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두레텃밭의 주민 대표인 박쌍애씨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텃밭에서 토종 우엉 잎을 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나는 농부다] 20년 도시농부 박쌍애씨
아파트 사이의 노는 땅을 소박한 텃밭으로 단장한다. 텃밭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웃의 공동체를 꾸린다. 도시 농사가 진화하고 있다. 20년 베테랑 도시농부 박쌍애씨를 만났다.
2010년에 캐나다 밴쿠버의 도시농사를 찾아보았다. 도시농부들이 트레일러를 단 자전거를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농사일 오갈 때도 퇴비나 자재 옮길 때도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는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뒷마당에서는 동네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직접 퇴비를 만들고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도시농부의 수확물을 무조건 믿고 사주는 ‘묻지마 구매’에 동참하였다.
우리의 도시농사도 부쩍 자랐다. 규모로는 여느 선진국에 못지않다. 할머니들의 억제할 수 없는 경작본능이 불을 댕기면서, 콘크리트 사이 흙땅이 드러난 곳마다 텃밭의 ‘창조’를 낳았다. 이제 뚜렷한 진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도시농사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
쓰레기·돌 치워내고 ‘게릴라 농사’
아파트 복판에 일군 상암두레텃밭
“품성 좋은 상추 한달 지나도 싱싱
텃밭 회원 신청자 너무 많아 고민”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고층 아파트 숲속. 상암중학교 뒤쪽으로 들어서니 2300㎡ 규모의 상암두레텃밭이 펼쳐진다. 밀집한 아파트단지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은 모습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터줏대감 박쌍애(60)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나섰다. 박씨의 집은 상암월드컵파크아파트 407동,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너무 좋아요. 작은 도로만 건너면 바로 우리 아파트예요. 자동차 타고 이산화탄소 내뿜지 않아도 돼요. 진짜 로컬푸드로 농사짓잖아요.” 상암두레텃밭의 주민대표를 맡은 박씨는 5평 남짓한 텃밭에 토종 우엉, 상추, 고추, 가지, 열무 등 갖가지 작물을 기른다. “우리 텃밭은 63명 주민의 공동체예요. 5명씩 한조가 돼, 서로 도우면서 농사짓지요. 지나가는 할머니가 ‘맛있겠다’ 하면, 푸짐하게 잔뜩 싸드려요. 다들 이웃이잖아요.” 옆에서 상추 솎아내기를 하던 안병수(48)씨는 “같은 조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고 농사일을 서로 의논하니,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이호중(75) 할아버지도, 유명자(60)씨도 이웃 주민이다. “걸어서 텃밭을 오갈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가을 김장철에는 ‘상암두레텃밭 1일 장터’를 열기도 했다. 순수 유기농으로 재배한 무와 배추를 시중의 3분의 1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공급했다. 농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웃과 땀의 결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때의 수익금 64만9천원은 바로 근처의 삼동소년원에 기부했다. 올해는 김장철 말고도 잎채소가 많이 수확되는 6월에 한차례 더 장터를 열 계획이다. 상암두레텃밭 자리는 원래 주차장 터로, 철망 속에 방치돼 있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도시농부인 박씨가 그냥 둘 리 없었다. 2009년부터 ‘게릴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양천구 신정동에 살던 때부터 나대지를 찾아 텃밭농사를 지었어요. 말이 주차장 용지이지 쓰레기 가득하고 풀이 수북이 자라있더군요. 얼마나 아까워요? 그냥 무단경작을 했어요. 쓰레기 치우고 돌을 골라내고, 조금씩 텃밭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군요.” 게릴라 농사 3년 만인 지난해에 상암두레텃밭은 구청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가 나서고 구의회에서 도시농업 육성조례를 제정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상암두레텃밭은 자금과 기계를 동원해 조성한 상업적 주말농장과는 겉모양부터 다르다. 주민들이 흩어져 있던 돌을 날라 돌담길과 울타리를 세우고,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활용해 입간판과 원두막을 만들었다. 땅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텃밭의 구획을 지었다. 농약과 화학비료 쓰지 말기, 농산물의 절반 기부하기 같은 엄격한 원칙을 정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박씨처럼 직접 깻묵 퇴비를 만들어 쓰는 회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농산물 가격폭등의 무풍지대에 살고 있어요. 지난해 수확한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를 지금까지 먹고 있어요.” 박씨는 농사짓는 재미와 함께 도시농부 20년의 철학도 솔솔 풀어냈다. “우리 텃밭에서 지은 상추는 냉장고에 한달을 넣어두어도 싱싱해요. 마트에서 산 것처럼 금방 무르지 않아요. 지녀야 할 품성을 다 지니고 자랐거든요. 농사를 지을수록, 소비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실해져요. 농산물을 모양 보고 사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구멍난 상추를 외면하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약을 더 치게 되잖아요.” 박씨는 상암두레텃밭을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꿈도 꾸고 있다. “공동체가 되자면 사람들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우리 텃밭 회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올해도 신규 추첨 때 경쟁률이 6 대 1이었어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다보니 인기가 더 좋잖아요. 주민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면서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의 구은경 운영위원장도 “올해는 기존 회원을 절반 유지하고 절반을 새로 뽑았다. 상암두레텃밭이 농사공동체로 가닥을 잡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텃밭 정보 나눔 텃밭·교육 텃밭…노는 땅의 다양한 변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노는 땅(공한지)을 공동체 텃밭으로 활용한다. 서울 가양대교 초입의 노는 땅에는 교육텃밭을 조성한다. 도시텃밭의 다양한 진화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5년 뒤 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도 용인의 엘에이치흥덕지구 부지 1만5000㎡를 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에 맡겨 나눔텃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기흥구 영덕동 흥덕성당 옆에 있는 이 땅은 그동안 농약과 화학비료가 난무하는 무단경작과 쓰레기 불법투기로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25일 나눔텃밭 자리에서 개장식을 연다. 서울의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와 마포구 상암지역 학부모들은 가양대교 초입의 노는 땅 1000㎡를 찾아 교육텃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의 구은경 운영위원장은 “상암 9단지와 11단지 학부모들이 노는 땅을 발견했다. 주민들의 공동체 텃밭으로 활용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져, 근처 학교와 어린이집 아이들의 교육텃밭으로 활용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다음달 8일 개장 잔치를 연다. 김현대 선임기자
아파트 복판에 일군 상암두레텃밭
“품성 좋은 상추 한달 지나도 싱싱
텃밭 회원 신청자 너무 많아 고민”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고층 아파트 숲속. 상암중학교 뒤쪽으로 들어서니 2300㎡ 규모의 상암두레텃밭이 펼쳐진다. 밀집한 아파트단지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은 모습이 눈길을 확 잡아끈다. 터줏대감 박쌍애(60)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나섰다. 박씨의 집은 상암월드컵파크아파트 407동,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너무 좋아요. 작은 도로만 건너면 바로 우리 아파트예요. 자동차 타고 이산화탄소 내뿜지 않아도 돼요. 진짜 로컬푸드로 농사짓잖아요.” 상암두레텃밭의 주민대표를 맡은 박씨는 5평 남짓한 텃밭에 토종 우엉, 상추, 고추, 가지, 열무 등 갖가지 작물을 기른다. “우리 텃밭은 63명 주민의 공동체예요. 5명씩 한조가 돼, 서로 도우면서 농사짓지요. 지나가는 할머니가 ‘맛있겠다’ 하면, 푸짐하게 잔뜩 싸드려요. 다들 이웃이잖아요.” 옆에서 상추 솎아내기를 하던 안병수(48)씨는 “같은 조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고 농사일을 서로 의논하니,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이호중(75) 할아버지도, 유명자(60)씨도 이웃 주민이다. “걸어서 텃밭을 오갈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가을 김장철에는 ‘상암두레텃밭 1일 장터’를 열기도 했다. 순수 유기농으로 재배한 무와 배추를 시중의 3분의 1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공급했다. 농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웃과 땀의 결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때의 수익금 64만9천원은 바로 근처의 삼동소년원에 기부했다. 올해는 김장철 말고도 잎채소가 많이 수확되는 6월에 한차례 더 장터를 열 계획이다. 상암두레텃밭 자리는 원래 주차장 터로, 철망 속에 방치돼 있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도시농부인 박씨가 그냥 둘 리 없었다. 2009년부터 ‘게릴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양천구 신정동에 살던 때부터 나대지를 찾아 텃밭농사를 지었어요. 말이 주차장 용지이지 쓰레기 가득하고 풀이 수북이 자라있더군요. 얼마나 아까워요? 그냥 무단경작을 했어요. 쓰레기 치우고 돌을 골라내고, 조금씩 텃밭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군요.” 게릴라 농사 3년 만인 지난해에 상암두레텃밭은 구청의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가 나서고 구의회에서 도시농업 육성조례를 제정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상암두레텃밭은 자금과 기계를 동원해 조성한 상업적 주말농장과는 겉모양부터 다르다. 주민들이 흩어져 있던 돌을 날라 돌담길과 울타리를 세우고,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활용해 입간판과 원두막을 만들었다. 땅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텃밭의 구획을 지었다. 농약과 화학비료 쓰지 말기, 농산물의 절반 기부하기 같은 엄격한 원칙을 정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박씨처럼 직접 깻묵 퇴비를 만들어 쓰는 회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농산물 가격폭등의 무풍지대에 살고 있어요. 지난해 수확한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를 지금까지 먹고 있어요.” 박씨는 농사짓는 재미와 함께 도시농부 20년의 철학도 솔솔 풀어냈다. “우리 텃밭에서 지은 상추는 냉장고에 한달을 넣어두어도 싱싱해요. 마트에서 산 것처럼 금방 무르지 않아요. 지녀야 할 품성을 다 지니고 자랐거든요. 농사를 지을수록, 소비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실해져요. 농산물을 모양 보고 사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구멍난 상추를 외면하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약을 더 치게 되잖아요.” 박씨는 상암두레텃밭을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꿈도 꾸고 있다. “공동체가 되자면 사람들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우리 텃밭 회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올해도 신규 추첨 때 경쟁률이 6 대 1이었어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다보니 인기가 더 좋잖아요. 주민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면서 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의 구은경 운영위원장도 “올해는 기존 회원을 절반 유지하고 절반을 새로 뽑았다. 상암두레텃밭이 농사공동체로 가닥을 잡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텃밭 정보 나눔 텃밭·교육 텃밭…노는 땅의 다양한 변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노는 땅(공한지)을 공동체 텃밭으로 활용한다. 서울 가양대교 초입의 노는 땅에는 교육텃밭을 조성한다. 도시텃밭의 다양한 진화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5년 뒤 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도 용인의 엘에이치흥덕지구 부지 1만5000㎡를 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에 맡겨 나눔텃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기흥구 영덕동 흥덕성당 옆에 있는 이 땅은 그동안 농약과 화학비료가 난무하는 무단경작과 쓰레기 불법투기로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25일 나눔텃밭 자리에서 개장식을 연다. 서울의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와 마포구 상암지역 학부모들은 가양대교 초입의 노는 땅 1000㎡를 찾아 교육텃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마포도시농업네트워크의 구은경 운영위원장은 “상암 9단지와 11단지 학부모들이 노는 땅을 발견했다. 주민들의 공동체 텃밭으로 활용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져, 근처 학교와 어린이집 아이들의 교육텃밭으로 활용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다음달 8일 개장 잔치를 연다. 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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