니는 불룩해진다. 다음 단계는 전기요금 인상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한국전력 악재, 민자 발전사 호재”
지난달 29일 증권사들은 “민자 발전사들의 수익 증가가 예상된다”는 전망을 앞다퉈 내놓았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제어케이블 설치로 원자력발전소 3기가 추가로 가동 중단에 들어간 날이었다.
원전 가동 중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에스케이(SK), 지에스(GS) 등 민자발전사를 보유한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올랐고, 한국전력의 주가는 추락했다. 1분기에 “올해는 지난해만큼 실적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울상을 짓던 민자 발전사들은 높은 수익이 예상되자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력난이 계속된 지난해 여름에도 수시로 반복된 바 있다. 최근 2년 사이 원전이나 화력발전소가 고장·사고 등으로 정지될 때마다 왜 이러한 일이 반복될까?
■ 원전 중단되면 2조원 손실 왜? 한전 전력구입처는 신고리 원전 1·2호기, 신월성 원전 1호기 등 100만㎾급 발전소 정지로 한전의 전력 구입 비용이 하루 135억원씩 늘어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3기의 원전이 불량 제어케이블 교체로 6개월 정지될 경우, 한전의 전력구입비는 2조7억원 증가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전의 전력 구입비가 증가하는 것은 전력 생산-거래-공급 구조 때문이다. 한전은 현재 전력거래소를 통해 446개(2012년 기준)의 발전회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팔고 있다. 이는 농수산물이 팔리는 과정과 비슷하다. 생산자(발전회사)가 만든 상품(전력)이 경매시장(전력거래소)에 나오면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상인(한전)이 값을 쳐주고 사와서 소비자에게 되파는 것이다.
원자력·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전력을 만드는 원료값의 차이에 따라 발전회사들의 전력 생산 단가가 각각 다르다. 결국 한전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부족해진 전력량을 다른 발전회사가 생산한 ‘비싼 전력’을 사와 메워야 한다. 지난 4월을 기준으로 한전이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살 때는 1㎾h당 51.31원을 줬는데, 액화천연가스 발전소한테는 3배나 비싼 1㎾h당 165.6원을 지급했다. 전력 수급 상황이 더욱 빠듯해질수록 한전의 전력 구매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은 2001년 전력산업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따라 정부가 공기업인 한전에서 6개의 발전자회사들을 분리하고, 민간기업들의 참여를 확대하면서 만들어졌다. 전력거래소가 펴낸 ‘2012 전력시장 분석보고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행 과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시장경쟁의 효과를 촉진하기 위한 시장체제다”라고 현재의 전력 거래 체계를 규정한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전력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모델을 설계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민자발전소 ‘땅짚고 헤엄치기’ 전력난으로 사회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전력난 속에서 민자 발전사가 ‘땅 짚고 헤엄치기’로 수익을 거둔다”는 이야기가 왜 계속 흘러나오는 것일까?
실제로 발전회사들은 최근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에스케이·지에스·포스코 같은 대기업 민자 발전사들은 발전설비 용량이 공기업 발전회사들의 10분의 1 수준임에도, 지난해 공기업(8061억원)보다 1000억원 이상 많은 당기순이익(9627억원)을 냈다. 최근 눈부신 성장을 거둔 에스케이이엔에스(SK E&S)의 당기순이익은 2010년 996억에서 2011년 1758억, 2012년 6097억원으로, 전력난 추세를 타고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는 전력 사업에 뛰어든 민자 발전사한테 일정 부분 수익을 보장해주고, 한전의 전력구매 비용을 낮추기 위해 설계된 전력거래 체계에서 비롯된 일이다. 전력 공급은 생산 가격이 싼 원자력·석탄화력 발전소(기저발전-공기업 발전회사)부터 먼저 돌리고, 전력이 모자라면 원료 가격이 비싼 엘엔지·경유 발전소(첨두부하)를 추가로 가동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보통 전력 사용이 많지 않은 오전이나 저녁에는 원전과 화력발전소만 전력을 생산하고, 전력 사용이 몰리는 오후 2~5시 사이는 엘엔지·경유 발전소 등 모든 발전소가 ‘풀가동’한다. 과거처럼 전력난이 없을 경우에는 주로 가격이 싼 공기업 발전회사들이 만든 전력으로 전력 사용량 수요를 맞추고, 수요가 몰릴 때만 가격이 비싼 민자 발전사 쪽 전력을 사용하면 됐다. 민자 발전사들을 유사시 전력 공급을 위한 ‘예비설비’로 삼은 것이다.
원전 가동 중단 소식 전해지자
민자발전사 가진 기업 주가 ↑ ‘부족한 전력’ 비싼 값 주고 메워야
한전 전력구입비 하루 135억 늘어
생산단가 최대 두배까지 팔며
민간발전사는 매출 기하급수 신장
‘한전 적자→전기요금 인상’ 이어져 2001년 경쟁체제 도입한다며
발전회사 분리하고 민간기업에 개방
‘과도한 수익률’ 제한하려 해도
“정부 때문에 수천억 투자했는데… ”
앞으로도 논란 끊이지 않을 듯 하지만 최근 2년은 1년 내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민자 발전사들의 발전기 역시 100% 가동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민자 발전사들이 전력을 팔아 버는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물론, 전력난을 틈타 민자 발전사들은 전력을 생산 단가의 최대 두배까지 받고 전력을 팔게 된 것이다. 이는 ‘계통한계가격’(SMP)이라는 독특한 전력 거래 가격 산정 방식에 기인한다. 현재 전력거래소는 같은 시간대에 공급되는 전력 가운데 가장 비싼 원료로 생산된 전력의 가격을 시장가격(계통한계가격)으로 정하고 있다. 전력난이 심했던 지난해 8월을 예로 들면, 전력 수요가 치솟을 경우 원료값이 비싼 디젤발전기까지 가동되면서 시장가격이 1㎾h당 250원까지 수시로 치솟았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엘엔지 발전소들은 디젤발전기가 가동되는 시간대에 139원 들여 1㎾를 만들어 팔면 시장가격 상승에 따라 250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공기업 발전사들의 경우는 한전의 전력 구입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할인율인 ‘정산조정계수’가 적용돼, 시장가격이 250원임에도 40~60원(원자력·석탄)을 받고 한전에 전력을 팔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가스공사가 담당하던 엘엔지 수입을 민간 발전사들에 발전 용도로 수입을 일부 허용한 것도 수익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케이이엔에스는 높은 수익률에 대해 “2004년 인도네시아와 20년 장기계약을 체결해 현재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가스를 도입해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가스 가격은 2000년대 이후 제일 싸던 시기였다. ■ 전력난과 전기요금 인상 압박 한전의 전력 구매비용 증가는 자연스레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1년 8월 이후 전력난 속에 네차례 전기요금 인상이 있었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전력을 팔아 얻는 수익이 고스란히 전기요금에서 나오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민자 발전사들이 전력난을 틈타 높은 수익을 거뒀다”는 비판을 고려해, 올해 초 민간 발전소들의 수익을 2년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원료가격 이상의 과도한 ‘마진’을 가져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 기업들을 끌어들인 이상 이들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게다가 정부는 6차 전력수급 계획을 통해 민간 기업에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의 문을 열어, 2027년까지 민자발전을 전체 발전 비중의 30%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민간 발전사들의 전력 판매 수익을 제한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돼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 예정인데 민간 발전사들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중이다. 한 민자 발전사 관계자는 “우리도 정부가 전력산업의 문을 열어줘 수천억원을 투자해 뛰어든 건데 ‘전력난에 돈 번다’는 비판을 받아 당혹스럽다”고 털어놨다. “경제적이다”는 이유로 정부는 원전 의존도를 높여왔지만,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원전3기의 가동 중단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전성이 중요한 원전이 전력공급의 대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막대한 사회적 비용 부담 증가를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전사회적으로 전력사용을 줄이고 소비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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