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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배추 싹 들여다보다 신내림”…목발 짚은 도시농사 대부

등록 2013-05-21 20:19수정 2013-05-22 11:59

‘도시농업의 전도사’ 안철환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산의 ‘바람들이농장’에서 두 목발을 세워둔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시농업의 전도사’ 안철환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산의 ‘바람들이농장’에서 두 목발을 세워둔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농부다] 안철환 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

어릴 때 소아마비로 몸 불편
귀농 엄두 못내다 도시농사 눈떠
손 덜가도 튼실히 키우는 법 익혀
도시농부학교·텃밭보급소 열어
도시농부학교에서 안철환(51)씨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두 번쯤 놀란다. 두 목발을 짚고 들어오는 장애인이~? 놀라운 기분으로 귀를 기울이던 이들은 다시 놀란다. 구수한 입담도 그렇지만 알토란 같은 농사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홀린 듯이 빠져들었던 이들은 제대로 된 농사를 지어봐야겠다는 설렘이 가득한 채 교실을 나선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15년쯤 전에 서너 평 되는 땅을 얻어 씨앗을 뿌렸어요. 어느 날 배추 싹이 트는데 홀딱 반해버렸죠. 얼마나 신기하던지, 매일 밭에 나가서 한나절씩 들여다보곤 했어요. 신내림이 딴게 아니더군요. 지금도 싹이 트는 것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신비해요.”

생명의 신비가 무뎌진 일상의 감각을 번번이 깨워놓는다고 해도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없었을까? “기질이 그래요. 무언가에 빠져들면 어려움에 대해서는 생각이 가질 않아요.” 그래도 그렇지. 농사라는 게 몸을 써서 하는 일인데 남보다 훨씬 불편한 몸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움이 없었을까?

“농사는 규격화하거나 매뉴얼화될 수 없는 것이지요. 때에 따라서, 흙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다를 수밖에 없는 너그러움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 여건에 맞춰서, 자기 방식대로 해보기가 좋아요.” 따지고 보면 도시의 규격화된 삶이야말로 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밀어내기 일쑤다. 그로서는 농사보다 규격화된 도시의 다른 일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가 도시를 경작하면
자급의 순환고리 이어지죠
곡식도 심고 채소도 키우는
공원 생기면 얼마나 좋아요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 거름 적게 쓰기, 토종종자 직파 등 그가 찾아낸 농사법들은 사람의 손이 덜 가면서도 작물을 튼튼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닿아 있다. 자기 몸의 조건에 맞는 농사법을 찾아내고 몸에 익혔다. 2005년에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 제안해서 도시농부학교를 열었다. 농사를 시작한 지 오륙년 뒤다. 도시농사를 풀무질하는 이 배움터가 지금은 수도권에만 30여 군데이다. 지금은 웬만한 도시마다 없는 곳이 없지만, 그때는 처음이었다. 2011년에는 텃밭보급소도 열었다.

“2000년에 상자텃밭을 나눠주는데 아이나 어른이나 다들 환호하더군요. 농사는 짓고 싶은데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생활의 근거지를 농촌으로 옮겨갈 처지가 아닌 도시인들에게는 절실했죠.” 몸이 불편한 그의 처지도, 귀농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게 보면 도시농사가 자신의 불리한 여건을 유리하게 이끌어낸 계기가 된 셈이다. 한 사람이 백 걸음을 가는 것이 귀농이라면, 도시농사는 백 사람이 한 걸음을 옮기는 방식이라는 생각에 눈을 떴다. 그는 도시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빈틈없이 보여주었다.

똥에 대한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골똥 서울똥>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10년 넘게 가꿔온 경기도 안산의 ‘바람들이농장’에서는 100여명이 함께 농사를 짓는다. 여기저기 거름통이 즐비하고 퇴비 더미가 버젓하다. 페트병에 오줌을 담아오고, 똥을 밀봉해서 싸가지고 오는 이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다른 주말농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농장지기인 그의 가르침이 있어서다. 잘 익은 거름에서는 향긋한 흙냄새가 퍼진다며 거름을 한줌 쥐어 코에 대주기도 한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은 짓궂다기보다 신명나 보인다.

좋은 구상이 떠오르면 혼자만이 아니라 널리 공유하고픈 습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공동체 의식이고, 활동가 체질이랄까? 그가 두 목발 짚고 뛰어다니며 품을 판 결실이 지난해 도시농업시민협의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전국의 도시농부들이 한데 뭉치고 그가 대표를 맡았다. 거기 모인 이들은 건배를 할 때 “도시를 경작하자”고 외친다. 농사와 도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울림에서 도시에 대한 문제의식이 묻어난다.

“우리네 도시는 철저히 외부에 의존하고 있지요. 먹을거리, 에너지만이 아니라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시 밖에서 들여오고, 그러면서 어마어마하게 쓰레기를 만들어내요. 그것을 처리하느라 다시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들이고요. 순환의 고리가 끊어져서 그래요. 그 고리를 잇는 실마리를 도시농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봐요.” 그는 석유가 고갈되어가는 시대를 헤쳐나갈 ‘노아의 방주’를 띄우듯이 도시농사를 짓는다.

그가 짓는 농사는 도시를 재생하는 마중물이다. 흙냄새를 맡을 수 없는 도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의 숨통을 틀어막은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는 농사로 도시를 되살린 풍경을 구상해본다. 동네마다 텃밭이 자리하고, 건물의 옥상과 베란다에는 상자텃밭이 즐비한 풍경이 일상이 되는 도시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져요. 그래서 저는 저마다 두 번째 직업이 농부인 도시, 전국민이 도시농부가 되어 도시를 가꾸는 꿈을 꾸죠.”

그 꿈을 가로막는 복병이 없을 리 없다. 무엇보다도 땅 문제다. 농사를 짓고 싶은데 땅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이 발뺌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도시농부들은 단박에 안다. 농사지을 만하게 밭을 일궈놓았는데 비워주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손바닥만한 땅 한 뙈기라도 아쉽기만 하다.

“실상, 땅이 왜 없겠어요. 온통 도시계획과 개발용으로 묶어놓았으니 그렇죠. 아직 공원으로 꾸리지 않은 공원부지도 적지 않고요. 공공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휴지도 많아요. 그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까 없는 거지요. 공무원들도 주차장 만들 땅은 귀신같이 찾아내면서도 도시농사 지을 땅 좀 없냐고 하면 손사래를 쳐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땅 문제를 풀려면 손봐야 할 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지법도, 건축법도, 공원법도 도시농사의 손발을 묶고 있다. “잔디 깔고 나무를 심어야만 공원인가요. 곡식도 심고, 채소도 키우는 공원이 얼마나 좋아요.”

‘농부는 루저, 장애인은 루저’라는 인식의 지평을 뒤엎은 사람, 안철환.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을 짚고 농사를 짓는 그가 도시농사의 대부로 떠오른 것은 희망이다. 누구라도 도시농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농사짓는 데 필요한 것은 당장 자신의 일상을 떨치고 밭으로 달려나가는 것, 그럴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안철환은 온몸으로 보여준다.

글·사진 이현숙 텃밭지도사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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