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 생산회사 옆엔 배달 기업
맞은편엔 기계 만드는 회사
“반경 2안 세라믹 관련 기업”
끈끈한 유대관계 바탕으로
생산과정 나눠맡아 경쟁·협업
‘페라리’도 중기 네트워크 발판
작은 규모의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제품과 공정의 혁신을 이루려면 서로 연대하지 않고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삼는 원-하청의 수직적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경제 구조 탓에 중소기업간 네트워크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중소기업 중심 산업지구를 구축한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현지 르포 등을 통해 중소기업간 네트워크 구축의 실태와 필요성을 살펴본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주도인 ‘볼로냐’에서 기차로 약 40분 가량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인구 18만명의 도시 ‘모데나’. 여기서 차로 약 10여분 이동하면 근교 마을 ‘사수올로’가 나온다. 지난달 2일 찾은 이곳의 5층 높이 ‘세라믹 협회’ 건물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별장을 연상시켰다. 협회의 안드레아 세리 연구·대외담당 대표는 “세라믹 산업의 ‘실리콘 밸리’ 사수올로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취재진을 맞았다.
사수올로는 실제 세계 타일 산업을 선도하는 산업지구(클러스터)로 평가받는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사수올로 지구는 세계 세라믹 관련 제품 생산의 약 25%, 이탈리아 생산량의 80%(이탈리아 대사관 집계)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지다. 지난해 기준 4억500만㎡의 타일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삼성 ‘리움미술관’의 외관에 설치된 타일이 이 지역 제품이다. 세리 대표는 “생산량으로는 중국이 앞질렀지만 디지털 프린팅, 3D 기법 등 세라믹 분야 혁신은 사수올로가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사수올로가 선두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세리 대표는 생산지구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생산지구에는 같은 건물에 이웃하거나 또는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세라믹 관련 기업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예컨대 타일을 생산하는 기업 옆에 물류 회사가, 맞은 편에는 생산기계를 제조하는 회사가 붙어 있는 방식이다. 세리 대표는 “반경 2㎞ 안에서 세라믹과 관련한 모든 기업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위치한 30년 역사의 타일 제조 중소기업 ‘감마두에’의 그레고리오 스케네티 마케팅 이사는 “다양한 기업들이 서로 협업하고 경쟁하는 생태계가 우리 경쟁력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감마두에는 지난해 약 3000만 유로(약 430억원)의 타일 제품을 생산했고 이 가운데 60%가 수출, 40%가 내수용이었다. 스케네티 이사는 “생산 과정의 임무를 기업들이 나눠 맡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가령 제품 연구는 감마두에가 맡지만 물류는 외부의 다른 기업에게 맡기는 식이다. 그는 “같은 영역에 있는 기업들끼리는 새 제품(서비스) 개발을 두고는 경쟁하지만 다른 과정에 대해서는 협업한다. 우리도 원재료 구매는 경쟁 업체들과 함께 해서 단가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쟁과 협업의 바탕에는 이 지역의 문화가 녹아 들어있다. 비공식적 유대 관계가 두터운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한국에서 바이어 상담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감마두에의 다비데 무치 수출 담당 매니저는 “사수올로에 있으면 24시간 세라믹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다”며 웃었다. “일을 마치고 술집에 들리면 모두 건너편 마을 사람들입니다. 술자리에서 또 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죠.” 인구 4만여명의 사수올로에 밀집한 세라믹 산업 관련 중소기업은 140개가 넘는다.
에밀리아로마냐에는 사수올로와 같이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특화 산업지구들이 11곳이 있다. ‘페라리’나 ‘두카티’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를 낳은 볼로냐의 자동차·오토바이 산업, 모데나의 영농 기계 산업, 파르마의 식품 산업 등이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국제 무대의 경쟁력을 갖췄다.
물론 최근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는 이 지역도 비켜가지 않았다. 하지만 중소기업 네트워크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에서도 탁월하다는 것이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마테오 레포레 볼로냐 시의원 겸 부시장은 “최근 볼로냐도 실업률이 3%에서 6%로 늘었지만 대부분 10% 이상 치솟은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양호하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도 해고 대신 임금을 줄이는 ‘연대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리 대표는 “작은 기업들은 대표와 노동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일하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지 잘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종건 코트라 밀라노 무역관장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인구가 이탈리아 전체의 절반도 안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웃도는 핵심 산업 지구다. 이 북부 경제를 받치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 수 기준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모데나(이탈리아)/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대기업-중소기업 협업, 글로벌 경쟁력 핵심”
마시모 페란테 볼로냐 중기연합 대표
볼로냐시 알도 모로 거리에는 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두 기둥을 상징하듯 높은 빌딩 둘이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이 지역 협동조합 연합체인 ‘레가쿠프’, 다른 한쪽은 중소기업 연합체인 ‘치엔네아’(CNA·중소기업협동조합연합)다. 지난달 3일 치엔네아 사무실에서 만난 마시모 페란테 볼로냐 지역 대표(사진)는 “중소기업간 네트워크 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업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볼로냐 체느아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볼로냐는 이탈리아 전국 조직 가운데 가장 크다. 1만5500개 기업이 회원사이며 밑에 하위 조직만 40개를 거느리고 있다. 역할은 크게 세가지다. 중소기업과 장인들을 대표해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대출·조세·컨설팅 등의 서비스 제공, 유럽연합 등에서 제공하는 파트너십이나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이다.”
-이곳 중소기업의 특징은?
“네트워크가 잘 된다는 것을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 이 지역도 1970년대에는 ‘피아트’ 같은 대기업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1980년에 접어들면서 날씬하게 조절하기를 원했고 직원들에게 창업을 권장했다. 이런 식으로 한 공정 분야에 특화된 소기업들이 1990년대 번창했고 서로 생산과정을 통해서 연결됐다. 이곳 산업지구라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추격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살아 남는 지역들은 직원 40~50명의 소기업이 세계적 품질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인력 유출, 단가 후려치기 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문제로 나타난다. 이곳은?
“1980~90년대에 비슷한 문제들이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이 인력을 스카우트에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하려 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투자를 통해 작은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는다. 양쪽 모두 경쟁에 남으려면 특화된 분야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특히 기계업에서 강한 데 이마(IMA)라는 대기업은 하청업체의 지분을 30% 사는 식으로 투자했다. 지배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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