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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21년 ‘을’의 서러움 벗어날수 있겠다는 희열이 솟구쳤어요”

등록 2013-04-11 19:23수정 2013-04-12 10:04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설립한 조합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사무실 앞에서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맨 오른쪽이 김희범 대표.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을 설립한 조합원들이 10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사무실 앞에서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맨 오른쪽이 김희범 대표.
99%의 경제
서울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김희범 대표의 희망가
올해초 사표
사장횡포 참다 한마디했는데…
실업자로 전락
10여곳에 이력서 넣었지만
모두 낙방

우연히 지하철에서
서울시 협동조합 안내문 봤다
가슴이 울렁 ‘옳다구나’ 하며
두달뒤 후배 5명 사표내고 합류
각각 1천만원 남짓 출자

커지는 성공예감
월 1억5천만원 매출 자신
“경쟁력 있다는 감이 잡혀요…
10년이상 경력자 뭉치니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잖아요”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해고가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956년 바스크라는 소수민족 지역에서 20대 노동자 5명이 석유곤로 생산공장을 인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들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고 뭉쳤다. 8만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행복한 일터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캐나다 퀘벡주에는 앰뷸런스 응급구조사들의 노동자협동조합 세탐(CETAM)이 있다. 세탐은 원래 주식회사였다. 1988년 부도가 나자, 응급구조사 40명이 협동조합을 세워 그 회사를 인수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없다는 일념이었다. 지금 세탐은 340명이 일하는 퀘벡주 최대의 앰뷸런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봉 수준은 60여개 지역 업체 중에 가장 높다.

6일 서울의 강서구 공항동에서는 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이 개업식을 열었다. 인천의 ㅋ사에서 동고동락하던 유지보수 업계의 베테랑 동료 6명이 뭉쳤다. 모양을 제대로 갖춘 노동자협동조합(직원협동조합)이 한국에서도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그전 회사 사장의 횡포를 참다못해, 올해 초 줄사표를 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고,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어한다. ‘한국의 몬드라곤’, ‘한국의 세탐’의 싹이 돋아나고 있다.

“새해 들자마자 사장이 28명 직원의 인센티브와 수당을 모두 없애더군요. 거기에다 무급휴가를 한 달씩 쓰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월급이 200만원에도 못 미치는데, 무급휴직은 너무 심하다 싶어 전체회의에서 한마디 했습니다. 제가 최고참 부장이었거든요. 사장 말을 거역한다고 그 자리에서 쫓아내더군요.”

실업자로 전락한 김희범(49)씨는 10여곳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모두 보기 좋게 낙방했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서울시의 협동조합 안내문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옳다구나, 21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을’의 서러움, 샐러리맨의 아픔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열이 솟구쳤습니다. 그날 밤 한잠도 못 이뤘어요.”

김씨는 다음날 ㅋ사에서 함께 일하던 팀장급 직원들을 만나, 협동조합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두 달 뒤인 3월 초, 5명의 후배가 사표를 던지고 협동조합 설립에 합류했다.

“다른 회사보다 월급은 박하지만, 사람들이 좋아 그 직장을 계속 다녔어요. 그런데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어요. 이거는 도저히 아니다 싶던 차에 협동조합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회사에서 조금만 덜 비인간적으로 나왔더라도 이렇게 뛰쳐나오진 않았을 겁니다. 아마 그랬다면 우리 협동조합도 태어날 수 없었겠죠.(웃음)” 이현율(34) 관리이사의 말이다.

6명의 진용이 갖춰지자, 협동조합 설립은 날개를 달았다. 김씨가 대표를 맡았다. 나머지 5명이 모두 이사직과 실무팀장을 겸하기로 했다. 각각 1천만원 남짓의 출자금을 내 김포공항 가까운 곳에 사무실도 장만했다. 사업이 안착될 때까지는 최대한 단출하게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 당분간 김 대표를 포함해 모두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는 원칙도 정했다. 김 대표는 “그래도 그전 회사에서 받던 급여 수준은 된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냉각탑과 냉온수기, 보일러의 유지보수뿐 아니라 식당의 덕트(공조기) 설치, 건물 도색 등 여러 사업 아이템을 운영한다. 주요 협력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고 있다. 부품을 저렴하게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개업식 전에 벌써 3건의 덕트 공사를 했어요. 고맙게도 협력업체에서 일거리를 연결해주었지요. 인터넷 광고를 올렸더니, 첫날부터 평택과 여의도에서 2건의 공사가 들어왔어요. 이 바닥에서 오래 신용을 쌓은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아요.”(김 대표)

김 대표와 조합원들은 올해 월평균 1억5천만원의 매출을 자신한다. 해를 넘기기 전에 조합원들의 급여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바닥에서는 영업력과 공사능력이 핵심적인 사업 자산이에요. 10년 이상 경력자인 우리 6명이 뭉치니까,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잖아요. 우리 업계에서는 노동자협동조합 방식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는 확실한 ‘감’이 잡혀요. 그전 회사에서는 사장만 큰돈을 벌고, 모든 직원이 가난했어요. 우리는 수입이 늘어나면 급여부터 올릴 겁니다. 앞으로 비슷한 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 기대해요.”(김 대표)

이 이사는 협동조합의 정직함을 강조한다. “그전 회사에서는 추가로 에이에스(A/S)를 해줘야 하는 경우에도 잘 안해줬어요. 우리 협동조합에서는 정직하게 공사하고 에이에스도 열심히 할 겁니다. 가격도 저렴하게 받고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기술부 팀장을 겸한 김일억(37) 전무도 거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하다는 게 제일 좋아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일을 하니까요.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앞으로 돈만 좀 더 벌면 만사형통이지요.”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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