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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아파트가 싫다, 아파트가 좋다!

등록 2013-01-24 19:25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
99%의 경제
HERI의 시선
출근시간. 서둘러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른다. 헉! 스킨로숀 냄새 가득 풍기는 아저씨가 있다.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낯설다.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오늘따라 거북이 같은 엘리베이터 층 표시 액정만 노려본다. 휴~, 1층에서 내리며 안도의 숨을 쉰다.

늦은 퇴근시간. 어깨가 축 처진 여중생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다. 우리 딸 또래다. ‘몇 학년이니? 현진이 친구니?’ 아이는 좁은 공간 모서리로 뒷걸음치며 경계의 목소리로 겨우 ‘아니요!’하곤 후다닥 도망치듯 내린다.

이런 아파트가 싫다. 이런 내가 싫다. 그런데 참 편하다. 이런!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는 나눔과 교환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러나 아파트에는 나눌 것도 교환할 것도 없다. 고립된 공간에 왕성한 소비만 있다. 교환은 대형유통업체와만 한다. 이웃은 경계의 대상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한 때 수원시가 선정한 최우수 아파트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전현직 입주자대표 간에 소송이 벌어졌다. 이런! 공동체가 수익모델로 바뀌다니….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아파트관리사무소를 주민들이 직접 운영할 수는 없을까? 아파트 화단을 텃밭으로 바꾸고 노인회에서 관리하며 아이들과 농사를 지으면 안될까? 유치원과 헬스클럽을 이용자 주민들이 운영할 수는 없을까? 아파트단지 안 상가를 주민들의 공동구매 매장과 공동이용 병원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인근 상가들과 주민대표조직(관리사무소)이 ‘착한가게, 좋은식당’ 협약을 맺을 수는 없을까?

아파트입주자가 의무적으로 출자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아파트협동조합을 제도화했으면 좋겠다. 아파트협동조합이 관리사무소 운영주체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조합원이 되고 이사와 대표를 뽑아 관리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를 위탁하지 말고, 아파트협동조합이 전문가를 채용하면 된다. 모양새의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주민이 결정하고 주민이 책임지는 구조로 바뀐다.

관리사무소와 상가 건물에는 주민들이 출자한 육아협동조합, 학원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이 입주한다. 영유아 부모들은 육아협동조합, 초중고생 부모들은 학원협동조합을 만든다. 친환경 농식품과 생활재를 공동구매하는 생활협동조합은 지금의 부녀회를 중심으로 꾸린다. 병원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주치의를 두고 문턱을 확 낮춘다. 노인정 어르신들은 아파트와 학교의 텃밭가꾸기와 경비실을 운영하는 서비스협동조합을 만든다.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협동조합에 주변의 개인주택 주민들도 참여한다고 상상해 보자. 주민자치와 풀뿌리 지역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아마도 몇 개의 아파트협동조합이 손잡으면 우리동네 빵집, 우리동네 통닭집, 우리동네 감자탕집도 만들 수 있을거다. 1년이면 절반이 망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만들고, 지역주민들이 일하고,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는 지속가능한 착한 경제를 만들 수 있을거다.

오늘도 한바탕 유쾌한 꿈을 꾼다. 꼭 실현될 수밖에 없는 꿈을 꾼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난 아파트가 좋다! 꿈꾸는 아파트공동체!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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