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근 변호사(왼쪽·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와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번 대선의 공약과 차기정부의 과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숨가빴던 대선 레이스’ 긴급대담
19일은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선거일을 맞아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나온 후보들의 주요 정책을 최종 검증하고, 새 정부의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에 나온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변호사)과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한겨레>의 ‘눈높이 정책검증’ 시리즈에 참석했다. 정책전문가의 당위적 이야기가 아닌 민심의 흐름 속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정치에 수렴됐는지, 과거와 견줘 이번 대선은 어떤 점에서 진일보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지난 17일 오전 사회정책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대담은 대선 전반 평가, 정치쇄신, 경제민주화, 복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날 진행은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았다.
기획 :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 정치쇄신 사회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었다. 안철수 전 후보는 새정치라고 하는 정치쇄신 화두를 던졌지만, 실제 본인의 강점은 민생의 요구를 정치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막상 후보로 나온 뒤 민생을 위한 의제 제기에는 약했던 것 같다. 김남근 안 전 후보의 순수한 목소리가 민생을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안 전 후보는 민생의 목소리, 민생정치를 주된 아이템으로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새정치, 혁신 정치 등 새로운 것에 대한 이미지화를 중심으로 초점을 둔 것이 아쉽다. 오건호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효과를 분리해 봐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정치와 시대 교체를 대변한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좀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면 국민 반응이 폭발했을 것이다. 김남근 구체적인 제도 개혁은 안철수 전 후보의 역할이 아니었다고 본다. 안철수 현상은 여야 정당의 차이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양극화 등 민생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가 안 보이고, 진보정당은 내부 정책에만 몰입해 정치적으로 승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정치개혁을 보여주는 것이 안철수의 역할이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면 지지자들 간의 과열은 더 격화됐을 것이고, 민주통합당과 갈등도 더했을 수 있다. 오건호 안철수 전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의 정책들을 정치적으로 프로그램화하지 못했다. 증세는 정치권의 금기였다. 야당 역시 증세를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증세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정치권의 성역을 깨뜨려 공론의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양극화 등 민생문제 실마리 안보여
경제민주화 ‘이미지 경쟁’으로 흘러
박근혜, 성장 말하다 복지공약 가세
야당은 ‘보편적 복지’ 차별화에 한계 사회 이번 대선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제구실을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남근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는 진보정치를 확장할 수 있는 이슈였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내부정치에 몰입해 이 부분을 대변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심상정·노회찬 같은 정치인들이 민생현장을 뛰어다니며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올해는 그런 정치인이 부재했다. 오건호 기존 정당이 불신을 받다 보니, 대선 때마다 제3세력을 통한 변화의 열망이 컸다. 2002년까지는 보수적 성향의 제3세력이 나왔다면, 2004년부터는 진보적 성향의 세력이 나왔다. 민주노동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력은 작지만 의제는 미래지향적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역할이 필요하다. ■ 경제민주화 사회 경제민주화로 논의를 이어가자.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았음에도 정작 국민과 유리돼 진행된 것은 아닌가? 김남근 국민들은 여야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경제민주화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레토릭과 이미지만 난무했다. 광범위한 중소상인 업종에서 생존권 문제들이 나왔지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30% 이상 문을 닫는 문구점,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프랜차이즈들의 생존권이 경제민주화의 공약으로 대변돼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실장
안철수, 정치권 금기였던 증세 언급
공론의 장으로 이끄는 역할은 못해
TV토론서 ‘의료비 상한제’ 등 부각
복지정책 재원 확보 방안은 불투명 오건호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를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핵심 키워드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재벌 문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권리를 높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좀더 구체적인 키워드를 갖고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김남근 경제민주화는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쟁점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양극화에 따른 생존의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목소리, 동네상권에 대한 목소리,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목소리도 담겨야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에 경제가 집중되면서 대기업의 큰 담합문제가 있었다. 엘피지(LPG) 담합이라든가 시디(CD)금리 담합,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오니까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오건호 국민들은 경제민주화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됐다. 이해 당사자들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컨대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을 세력화해 이슈를 만들어 나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보건복지
사회 무상급식 어젠다에서 시작된 복지 논의, 왜 대선에서는 핵심 의제가 되지 못했나?
오건호 복지 이슈는 경제민주화보다 더 의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선주자의 텔레비전 토론회 때문에 4대 중증질환과 의료비 상한제 이슈만이 조금의 관심을 끌었다. 박근혜 후보마저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 복지정책 논의는 재원 확보 방안으로 관심이 모였다. 여권은 물론 야권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증세장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대선공간이 열렸을 때 추진했어야 했다.
김남근 박근혜 후보가 성장을 얘기하다가 복지를 받아들이면서 복지 이슈에 야당이 차별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논쟁해야 하는데 야당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민주당은 3무1반(무상보육·무상급식·무상의료·반값등록금)을 얘기했지만, 이를 뛰어넘는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오건호 부자증세를 더 공론화시키기 위해선 보편적 증세가 필요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온다. 민심의 변화가 있다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올리는 대신 병원비를 해결하자고 선제적으로 나섰으면 어땠을까 싶다.
김남근 보편적 증세에는 반대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증세 논란은 유럽 국가처럼 복지가 실현되고 있을 때 이슈가 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지가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의료비 상한제 논의가 무성하지만 하나도 실현되지 않은 것들이다. 국민이 복지를 체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복지가 귀중한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느껴야 보편적 증세가 지지를 받는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정치권, 선거전략 부재 민심 제대로 수렴 못해” 대선 레이스 평가 ‘현장 서민 대중과의 소통 부족, 전략 기획의 부재, 시민사회 활동의 부진’ 김남근 본부장과 오건호 실장이 이날 대담에서 밝힌 올해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이다. 대선 공간에서 삶의 위기에 봉착한 시민들의 절박함을 정치가 제대로 포착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김 본부장은 “대선 과정에서는 동네상권, 프랜차이즈 가맹점 불공정 약관, 정리해고, 하도급 불공정, 철탑농성 등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민생에 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와 민생 문제를 한가닥 풀어나가는 대선이 되기를 기대했다”며 “하지만 정책은 공약집에서만 존재해 정치권이 현장 서민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하는 데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오 실장도 “올해 대선은 1987년 때처럼 아래 민심이 분출하는 상황이어서 정치에서 이를 잘 수렴하면 2013년에는 새로운 체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향한 민심을 정치권에서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두 토론자는 전략기획의 부재를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오 실장은 “반값등록금은 전략적 기획의 결과가 아니라 학생들의 분출을 정치권에서 떠안은 것이었다”며 “여야는 4대 중증질환, 의료비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 등 국민이 가장 밀접하게 느끼는 병원비를 놓고 전선을 만들고 세련된 정책을 내놓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여당에 불편한 의제로, 여당은 이런 이슈를 논점으로 만들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며 “반면 야당은 두 사안에서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성찰하고 되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도 “후보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보여주는 데서 더 나아가 이슈를 만들어 각을 세워야 하는데 선거 전략이 부재하다 보니 그런 점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며 “예컨대 의료 부문에서도 국민들은 두 후보의 구체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가 3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두 후보의 의료정책에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시민사회 활동의 부진에 관한 비판도 나왔다. 오 실장은 “정치권을 비판해야 할 시민사회 세력이 정치 개편 과정에서 정당세력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민사회단체가 무주공산이 됐다”며 “정치권이 개혁에 소극적일 때 시민사회단체가 압박하고 검증하면서 개입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앞으로 정치권을 감시하고 비판할 세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비례대표 확대…비정규직 해소…취약계층 복지 강화” 차기정부 최우선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행된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차기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두 토론자는 정책집행의 우선순위를 이른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오건호 실장은 “이미 두 후보의 공약은 다 나왔지만 공약의 우선순위 배열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정치쇄신, 경제민주화, 복지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찾아 공약 이행을 위한 로드맵과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쇄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확대를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경제민주화에선 비정규직 등 불완전 노동자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만들어 나가며, 복지 분야에선 취약계층과 어르신, 장애인을 위한 병원비 해결과 이들을 위한 복지 강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제 우선순위는 국민과 소통하면서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국민들의 지지가 많은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남근 본부장은 “정치개혁에 있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이해만 대변하다 보니 전문가가 필요해 비례대표를 많이 늘리자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고, 경제민주화에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가장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은 출자총액제한제 개선도 중요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약관을 먼저 개선해주길 원한다”며 “동네상권, 비정규직, 노동시간 단축 등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것들을 먼저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개혁은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회적 합의가 상당히 이뤄진 정책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개혁을 놓고 논쟁으로 흐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 의지는 높았으나 개혁안을 논쟁에 부쳐 끝내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은 “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여소야대로 제대로 개혁을 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하지만 법을 고치지 않고 행정 개혁만으로도 많은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는 법적인 문제보다 정부의 의지가 더 크다”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근로감독관제 개선 등 행정 혁신을 통해 상당한 개혁을 이뤄낸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의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에서 제도를 마련해 1년 안에 진척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각에서 불고 있는 경제위기설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 본부장은 “벌써부터 경제위기론이 대두되면 경제민주화는 상당히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원인은 사회 양극화로, 경제민주화를 통해 내수경제를 키워야 양극화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 정치쇄신 사회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었다. 안철수 전 후보는 새정치라고 하는 정치쇄신 화두를 던졌지만, 실제 본인의 강점은 민생의 요구를 정치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막상 후보로 나온 뒤 민생을 위한 의제 제기에는 약했던 것 같다. 김남근 안 전 후보의 순수한 목소리가 민생을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안 전 후보는 민생의 목소리, 민생정치를 주된 아이템으로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새정치, 혁신 정치 등 새로운 것에 대한 이미지화를 중심으로 초점을 둔 것이 아쉽다. 오건호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효과를 분리해 봐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정치와 시대 교체를 대변한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좀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면 국민 반응이 폭발했을 것이다. 김남근 구체적인 제도 개혁은 안철수 전 후보의 역할이 아니었다고 본다. 안철수 현상은 여야 정당의 차이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양극화 등 민생 문제는 해결될 실마리가 안 보이고, 진보정당은 내부 정책에만 몰입해 정치적으로 승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정치개혁을 보여주는 것이 안철수의 역할이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면 지지자들 간의 과열은 더 격화됐을 것이고, 민주통합당과 갈등도 더했을 수 있다. 오건호 안철수 전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의 정책들을 정치적으로 프로그램화하지 못했다. 증세는 정치권의 금기였다. 야당 역시 증세를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증세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정치권의 성역을 깨뜨려 공론의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양극화 등 민생문제 실마리 안보여
경제민주화 ‘이미지 경쟁’으로 흘러
박근혜, 성장 말하다 복지공약 가세
야당은 ‘보편적 복지’ 차별화에 한계 사회 이번 대선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제구실을 못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남근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는 진보정치를 확장할 수 있는 이슈였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내부정치에 몰입해 이 부분을 대변하지 못했다. 과거에는 심상정·노회찬 같은 정치인들이 민생현장을 뛰어다니며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올해는 그런 정치인이 부재했다. 오건호 기존 정당이 불신을 받다 보니, 대선 때마다 제3세력을 통한 변화의 열망이 컸다. 2002년까지는 보수적 성향의 제3세력이 나왔다면, 2004년부터는 진보적 성향의 세력이 나왔다. 민주노동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력은 작지만 의제는 미래지향적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역할이 필요하다. ■ 경제민주화 사회 경제민주화로 논의를 이어가자.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았음에도 정작 국민과 유리돼 진행된 것은 아닌가? 김남근 국민들은 여야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경제민주화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레토릭과 이미지만 난무했다. 광범위한 중소상인 업종에서 생존권 문제들이 나왔지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30% 이상 문을 닫는 문구점,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프랜차이즈들의 생존권이 경제민주화의 공약으로 대변돼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실장
안철수, 정치권 금기였던 증세 언급
공론의 장으로 이끄는 역할은 못해
TV토론서 ‘의료비 상한제’ 등 부각
복지정책 재원 확보 방안은 불투명 오건호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를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핵심 키워드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재벌 문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권리를 높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좀더 구체적인 키워드를 갖고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김남근 경제민주화는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쟁점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양극화에 따른 생존의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목소리, 동네상권에 대한 목소리,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목소리도 담겨야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에 경제가 집중되면서 대기업의 큰 담합문제가 있었다. 엘피지(LPG) 담합이라든가 시디(CD)금리 담합, 이런 것들이 계속 나오니까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오건호 국민들은 경제민주화가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됐다. 이해 당사자들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컨대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사람을 세력화해 이슈를 만들어 나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정치권, 선거전략 부재 민심 제대로 수렴 못해” 대선 레이스 평가 ‘현장 서민 대중과의 소통 부족, 전략 기획의 부재, 시민사회 활동의 부진’ 김남근 본부장과 오건호 실장이 이날 대담에서 밝힌 올해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이다. 대선 공간에서 삶의 위기에 봉착한 시민들의 절박함을 정치가 제대로 포착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김 본부장은 “대선 과정에서는 동네상권, 프랜차이즈 가맹점 불공정 약관, 정리해고, 하도급 불공정, 철탑농성 등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민생에 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와 민생 문제를 한가닥 풀어나가는 대선이 되기를 기대했다”며 “하지만 정책은 공약집에서만 존재해 정치권이 현장 서민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하는 데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오 실장도 “올해 대선은 1987년 때처럼 아래 민심이 분출하는 상황이어서 정치에서 이를 잘 수렴하면 2013년에는 새로운 체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향한 민심을 정치권에서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두 토론자는 전략기획의 부재를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오 실장은 “반값등록금은 전략적 기획의 결과가 아니라 학생들의 분출을 정치권에서 떠안은 것이었다”며 “여야는 4대 중증질환, 의료비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 등 국민이 가장 밀접하게 느끼는 병원비를 놓고 전선을 만들고 세련된 정책을 내놓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여당에 불편한 의제로, 여당은 이런 이슈를 논점으로 만들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며 “반면 야당은 두 사안에서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성찰하고 되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도 “후보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보여주는 데서 더 나아가 이슈를 만들어 각을 세워야 하는데 선거 전략이 부재하다 보니 그런 점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며 “예컨대 의료 부문에서도 국민들은 두 후보의 구체적인 차이를 느끼지 못하다가 3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두 후보의 의료정책에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시민사회 활동의 부진에 관한 비판도 나왔다. 오 실장은 “정치권을 비판해야 할 시민사회 세력이 정치 개편 과정에서 정당세력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민사회단체가 무주공산이 됐다”며 “정치권이 개혁에 소극적일 때 시민사회단체가 압박하고 검증하면서 개입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앞으로 정치권을 감시하고 비판할 세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비례대표 확대…비정규직 해소…취약계층 복지 강화” 차기정부 최우선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행된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차기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두 토론자는 정책집행의 우선순위를 이른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오건호 실장은 “이미 두 후보의 공약은 다 나왔지만 공약의 우선순위 배열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며 “정치쇄신, 경제민주화, 복지 분야에서 우선순위를 찾아 공약 이행을 위한 로드맵과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쇄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확대를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경제민주화에선 비정규직 등 불완전 노동자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만들어 나가며, 복지 분야에선 취약계층과 어르신, 장애인을 위한 병원비 해결과 이들을 위한 복지 강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제 우선순위는 국민과 소통하면서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국민들의 지지가 많은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남근 본부장은 “정치개혁에 있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이해만 대변하다 보니 전문가가 필요해 비례대표를 많이 늘리자고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고, 경제민주화에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가장 빨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은 출자총액제한제 개선도 중요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약관을 먼저 개선해주길 원한다”며 “동네상권, 비정규직, 노동시간 단축 등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것들을 먼저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개혁은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회적 합의가 상당히 이뤄진 정책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개혁을 놓고 논쟁으로 흐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 의지는 높았으나 개혁안을 논쟁에 부쳐 끝내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은 “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여소야대로 제대로 개혁을 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하지만 법을 고치지 않고 행정 개혁만으로도 많은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는 법적인 문제보다 정부의 의지가 더 크다”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근로감독관제 개선 등 행정 혁신을 통해 상당한 개혁을 이뤄낸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의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에서 제도를 마련해 1년 안에 진척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각에서 불고 있는 경제위기설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 본부장은 “벌써부터 경제위기론이 대두되면 경제민주화는 상당히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원인은 사회 양극화로, 경제민주화를 통해 내수경제를 키워야 양극화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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