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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맛을 봐야 좋은 걸 안다

등록 2013-01-10 19:22수정 2013-01-11 08:58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99%의 경제
HERI의 시선
2000년대 초 대선에서 공화당에 연패하고 ‘멘붕’에 빠진 미국 민주당원들이 탐독한 책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였다.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경제적 처지에 따라 투표하리란 것은 심각한 오해”라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나 비전(꿈)이며, 사람은 지금 처지가 어떻든 자신이 동일시하고픈 대상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덜 배우고 가난하고 나이든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산업화 이래 한국인의 유전자가 된 ‘부국강병’(성장과 안보)의 꿈을 오롯이 갈무리했다. 야권의 최강 ‘전략무기’가 될 법한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의제를 선점하거나 따라하기 전략으로 중화시켰다.

레이코프의 도식을 빌려 말하면, 민주당은 이에 맞서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의 비전을 그려 보였어야 했다. 상대편의 실정을 비판해 얻는 반사이익과 적극적 비전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그림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은 박 후보의 “중산층 70% 재건” 약속을 더 많이 기억했다.

가치와 비전을 국민의 가슴에 새기는 것은 정책 몇 개를 발굴하는 것을 넘어선다. 국민 눈높이에서 진심으로 노력할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지난 주말 <에스비에스(SBS) 스페셜>에 소개된 핀란드의 전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이 좋은 스승이다.

지난해 2월 퇴임할 때까지 12년 동안 그녀는 따뜻하고 친근한 대통령이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호텔방에서 손수 옷을 다림질해 입은 소탈함이 화제가 됐다. 선출 당시엔 그저 그랬지만, 핀란드를 청렴하고 따뜻하며 경쟁력도 높은 사회로 이끌어 물러날 때 지지도는 80%가 넘었다.

국민은 그녀를 ‘무민마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무민마마는 우리의 뽀로로만큼이나 사랑받는 국민 캐릭터인데, 케이크를 똑같이 잘라 나눠주는 공평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을 뜻한다. 구두공과 재봉사의 딸로 태어나 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에 오른 그녀 자체가 무상교육 같은 복지제도의 선물이다. 할로넨은 “복지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확언한다.

따뜻하려면 강단도 있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친기업 정책’을 요구하는 재계의 압력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국민이다. 재계 대표의 면전에서 “핀란드를 사업하기 가장 적합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저는 사업가에게 가장 좋은 게 모두에게 좋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공정하고 따뜻한 나라도 체험해봐야 안다. 민주당은 선거에 연거푸 졌지만 127석이나 가진 정당이다. 선거 국면에 공들여 만든 좋은 공약이 많다. 국민들은 야당의 핏대 못지않게 한발씩 내딛는 그들의 땀과 눈물을 볼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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