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왼쪽)과 송경용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오른쪽)은 대담에서 박근혜 정부의 사회적 경제 과제는 생태계 조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소영 기자
새 정부의 사회적경제 과제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라는 국민의 열망에 답하려면 경제운용의 틀을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앞선 여러 정부는 개혁하는 시늉만 하다가 개혁 대상인 재벌에 투자와 성장을 ‘구걸’하는 일을 반복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공동체와 같은 사회적 경제는 약자의 힘을 키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완성하는 토대가 된다. 올해 출범하는 새 정부의 사회적 경제 과제를 놓고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과 송경용 서울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 31일 대담을 했다. 두 사람은 사회적 경제의 자생력을 기르는 ‘생태계 조성’을 새 정부의 과제로 들었다.
사회적 경제는 시장에서 작동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다른 동기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제영역이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받으며,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나선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사회적 경제란 개념을 처음 전면에 내걸고 체계적 실천과제를 제시했었다.
안철수 후보는 ‘호혜와 협동의 사회적 경제’란 비전 아래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사회투자금융공사 신설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현재는 0.04%)을 유럽 수준인 4~7%로 끌어올린다는 중장기 목표도 내놓았다.
문 후보는 ‘사람중심 협동경제, 사회적 경제’를 비전으로 6개 분야 16개 공약을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해 각 부처에 흩어진 관련 정책을 통합해 추진한다는 계획도 그중 하나다.
박진도-송경용 대담
사회 박근혜 당선자는 사회적 경제와 관련해 무얼 약속했나?
박진도(이하 박) 찾아봤는데,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기업 같은 말이 공약에 없었다. 당선인이 직접 사회적기업을 언급한 것도 찾기 어렵다. 참모들은 어떨지 모르나 당선자는 이에 대한 인식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어찌됐든 참여정부가 시작한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을 계승했고, (협동조합법도 제정해) 이 분야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사회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와 사회적 경제는 어떤 관계인가?
송경용(이하 송) 사회적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안적 체제로 봐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다. 사회적 경제 영역이 커져야 정부도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정책수단을 갖게 된다. 대기업이 휩쓰는 지금 같아서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는 ‘상자’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다. 기존의 상자 안에서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비유다.
박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 대신 복지사회가 더 합당한 말이다. 복지국가는 잘못 이해하면 국가가 세금 걷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복지는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복지를 어떻게, 누가 할 것인지가 사회적 경제와 연결돼 있다.
송 국가가 공급자로서 수혜자인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적 복지로는 한계가 있다. 수혜자가 주체적으로 삶에 참여하는, 즉 참여의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회적 경제가 그런 마당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사회 사회적 경제는 태동기를 지나 확산기에 접어든 것 같다. 새 정부의 과제를 무엇으로 보나?
박 지난 두 정부가 (사회적기업의) 인건비 지원 등 좁은 범위의 지원을 했다면 새 정부는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생태계는 민간이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넓히는 것이다.
송 동의한다. 생태계 조성에는 크게 3가지 과제가 있다. 먼저 주체(인력)의 양성이다. 사회경제형 인재를 배출하는 일이다. 둘째, 100조원 규모인 공공조달 시장의 일부를 사회적 경제를 위한 ‘보호된 시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셋째, 사회적 금융기관이 나와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
“당선인 사회적경제 공약 없어
사회적기업 발언도 찾기 어려워
참모들은 어떨지 모르나
당선인은 인식 없어 보인다“ 사회 사회적 금융부터 좀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송 유럽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가 커가는데 협동조합금융의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법률적 제한 때문에 민간에서 금융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협동조합법도 민간이 공제사업이나 금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박 이왕 있는 사회적 금융인 농협과 신협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농협·신협 같은 곳이 협동조합의 탄생을 지원해야 할 텐데 오히려 경계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농협과 신협의 개혁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송 동의하지만, 지난한 일이다. 이를 기다리지 말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펀드를 만들어 민간 사회적 경제 육성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법이 뒷받침해야 한다. 사회 공공조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박 현재 정부가 목표로 하는 사회책임조달이 전체의 3%, 즉 3조원 정도 되는데, 최저가 입찰방식인데다 재무건전성 등 여러 까다로운 요소가 많아 영세기업이 경쟁에 들어가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나 지역사회 기여, 고용안정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송 정부는 공공시장을 ‘보호된 시장’으로 만들려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민간의 준비도 필요하다. (지난해 말에 결성된) ‘사회적 경제 100인 포럼’에서는 최저가 낙찰제도를 ‘최적가치’ 낙찰제도로 변경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에 참여를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회 인력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 달라. 박 지금은 사적인 이기심이나 경쟁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어 협동이나 공생의 가치를 얘기하면 “약육강식 사회에서 그게 되겠냐?”고 반문한다. 어릴 때부터 협동의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정부 지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 교육기관을 만들어 담당할 인재 육성과 일반시민 교육을 함께 해야 한다. 송 사회적 경제란 혁신적 가치라기보다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인식되어온 것 같다. 사실 우리 전통 안에 두레·향약 같은 강력한 협동의 역사가 있다. 마을이란 것이 곧 사회적 경제였다. 시간과 공간, 상징과 이야기, 노동과 삶을 공유했다. 사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구현하는 전문성을 키우는 게 교실식 수업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과정을 혁신하려 하고, 올해 우선 1년짜리 준비과정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사회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민-관의 협력체제는 어떠해야 하나? 송 민간의 독자성은 물론 중요하나 우리의 여건은 유럽과 다르다. 그래서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와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갖고 있는 법·제도·예산·의지를 활용하되, 민과 관이 동등한 입지에 있어야 한다. 박 사회적경제위원회 같은 조직은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총괄 기획이나 각 부서의 정책을 조정할 수준의 권한은 있어야 한다. 유럽도 정부가 주도하긴 했지만 사회적 경제가 뿌리내린 것은 시민사회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협치구조)를 만들 때 시민이 힘을 갖지 않으면 관변조직밖에 안 된다. 송 형편에 맞게 목표를 설정하되 가장 초보적인 것은 참여의 마당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젠 한 사람이 호루라기 분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물’(네트워크)의 시대다. 그물은 한코 한코가 다 주인이 되어야 움직인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에는 호루라기의 향수가 있다.
송경용 서울네트워크 이사장
“생태계 조성엔 3가지 과제
먼저 사회경제형 인재 배출
둘째 ‘보호된 시장’ 만들기
셋째 사회적 금융기관 나와야“ 사회 지방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나? 박 사회적 경제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영역이다. 중앙은 예산을 줄 수 있지만 서비스 제공은 전부 지역내 사회적 조직을 통해 이뤄지고, 수혜자의 참여로 완성된다. 그래서 지자체의 자립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중앙집권적인 국가다. 예산과 제도란 핵심요소 중 지자체는 조례밖에 만들 수 없고, 예산은 중앙이 다 갖고 있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송 사회적 경제는 하부 단위로 내려갈수록 성공한다고 본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해서 35개 기초단체장협의회가 2월에 발족한다. 이들도 만나보면 ‘3% 지자체’라고 자조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한다. 단체장이 자기 권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3%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박 충청남도는 가장 빠르게 지역생산(GRDP)이 성장하는 광역단체인데 이게 삼성전자, 현대제철 같은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지역민의 삶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지역 중소기업, 사회적 경제가 중심이 된 ‘내발적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싶지만 지방의 권한이 너무 없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기초단체 수준에서 성공한 모델이 나와야 한다. 송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이 분야에 관심이 약한 점이다. 유럽의 경우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운동은 분리할 수 없는데 우리는 소비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은 발전하는데 노동자협동조합과 생산자협동조합이 약하다. 균형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사회·정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매출 3천억짜리 생협도 은행거래 어려워
농협·신협, 협동조합이란 사실 존중해야 대한민국은 협동조합이라서 불리한 세상이다. 아이쿱은 연 3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대규모 생협이다. 하지만 은행 거래는 여전히 어렵다. 묘안을 짜냈다. 조합원들한테서 대출을 받자! 지난해 봄, 아이쿱의 용인생협은 사업설명회 한달 만에 5억원의 매장 설립 자금을 모았다. 1억원 정도가 조합원 출자금이었고, 4억원은 신규가입한 조합원들이 믿고 빌려준 대출금이었다. 끈질기게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이제 아이쿱의 전국 매장은 120개가 넘는다. 해피브릿지는 잘나가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국수나무와 화평동왕냉면 간판을 단 전국의 가맹점만 400개에 이른다. 알짜 기업이다. 해피브릿지는 지난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 총회를 열었다. 이달 중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 협동조합을 한다니까 거래 은행에서는 신용대출 한도의 감축을 예고했다. 스페인의 세계적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90명의 직원들이 최소 1000만원씩의 출자금 납부를 결의했다. 앞으로 각자 연봉 수준까지 조합원 출자 규모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직원들의 협동으로 자금 확보의 돌파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국에 995개 신협(신용협동조합)이 있지만 협동조합의 ‘지조’를 지키는 신협은 많지 않다. 신협의 사명은 두 가지다. 담보 없는 서민들에게 신용으로 싼 이자에 자금을 공급한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 전반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한다. 1997년 서울 금호동의 달동네 철거민들이 논골신협을 세웠다. 처음에는 거액의 설립 출자금을 모으기가 불가능한 꿈인 듯했다. 하지만 날마다 1000원짜리를 모으고 또 모았다. 3년 만에 3억원을 마련했다. 논골신협은 이웃한 생협과 신설 협동조합들에 자금을 공급하려고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막는다. 신협법상 조합원 이외의 법인대출은 불가능하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도 가로막는 세상이다. 협동조합 기업들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장만능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초국적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대한민국이기에 그럴 만하다. 두사람 동업도 못한다는 고정관념도 회의를 낳는다. 협동조합기본법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지만, 수많은 법제도와 관행은 협동조합이 사업하기에 불리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아이쿱생협도 해피브릿지도 논골신협도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았다. 절박한 사람들의 절박한 협동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만들어나가고 있다. 일상에서 또 학교에서 협동의 문화를 심는 일부터 시작하자. 사과를 만져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사과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교과서에서 협동조합을 가르치고 생활경제에서 협동이라는 ‘사과’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머릿속에 협동조합 기업이 하나의 선택지로 새겨질 수 있도록, 협동조합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자. 안정적인 자금조달 길을 확보하는 일은 절실한 과제다. 캐나다 퀘벡의 협동조합 생태계에서도 데자르댕신협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금융당국은 농협과 신협이 금융이면서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욕먹고 있는 농협은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편리할 때만 협동조합을 외쳐서는 곤란하다. 다수의 신협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에 충실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고 싶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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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
“당선인 사회적경제 공약 없어
사회적기업 발언도 찾기 어려워
참모들은 어떨지 모르나
당선인은 인식 없어 보인다“ 사회 사회적 금융부터 좀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송 유럽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가 커가는데 협동조합금융의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법률적 제한 때문에 민간에서 금융업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협동조합법도 민간이 공제사업이나 금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박 이왕 있는 사회적 금융인 농협과 신협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농협·신협 같은 곳이 협동조합의 탄생을 지원해야 할 텐데 오히려 경계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 사이의 협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농협과 신협의 개혁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송 동의하지만, 지난한 일이다. 이를 기다리지 말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펀드를 만들어 민간 사회적 경제 육성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법이 뒷받침해야 한다. 사회 공공조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박 현재 정부가 목표로 하는 사회책임조달이 전체의 3%, 즉 3조원 정도 되는데, 최저가 입찰방식인데다 재무건전성 등 여러 까다로운 요소가 많아 영세기업이 경쟁에 들어가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나 지역사회 기여, 고용안정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송 정부는 공공시장을 ‘보호된 시장’으로 만들려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민간의 준비도 필요하다. (지난해 말에 결성된) ‘사회적 경제 100인 포럼’에서는 최저가 낙찰제도를 ‘최적가치’ 낙찰제도로 변경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에 참여를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회 인력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 달라. 박 지금은 사적인 이기심이나 경쟁이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어 협동이나 공생의 가치를 얘기하면 “약육강식 사회에서 그게 되겠냐?”고 반문한다. 어릴 때부터 협동의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정부 지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 교육기관을 만들어 담당할 인재 육성과 일반시민 교육을 함께 해야 한다. 송 사회적 경제란 혁신적 가치라기보다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인식되어온 것 같다. 사실 우리 전통 안에 두레·향약 같은 강력한 협동의 역사가 있다. 마을이란 것이 곧 사회적 경제였다. 시간과 공간, 상징과 이야기, 노동과 삶을 공유했다. 사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구현하는 전문성을 키우는 게 교실식 수업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과정을 혁신하려 하고, 올해 우선 1년짜리 준비과정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사회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민-관의 협력체제는 어떠해야 하나? 송 민간의 독자성은 물론 중요하나 우리의 여건은 유럽과 다르다. 그래서 정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와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갖고 있는 법·제도·예산·의지를 활용하되, 민과 관이 동등한 입지에 있어야 한다. 박 사회적경제위원회 같은 조직은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총괄 기획이나 각 부서의 정책을 조정할 수준의 권한은 있어야 한다. 유럽도 정부가 주도하긴 했지만 사회적 경제가 뿌리내린 것은 시민사회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협치구조)를 만들 때 시민이 힘을 갖지 않으면 관변조직밖에 안 된다. 송 형편에 맞게 목표를 설정하되 가장 초보적인 것은 참여의 마당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젠 한 사람이 호루라기 분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물’(네트워크)의 시대다. 그물은 한코 한코가 다 주인이 되어야 움직인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에는 호루라기의 향수가 있다.
송경용 서울네트워크 이사장
“생태계 조성엔 3가지 과제
먼저 사회경제형 인재 배출
둘째 ‘보호된 시장’ 만들기
셋째 사회적 금융기관 나와야“ 사회 지방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나? 박 사회적 경제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영역이다. 중앙은 예산을 줄 수 있지만 서비스 제공은 전부 지역내 사회적 조직을 통해 이뤄지고, 수혜자의 참여로 완성된다. 그래서 지자체의 자립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중앙집권적인 국가다. 예산과 제도란 핵심요소 중 지자체는 조례밖에 만들 수 없고, 예산은 중앙이 다 갖고 있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송 사회적 경제는 하부 단위로 내려갈수록 성공한다고 본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해서 35개 기초단체장협의회가 2월에 발족한다. 이들도 만나보면 ‘3% 지자체’라고 자조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한다. 단체장이 자기 권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3%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박 충청남도는 가장 빠르게 지역생산(GRDP)이 성장하는 광역단체인데 이게 삼성전자, 현대제철 같은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지역민의 삶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지역 중소기업, 사회적 경제가 중심이 된 ‘내발적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싶지만 지방의 권한이 너무 없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기초단체 수준에서 성공한 모델이 나와야 한다. 송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이 분야에 관심이 약한 점이다. 유럽의 경우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운동은 분리할 수 없는데 우리는 소비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은 발전하는데 노동자협동조합과 생산자협동조합이 약하다. 균형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사회·정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매출 3천억짜리 생협도 은행거래 어려워
농협·신협, 협동조합이란 사실 존중해야 대한민국은 협동조합이라서 불리한 세상이다. 아이쿱은 연 3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대규모 생협이다. 하지만 은행 거래는 여전히 어렵다. 묘안을 짜냈다. 조합원들한테서 대출을 받자! 지난해 봄, 아이쿱의 용인생협은 사업설명회 한달 만에 5억원의 매장 설립 자금을 모았다. 1억원 정도가 조합원 출자금이었고, 4억원은 신규가입한 조합원들이 믿고 빌려준 대출금이었다. 끈질기게 신뢰를 쌓은 덕분이다. 이제 아이쿱의 전국 매장은 120개가 넘는다. 해피브릿지는 잘나가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국수나무와 화평동왕냉면 간판을 단 전국의 가맹점만 400개에 이른다. 알짜 기업이다. 해피브릿지는 지난 연말에 주식회사 해산 총회를 열었다. 이달 중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 협동조합을 한다니까 거래 은행에서는 신용대출 한도의 감축을 예고했다. 스페인의 세계적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90명의 직원들이 최소 1000만원씩의 출자금 납부를 결의했다. 앞으로 각자 연봉 수준까지 조합원 출자 규모를 끌어올릴 예정이다. 직원들의 협동으로 자금 확보의 돌파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국에 995개 신협(신용협동조합)이 있지만 협동조합의 ‘지조’를 지키는 신협은 많지 않다. 신협의 사명은 두 가지다. 담보 없는 서민들에게 신용으로 싼 이자에 자금을 공급한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 전반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한다. 1997년 서울 금호동의 달동네 철거민들이 논골신협을 세웠다. 처음에는 거액의 설립 출자금을 모으기가 불가능한 꿈인 듯했다. 하지만 날마다 1000원짜리를 모으고 또 모았다. 3년 만에 3억원을 마련했다. 논골신협은 이웃한 생협과 신설 협동조합들에 자금을 공급하려고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막는다. 신협법상 조합원 이외의 법인대출은 불가능하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도 가로막는 세상이다. 협동조합 기업들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장만능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초국적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대한민국이기에 그럴 만하다. 두사람 동업도 못한다는 고정관념도 회의를 낳는다. 협동조합기본법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지만, 수많은 법제도와 관행은 협동조합이 사업하기에 불리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아이쿱생협도 해피브릿지도 논골신협도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았다. 절박한 사람들의 절박한 협동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만들어나가고 있다. 일상에서 또 학교에서 협동의 문화를 심는 일부터 시작하자. 사과를 만져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사과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교과서에서 협동조합을 가르치고 생활경제에서 협동이라는 ‘사과’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머릿속에 협동조합 기업이 하나의 선택지로 새겨질 수 있도록, 협동조합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자. 안정적인 자금조달 길을 확보하는 일은 절실한 과제다. 캐나다 퀘벡의 협동조합 생태계에서도 데자르댕신협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금융당국은 농협과 신협이 금융이면서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욕먹고 있는 농협은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편리할 때만 협동조합을 외쳐서는 곤란하다. 다수의 신협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에 충실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고 싶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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