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99%의 경제
인터뷰/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인터뷰/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협동조합의 심장이 없다.” 그래서 농협은 덩치만 큰 공룡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이제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렸다. 농협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을 7일 만나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농협 개혁의 큰 틀을 짰던 당사자답게 4시간 동안 소신을 쏟아냈다. 골자는 두 가지였다. “잘못된 농협중앙회 체제를 다시 개혁해야 한다.” “새로 태어나는 협동조합들을 도와야 한다.”
김성훈 전 장관은 만나자마자 대뜸 소금을 내밀었다. “선물입니다.” 경남 하동의 박수근 명인이 800℃ 온도에서 전통방식으로 구운 수제 소금이었다. “기자, 종교인, 대학교수, 판검사들을 만나면 소금을 선물합니다. 빛과 소금 역할 해라, 썩지 마라, 이 뜻입니다. 언론만 제대로 해도 세상이 나아질 텐데요.” 70대 중반에 이른 전직 장관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최근에는 농민 연수단을 이끌고 쿠바의 유기농 현장을 다녀왔다. “쿠바의 유기농은 저투입, 저가격입니다.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아직도 고투입, 고비용, 고가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우리 유기농 활성화의 물꼬를 튼 생협법(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을 이끄셨죠?
“1998년 3월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첫 국무회의에서 제안했어요. ‘선진국 중에 농민들의 생산자협동조합만 있고 소비자들의 생협이 없는 나라는 없다. 기존 상인단체의 반대 로비 때문에 20년째 생협법안이 경제기획원 서랍에 묵혀 있다’고 대통령 앞에서 작심하고 발언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법이 제정돼 1999년부터 시행됐습니다. 한살림과 아이쿱 같은 생협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지요. 유기농민들은 판매처를 확보하게 됐고요.”
“지금 농협중앙회장은 말만 비상임
조합장 하던 사람이
중앙회장 되는 순간
수만명 직원 생사여탈권 손에 쥐어
수억원대 연봉 받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 되고요
재벌회장이나 다를 게 없어
진정한 명예직으로 바꿔야”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유기농 전도사이다. “생협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반대 로비 때문에 중요한 세가지 조항이 최종 성안 과정에서 빠졌어요. 생협연합회의 결성을 막고 친환경농산물만 취급하도록 제한했어요. 정부가 지원하지 못하게 했고요. 최근에 생필품 취급 제한 규정만 완화됐어요. 선진국의 소비자협동조합을 가보세요.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원하면 어떤 사업도 다 합니다. 농산물 아니라 공산품도 취급하고. 장례와 법률상담 같은 서비스도 합니다. 협동조합의 문어발 사업은 나쁜 게 아닙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렸죠. 농협의 변화가 불가피할 텐데요? “다행히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어요. 지금은 새로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농협은 새로 생겨나는 협동조합들을 잘 보듬어 안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농협이 못한 일을 새 협동조합들이 메워준다, 그렇게 보완관계로 생각해야 해요. 유사 농협의 난립을 막겠다는 식으로 적대시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제도권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맏형 정도가 아니고 아버지 역할 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해야 농협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평소 농협중앙회장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하셨죠? “지금의 농협중앙회장은 말만 비상임이에요. 조합장 하던 사람이 중앙회장 되는 순간, 수만명 직원의 생사여탈권(인사권)을 손에 쥡니다.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대한민국의 최고 봉급자가 되고요. 진정한 명예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농협 스스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하나, 농협은 그런 체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림부(지금의 농림수산식품부) 조직을 통해 개혁을 강요당합니다. 농정 잘못한 책임까지 농협이 뒤집어쓰는 일도 반복됐어요. 역대 중앙회장이 정권 바뀐 뒤에 감옥생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난해 농협 개혁을 했잖아요. 그것도 비판하셨죠? “지난해의 사업구조개편은 농민의 열망이 반영된 것도 아니고, 농민 실익과도 무관합니다. 농민들이 배신당했습니다. 협동조합은 경제성과 협동, 두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하면서, 비즈니스 측면만 보았습니다. 협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협동조합을 왜 합니까? 약자들이 힘 합쳐서 서로 돕자는 거고, 공동행동으로 규모의 힘을 도모하자는 거지요. 지금 식이라면 농협과 영리회사의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이명박 체제에서의 사업구조개편은 농협이 협동조합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농협의 한계를 더욱 고착시켰습니다.” -새로운 개혁조처가 또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2000년 7월 당시 농협과 축협, 인삼조합을 통합하는 개혁을 마무리하면서, 2단계 개혁과제 세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우선, 중앙회 기능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산하의 자회사들을 단위조합으로 내려보내야 합니다. 20~30년 장기 상환방식이면, 단위조합들이 자회사를 인수할 수 있습니다. 단위농협이 자회사의 직접 출자자가 돼야 합니다. 둘째, 중앙회는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겁니다. 지금의 중앙회는 협회 기능만 수행하고, 지부 조직도 없애야 합니다. 신용연합회와 판매연합회를 세워 사업을 맡도록 해야 합니다. 농민→단위조합→중앙회→지주회사→자회사의 다섯단계로 돼있는 출자관계를 단위조합에서 직접 출자하는 구조로 단순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농협이 농민의 것이 됩니다. 지금처럼 복잡한 다단계 지배구조에서는 농민이 아니라 중앙회나 지주회사가 농협의 주인입니다.” “지난해 사업구조개편은
농민 열망 반영된 것도 아니고
농민 실익과도 무관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
비즈니스 측면만 봐
협동은 온데간데없어져
지금 식이라면
영리회사와 차별성 없어
협동조합이길 포기한 것” -자회사 경영을 단위조합으로 다 넘길 수는 없잖아요? “유통이나 여행 같은 전국적 사업은 연합회에서 맡아야겠지요. 지역단위의 사료공장 같은 것을 단위조합으로 넘기라는 거지요. 지금은 그런 사업체까지도 지주회사 산하로 돼있습니다.” -세번째 과제는 무엇이지요? “농협의 신용사업은 1금융권의 은행과 2금융권의 상호금융으로 어중간하게 2원화돼 있습니다. 이것을 시대에 맞게 바로잡아야 합니다.(농협은 중앙회에서 은행사업을 하고 단위조합에서 상호금융사업을 한다) 근대화 시기에 고금리 사금융과 저금리 공금융의 간극을 메워주던 상호금융의 역할은 이제 끝났습니다. 단위조합을 가보면 어떤 사람은 비싼 이자 내고, 어떤 사람은 싼 이자 내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호금융을 떼내서 별도의 연합회를 만들자는 논의를 벌이는데, 그 길은 아닙니다. 농협의 상호금융이 은행을 흡수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신용연합회를 세우고, 거기에서 은행사업과 상호금융사업을 모두 하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농협 개혁을 수없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봉합되고 흐지부지됐습니다.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농협 지주회사체제를 만든 국회 농식품위에서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농민을 조합원이 아니라 고객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다행히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회입니다. 농협의 사업구조개편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농민단체 지도자들도 다시 나서야 합니다.” 중앙대 교수 출신의 김 전 장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김대중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뒤,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 총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 등을 지냈으며 농업과 유기농, 환경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2008년부터 맡고 있는 환경정의 이사장 직을 2월에 그만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면 환경정의의 이사장 직을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반환경주의자가 나오지 않겠지요.”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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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대 연봉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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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회장이나 다를 게 없어
진정한 명예직으로 바꿔야”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유기농 전도사이다. “생협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반대 로비 때문에 중요한 세가지 조항이 최종 성안 과정에서 빠졌어요. 생협연합회의 결성을 막고 친환경농산물만 취급하도록 제한했어요. 정부가 지원하지 못하게 했고요. 최근에 생필품 취급 제한 규정만 완화됐어요. 선진국의 소비자협동조합을 가보세요.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원하면 어떤 사업도 다 합니다. 농산물 아니라 공산품도 취급하고. 장례와 법률상담 같은 서비스도 합니다. 협동조합의 문어발 사업은 나쁜 게 아닙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렸죠. 농협의 변화가 불가피할 텐데요? “다행히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어요. 지금은 새로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농협은 새로 생겨나는 협동조합들을 잘 보듬어 안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농협이 못한 일을 새 협동조합들이 메워준다, 그렇게 보완관계로 생각해야 해요. 유사 농협의 난립을 막겠다는 식으로 적대시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제도권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맏형 정도가 아니고 아버지 역할 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해야 농협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평소 농협중앙회장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하셨죠? “지금의 농협중앙회장은 말만 비상임이에요. 조합장 하던 사람이 중앙회장 되는 순간, 수만명 직원의 생사여탈권(인사권)을 손에 쥡니다.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대한민국의 최고 봉급자가 되고요. 진정한 명예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농협 스스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하나, 농협은 그런 체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림부(지금의 농림수산식품부) 조직을 통해 개혁을 강요당합니다. 농정 잘못한 책임까지 농협이 뒤집어쓰는 일도 반복됐어요. 역대 중앙회장이 정권 바뀐 뒤에 감옥생활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난해 농협 개혁을 했잖아요. 그것도 비판하셨죠? “지난해의 사업구조개편은 농민의 열망이 반영된 것도 아니고, 농민 실익과도 무관합니다. 농민들이 배신당했습니다. 협동조합은 경제성과 협동, 두가지가 함께 가야 합니다.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하면서, 비즈니스 측면만 보았습니다. 협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협동조합을 왜 합니까? 약자들이 힘 합쳐서 서로 돕자는 거고, 공동행동으로 규모의 힘을 도모하자는 거지요. 지금 식이라면 농협과 영리회사의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이명박 체제에서의 사업구조개편은 농협이 협동조합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농협의 한계를 더욱 고착시켰습니다.” -새로운 개혁조처가 또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2000년 7월 당시 농협과 축협, 인삼조합을 통합하는 개혁을 마무리하면서, 2단계 개혁과제 세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우선, 중앙회 기능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산하의 자회사들을 단위조합으로 내려보내야 합니다. 20~30년 장기 상환방식이면, 단위조합들이 자회사를 인수할 수 있습니다. 단위농협이 자회사의 직접 출자자가 돼야 합니다. 둘째, 중앙회는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겁니다. 지금의 중앙회는 협회 기능만 수행하고, 지부 조직도 없애야 합니다. 신용연합회와 판매연합회를 세워 사업을 맡도록 해야 합니다. 농민→단위조합→중앙회→지주회사→자회사의 다섯단계로 돼있는 출자관계를 단위조합에서 직접 출자하는 구조로 단순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농협이 농민의 것이 됩니다. 지금처럼 복잡한 다단계 지배구조에서는 농민이 아니라 중앙회나 지주회사가 농협의 주인입니다.” “지난해 사업구조개편은
농민 열망 반영된 것도 아니고
농민 실익과도 무관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리
비즈니스 측면만 봐
협동은 온데간데없어져
지금 식이라면
영리회사와 차별성 없어
협동조합이길 포기한 것” -자회사 경영을 단위조합으로 다 넘길 수는 없잖아요? “유통이나 여행 같은 전국적 사업은 연합회에서 맡아야겠지요. 지역단위의 사료공장 같은 것을 단위조합으로 넘기라는 거지요. 지금은 그런 사업체까지도 지주회사 산하로 돼있습니다.” -세번째 과제는 무엇이지요? “농협의 신용사업은 1금융권의 은행과 2금융권의 상호금융으로 어중간하게 2원화돼 있습니다. 이것을 시대에 맞게 바로잡아야 합니다.(농협은 중앙회에서 은행사업을 하고 단위조합에서 상호금융사업을 한다) 근대화 시기에 고금리 사금융과 저금리 공금융의 간극을 메워주던 상호금융의 역할은 이제 끝났습니다. 단위조합을 가보면 어떤 사람은 비싼 이자 내고, 어떤 사람은 싼 이자 내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호금융을 떼내서 별도의 연합회를 만들자는 논의를 벌이는데, 그 길은 아닙니다. 농협의 상호금융이 은행을 흡수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신용연합회를 세우고, 거기에서 은행사업과 상호금융사업을 모두 하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농협 개혁을 수없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봉합되고 흐지부지됐습니다.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농협 지주회사체제를 만든 국회 농식품위에서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농민을 조합원이 아니라 고객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다행히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회입니다. 농협의 사업구조개편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습니다. 농민단체 지도자들도 다시 나서야 합니다.” 중앙대 교수 출신의 김 전 장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김대중 정부의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뒤,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 총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 등을 지냈으며 농업과 유기농, 환경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2008년부터 맡고 있는 환경정의 이사장 직을 2월에 그만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면 환경정의의 이사장 직을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반환경주의자가 나오지 않겠지요.”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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