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주민들이 설립한 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아침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제작한 손수레 앞에 둘러서 있다.
99%의 경제
복지 사각지대 노인들 위한 ‘마중물협동조합’
복지 사각지대 노인들 위한 ‘마중물협동조합’
광주 광산구 신가동 주민 105명
자본금 2천만원 모아 출범
고철상 조합원은 터 무상임대
다른 조합원들은 고철·폐지 등 기증
수익은 노인들 드리고 나머진 적립 권아무개(77) 할머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서 2500만원 전세 주택에서 지낸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몇년째 병고에 시달리는 그는 3남매를 뒀다. 하지만 자녀 모두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 된다. 막내딸이 가끔 보내주는 용돈뿐이다. 그렇다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도 없다.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권씨에게 폐지 줍기는 최후의 생계 수단이다. 권씨는 “이상하게 우유를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폐지와 빈병을 주워 하루 2000원쯤 번다. 우유를 사먹으려면 폐지를 주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가 사는 신가동은 8800가구 가운데 45%가량이 단독주택이다. 1970년대 택지개발 바람을 타고 이곳에 들어선 ‘새마을 주택’엔 옛 거주자들이 떠난 뒤 노인들이 많이 산다. 월세나 전세가 다른 지역보다 싸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도심 아파트단지에서 밀려난 이들이다. 신가동엔 폐지 줍는 노인들이 유독 많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층도 있지만, 권씨처럼 정부의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도 꽤 있다. 신가동사무소 조사 결과,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이 31명이다. 신가동 토박이 김아무개(81)씨는 “하루 3㎞쯤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다. 요즘 폐지 값이 1㎏에 80원까지 떨어져 더 힘이 든다”고 말했다. 김형준(48) 신가동 동장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몇몇 주민에게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주민들이 동네 이웃인 폐지 줍는 노인들을 도와보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다들 ‘협동조합이 뭐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봉사하는 것이라면 좋다’며 공감했다고 한다. 주민 13명과 동사무소 직원 3명 등 16명은 발기인 모임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협동조합의 실무를 공부한 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돌봄서비스를 협동조합 주요 사업으로 확정했다. 전직 통장과 고철 수집상, 노인회장, 주부 등 평범한 동네 주민 1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승미 해돋이지역아동센터장이 제안한 ‘마중물’을 협동조합 이름으로 선정했다. 양동일(55) 마중물협동조합 이사장은 “어렸을 때 펌프에 한 바가지 물을 부어 새 물을 끌어올렸잖아요? 서로 한 바가지 마중물이 돼 많은 분들에게 사랑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주민 105명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2000원부터 200만원까지 출자했다. 폐지 줍는 노인 31명 가운데 형편이 더욱 힘든 어르신 15명을 조합원으로 모셨다. 2000원씩 출자한 노인들은 협동조합 돌봄서비스의 우선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형편 어려운 노인은 2천원 출자
우선 수혜자이자 ‘조합의 주인’
소속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커져
이사장 “재활용품 선별 일감 드려
월 고정급 지급하는게 첫째 목표” 마중물협동조합은 자본금 2000만원을 기반으로 지난달 18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전국 최초로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협동조합의 출발이었다. 마중물협동조합 이사인 이재방(56) 삼성고철 대표가 신가동 고철 집하장(3240㎡) 중 198㎡의 터를 무상 임대 형식으로 출자했다. 컨테이너 사무실에 마중물 로고가 찍힌 현판을 걸고 집기를 들여놓았다. 조합 사무실 앞엔 양 이사장과 조합원들이 뚝딱뚝딱 비닐하우스로 헌옷 전시방을 손수 만들었다. 인근 교회와 통장, 조합원, 이웃 주민들로부터 헌옷 3000여벌을 무료로 기증받아 쓸 만한 옷을 1000원씩에 판 것이 첫 사업이었다. 폐지 줍는 노인 조합원들도 마중물협동조합에다 폐지를 판다. 조합원들은 고철과 폐지를 무료로 기증하기도 한다. 헌옷·폐지를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폐지 수집용 손수레 5대를 제작해 어르신들에게 전달했다. 리어커엔 펌프에 마중물을 넣는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를 붙였다. 양옥용(72) 조합 감사는 “지금까진 혼자서 폐지를 줍고 다니던 노인들이 소속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회사의 주인이라는 자존감도 생길 것이고…”라고 말했다. 마중물협동조합은 한달 수익금 100여만원 가운데 30%를 적립한 뒤, 어르신 15명에게 수당 5만원씩과 10㎏ 쌀 한포대씩을 건넸다. 개소식은 22일 오후 연다. 이날은 주정태(82) 이사가 기증한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아 푸지게 마을 잔치를 할 예정이다. 마중물협동조합은 사회복지망의 빈자리를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로 채우는 ‘공생의 복지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경리 경험을 살려 회계를 맡은 전은숙(46) 이사는 “개별 배당은 하지 않고 수익금을 모두 복지 서비스에 쓴다는 것이 정관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수익금이 늘면 지역아동센터나 경로당 등도 도울 계획이다. 양동일 이사장은 “폐지를 줍는 어르신 15명을 재활용품 선별 작업에 투입해 월 고정급을 지급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예요. 멋지게, 선하게 하려고요. 잘될 것 같지 않습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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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은 노인들 드리고 나머진 적립 권아무개(77) 할머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에서 2500만원 전세 주택에서 지낸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몇년째 병고에 시달리는 그는 3남매를 뒀다. 하지만 자녀 모두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 된다. 막내딸이 가끔 보내주는 용돈뿐이다. 그렇다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도 없다.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권씨에게 폐지 줍기는 최후의 생계 수단이다. 권씨는 “이상하게 우유를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폐지와 빈병을 주워 하루 2000원쯤 번다. 우유를 사먹으려면 폐지를 주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가 사는 신가동은 8800가구 가운데 45%가량이 단독주택이다. 1970년대 택지개발 바람을 타고 이곳에 들어선 ‘새마을 주택’엔 옛 거주자들이 떠난 뒤 노인들이 많이 산다. 월세나 전세가 다른 지역보다 싸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 때문에 도심 아파트단지에서 밀려난 이들이다. 신가동엔 폐지 줍는 노인들이 유독 많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층도 있지만, 권씨처럼 정부의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도 꽤 있다. 신가동사무소 조사 결과,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이 31명이다. 신가동 토박이 김아무개(81)씨는 “하루 3㎞쯤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다. 요즘 폐지 값이 1㎏에 80원까지 떨어져 더 힘이 든다”고 말했다. 김형준(48) 신가동 동장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몇몇 주민에게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주민들이 동네 이웃인 폐지 줍는 노인들을 도와보자는 취지였다. 처음엔 다들 ‘협동조합이 뭐요?’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봉사하는 것이라면 좋다’며 공감했다고 한다. 주민 13명과 동사무소 직원 3명 등 16명은 발기인 모임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협동조합의 실무를 공부한 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돌봄서비스를 협동조합 주요 사업으로 확정했다. 전직 통장과 고철 수집상, 노인회장, 주부 등 평범한 동네 주민 1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승미 해돋이지역아동센터장이 제안한 ‘마중물’을 협동조합 이름으로 선정했다. 양동일(55) 마중물협동조합 이사장은 “어렸을 때 펌프에 한 바가지 물을 부어 새 물을 끌어올렸잖아요? 서로 한 바가지 마중물이 돼 많은 분들에게 사랑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주민 105명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2000원부터 200만원까지 출자했다. 폐지 줍는 노인 31명 가운데 형편이 더욱 힘든 어르신 15명을 조합원으로 모셨다. 2000원씩 출자한 노인들은 협동조합 돌봄서비스의 우선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형편 어려운 노인은 2천원 출자
우선 수혜자이자 ‘조합의 주인’
소속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커져
이사장 “재활용품 선별 일감 드려
월 고정급 지급하는게 첫째 목표” 마중물협동조합은 자본금 2000만원을 기반으로 지난달 18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전국 최초로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협동조합의 출발이었다. 마중물협동조합 이사인 이재방(56) 삼성고철 대표가 신가동 고철 집하장(3240㎡) 중 198㎡의 터를 무상 임대 형식으로 출자했다. 컨테이너 사무실에 마중물 로고가 찍힌 현판을 걸고 집기를 들여놓았다. 조합 사무실 앞엔 양 이사장과 조합원들이 뚝딱뚝딱 비닐하우스로 헌옷 전시방을 손수 만들었다. 인근 교회와 통장, 조합원, 이웃 주민들로부터 헌옷 3000여벌을 무료로 기증받아 쓸 만한 옷을 1000원씩에 판 것이 첫 사업이었다. 폐지 줍는 노인 조합원들도 마중물협동조합에다 폐지를 판다. 조합원들은 고철과 폐지를 무료로 기증하기도 한다. 헌옷·폐지를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폐지 수집용 손수레 5대를 제작해 어르신들에게 전달했다. 리어커엔 펌프에 마중물을 넣는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를 붙였다. 양옥용(72) 조합 감사는 “지금까진 혼자서 폐지를 줍고 다니던 노인들이 소속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회사의 주인이라는 자존감도 생길 것이고…”라고 말했다. 마중물협동조합은 한달 수익금 100여만원 가운데 30%를 적립한 뒤, 어르신 15명에게 수당 5만원씩과 10㎏ 쌀 한포대씩을 건넸다. 개소식은 22일 오후 연다. 이날은 주정태(82) 이사가 기증한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아 푸지게 마을 잔치를 할 예정이다. 마중물협동조합은 사회복지망의 빈자리를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로 채우는 ‘공생의 복지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경리 경험을 살려 회계를 맡은 전은숙(46) 이사는 “개별 배당은 하지 않고 수익금을 모두 복지 서비스에 쓴다는 것이 정관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수익금이 늘면 지역아동센터나 경로당 등도 도울 계획이다. 양동일 이사장은 “폐지를 줍는 어르신 15명을 재활용품 선별 작업에 투입해 월 고정급을 지급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예요. 멋지게, 선하게 하려고요. 잘될 것 같지 않습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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