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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LIG는 부실 숨기고 증권사는 “사라”…‘서민 쌈짓돈’ 긁어냈다

등록 2012-10-17 20:46수정 2012-10-17 21:31

[뉴스쏙] 건설사의 ‘사기성 어음’ 피해자들 고통
엘아이지(LIG)그룹 계열 엘아이지건설의 기업어음(CP)에 투자했다가 대거 손실을 입은 개인 투자자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원금을 보장해준다는 증권사 쪽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은 이들의 숫자가 700명을 웃돌고, 투자액은 13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중에 검찰이 엘아이지그룹 대주주 일가들에 대한 본격 조사에 나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서 “채권보다 안전” 권유
퇴직금 등 수천만~수억원 투자
갑작스런 법정관리로 모두 날려

피해자들 “알고 보니 고의적 부도”
회사, 재무상태 위태롭자 어음발행
그룹 피해 줄이고 법정관리 의혹

18개월간 시위·소송한 사람들에
돌아온건 “고금리 탐욕냈다” 냉소
검찰도 고발 15개월만에 수사나서

“엘아이지(LIG)건설 기업어음(CP)을 사서 투자금을 날린 것이 우리의 탐욕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투자한 죄밖에 없습니다. 탐욕스러운 것은 서민들의 쌈지돈을 이용해 그룹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기업어음을 사기 발행해 휴지조각으로 만든 엘아이지그룹입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만난 엘아이지건설 기업어음 피해자들은 부도가 난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그룹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엘아이지그룹 구자원(77) 회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위해 이날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모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윤석열)는 엘아이지그룹의 기업어음 부당발행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엘아이지건설 기업어음에 대한 투자 하한선은 5000만원 선이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전세보증금, 결혼 자금으로 쓰려고 모아놓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거금을 하루 아침에 허공에 날렸다. 엘아이지건설의 기업어음 발행잔액은 1836억원이고 이 가운데 개인 투자자 707명이 구입한 어음은 1300억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의 사연은 절절했다. 고승희(61·가명)씨는 직장을 다니는 아들 2명이 준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10년간 아껴모아 만든 5000만원을 2010년 3월 엘아이지건설 기업어음에 투자했다. 채권처럼 안전하다고 설명한 증권사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엘아이지건설 법정관리로 원금을 한푼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충격을 받아 뇌경색에 빠져 1년간 병원 신세를 졌고 지금도 몸의 일부가 불편하다고 했다.

남정은(41·가명)씨는 경기 용인의 아파트를 팔고 전세를 얻어 손에 쥔 차액 5000만원을 남편 명의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놓았다가 증권사 권유로 엘아이지건설 기업어음에 투자했다. 투자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원금을 찾을 수 없어 전세금을 수천만원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빼줘야 할 처지다. 자신보다 남편이 마음고생 탓에 수면제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울먹였다.

금융인 출신 최두선(66·가명)씨는 퇴직금 일부인 1억원을 투자했다. 전직 금융인이 원금까지 날리냐는 주변의 입길이 두려워 부인은 물론 지인들에게 최근 일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해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런 애절한 사연 수백개가 이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엘아이지건설 시피 피해자모임’ 게시판에 빼곡하다.

이 카페는 2011년 3월21일 엘아이지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직후 생겼다. 카페가 생기면서 전국 각지에서 피해자 100여명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지금까지 18개월 동안 엘아이지손해보험 본사, 기업어음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 여의도 본사와 금융감독원 앞에서 번갈아가면서 시위를 해왔다.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1인시위를 벌이는 피해자도 있다.

처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냉소뿐이었다. 기업어음은 원금을 날릴 경우 투자가들이 책임지는 특정금전신탁 상품인 것을 몰랐냐는 원칙론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7%라는 고금리 상품에 투자한 투자가의 탐욕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금융감독원 쪽도 “이러시면 다친다”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금감원 말처럼 ‘있는 사람과 소송하면 다친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을 알면서도 이들은 결국 민사와 형사소송을 시작했다.

애초 피해자들의 분노는 자신들에게 위험한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에 집중돼 있었다. 실제 피해자들은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서 4건 가운데 3건을 1심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7월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우리투자증권이 기업어음 매수를 권유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으며 엘아이지그룹의 지원 가능성 등에 대해 왜곡된 설명을 했다”며 60%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내 사건의 핵심이 증권사의 판매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2억원을 투자한 전성원(50·가명)씨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3월10일 발행된 엘아이지건설 시피를 각각 100억원어치를 샀다”며 “기관투자가들도 속았다면 부당 판매한 증권사도 나쁘지만 회사의 부실 자체를 속인 엘아이지그룹쪽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도 2011년 6월 자신들을 속였다며 엘아이지그룹 대주주와 엘아이지건설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형사고발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엘아이지그룹이 엘아이지건설의 부실이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이미 2010년부터 엘아이지건설의 법정관리를 기획했다고 주장한다. 엘아이지건설이 이미 2010년 단기차입금 1800억원, 총차입금 4242억원이어서 통상적인 건설 사업만으로 이 회사의 재무상태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후 엘아이지그룹은 엘아이지건설에 2010년 9월부터 기업어음 발행을 집중시키고 조달한 자금으로 그룹의 피해를 최소화시킨 뒤 일정 시점에 엘아이지건설을 고의부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증권선물위원회 고발 시점인 올해 2월말부터 법정관리 신청 이전까지 발행한 기업어음 242억원보다는 2010년 9월부터 발행된 기업어음 1800억원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두선씨는 “엘아이지건설 법정관리로 엘아이지그룹이 경영난에 빠지고 대주주에게 막대한 손해가 갔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망해도 대주주의 재산은 보호되고 경영권도 유지되는데 애꿎은 우리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6년 개정된 기업도산법은 횡령, 배임 등 중대한 위법이 없으면 경영권을 보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엘아이지그룹을 사기 혐의로 지난해 6월 검찰에 고발했고 증선위도 같은 해 8월에 고발했지만 1년3개월을 넘긴 올 9월에야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다며 검찰의 늦장 수사를 지적했다. 한 피해자는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이슈가 되니까 검찰이 이제야 수사에 나선 것 같다”며 “우리가 처음 모여 시위에 나섰던 지난해 진작 수사에 착수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엘아이지건설 쪽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고발한 242억원의 기업어음은 모두 변제했다”며 “나머지 투자가들은 회생 절차가 개시돼 향후 10년 내 투자액의 30%를 현금으로 10년간 균등분할 변제받으며 현금 20%는 출자전환되고 나머지 50%는 회사채로 갈음된다”고 말했다. 또 엘아이지그룹 쪽은 “기업어음 발행은 엘아이지건설이 결정한 것이며 엘아이지그룹은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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