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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오늘도 포털은 당신의 개인정보를 경찰에 넘긴다

등록 2012-10-08 20:08수정 2012-10-09 08:31

뉴스쏙│영장없이 개인정보 수집 가능한 나라
1만6천건 개인정보, 오늘도 포털서 경찰 손으로 넘어가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 논란 계속
수사기관 요청땐 ‘응할수 있다’ 의거
통신사업자들 고객자료 마구 넘겨
당사자에겐 사후 통보조차도 안해
법원·헌재도 논리 다르지만 “적법”

‘회피연아 동영상’ 피소뒤 손배소송
유인촌 피한듯한 사진 올린 누리꾼
인적사항 넘겨준 네이버 상대 소송
1심 “위법 아냐” 패소, 18일 항소심
법학자들 “위헌·영장주의 침해 소지”

인터넷 포털 등 통신사업자들이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가입자 전화번호 수는 한해 580만여건에 이른다. 이런 정보 제공은 전기통신사업법(83조3항)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조항을 두고는 헌법상 영장주의를 배제해 위헌이라는 논란이 제기됐지만,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 사건 관련 소송도 이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다.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지난 8월23일 헌재의 또다른 중요 결정은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이날 헌법상 ‘영장주의’를 침해해 위헌 논란을 일으켜 온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의 ‘통신자료제공’은 헌법소원에서 각하됐다. 이 조항은 수사당국 요청에 따라 포털 등 통신사업자들이 가입자들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헌재는 이 조항이 위헌 여부 판단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강제성을 띠지 않는 조항이라 통신사업자들이 꼭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조항에 따라 한해 무려 580만건을 웃도는 인터넷 가입자들의 전화번호가 수사당국에 넘어가고 있다. 한 가입자 정보를 이 법률에 따라 경찰에 넘겨준, 인터넷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엔에이치엔(NHN)은 해당 가입자와 2년 반을 넘기며 민사소송을 치르고 있다. 바로 2년 반 전 누리꾼들에게 웃음과 분노를 연이어 안겨준 ‘회피 연아 동영상’ 사건이다.

차아무개(32)씨는 2010년 3월초, 인터넷에서 ‘회피 연아’ 사진을 구해 영어학원 수강생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 유머게시판에 올렸다. ‘회피 연아’ 사진은 2010년 3월2일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선수단을 환영하러 나가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어깨를 두드리자, 김 선수가 이를 순간적으로 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사진이다.

차씨는 며칠 뒤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유 장관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는 설명이었다. 차씨는 자신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고,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네이버 쪽으로부터 인적사항을 넘겨받았다는 답을 들었다. 차씨는 당시 편집사진 제작·유포 혐의로 수사받은 누리꾼 8명 중 한명이었다.

실제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당시 54조3항)에서는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수사기관이 수사 등을 위해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해지 일자 등 6개 정보를 요청하면 이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은 결국 유 장관이 다음달 고소를 취하해 종결됐지만, 차씨는 2010년 7월 본인 동의 없이 약관을 위반해 인적사항을 제공했다며 엔에이치엔을 상대로 2000만100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재판장 이은애)는 “관계 법령에 따라 개인정보를 제공한 것을 개인정보보호의무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인터넷 사업자의 개인정보보호 의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 법령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며 “서울종로경찰서장으로부터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가 포함된 통신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받아 법령과 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인적사항을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적법한 요구를 법령에 따라 이행했을 뿐이란 것이다.

법원의 이런 결정은 헌재가 같은 조항 헌법소원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린 것과 논리적으로 배치된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용자 통신자료를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지 어떠한 의무도 부과하고 있지 않다”며 “이 사건 법률조항만으로 이용자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을 두고 법원은 사실상 강제조항이라고, 헌재는 강제성이 없는 조항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정반대 법논리이건만, ‘엔에이치엔과 같은 인터넷 사업자에는 책임이 없고 이용자의 주장이 틀렸다’는 같은 결론에 이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수사기관 등에 자신의 신상정보가 제공되는 경우는 비단 차씨에게만 해당하는 일만이 아니다. 매해 통신자료 제공 문서건수는 그 규모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2009년 56만1467건, 2010년 59만1049건, 2011년 65만1185건에 이른다. 지난해 전국 모든 법원의 모든 영장 발부 건수(28만1944건)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문서 한건당 포함한 전화번호 수는 8~12개로, 2009년 687만9744개, 2010년 714만4792개, 2011년 584만8991개의 개인 전화번호가 수사당국으로 넘어갔다. 통신자료 제공이 사실상 강제수사 수단이지만 별다른 통제장치 없이 수사기관이 이를 남용하기 때문이다.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심지어 조사 결과 혐의가 없어도 당사자에게 통보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사전에 법원 허가를 받고, 중간 또는 사후에 당사자에게 처리 결과를 통보해야 하는 압수수색이나 금융거래내역·통신내역 조회 등에 견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일시와 시간, 상대방 전화번호 등의 ‘통신사실확인자료’나 통화 내용, 전자우편 내용 등의 ‘통신제한조치’를 요청할 때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공소제기나 입건을 하지 않을 땐 30일 안에 통신관련 자료를 제공받은 사실 등을 당사자에게 문서로 통보해야 한다. 이러한 사전·사후 조처가 개인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통신자료 제공에서는 모두 빠져 있는 것이다.

현직 판사(서울중앙지법 오기두 부장판사)가 “전기통신사업법은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것처럼 되어 있고 그간 그렇게 운영돼 왔다.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보주체가 아니면서도 통신자료를 제출하고 사후통지 규정도 없어 위헌법률이라는 도전을 받기에 충분하다”(한국형사소송법학회 발표문)고 밝힐 정도다. 학계에서도 꾸준히 비판해온 조항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2009년 9월 <헌법학연구>에 수록된 논문 ‘인터넷 실명제의 위헌성’에서 통신자료 제공의 위헌성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박 교수는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현 83조)상의 요청을 하게 되면 영장이나 일체의 법원허가가 사전·사후적으로 전혀 없어도 포털 측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영장주의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위헌적이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활용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도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차씨 변호를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구는 강제성 없는 요청에 불과하므로 결정권은 통신사업자한테 있다”며 “가입할 때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다하겠다고 한 가입자와의 약속을 네이버 쪽이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편의적으로 관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엔에이치엔 쪽은 “법에 명시되어 있고 형식요건을 만족했기 때문에 통신자료를 제공했다”며 “통신자료 제공에 있어서 2심 판결을 참고하겠다”고 해명할 뿐이다.

이는 네이버만의 문제도 아니다. 또다른 포털인 ‘다음’은 가입자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겼는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가 2010년 7월 가입자 4명에게 8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다음은 수사기관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이 수사기밀 보호를 위해 해당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 재판장 최종한)는 지난해 1월 다음에 가입자들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하며, 다만 손해배상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인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용자인 원고들의 요구에 따라 원고들의 개인정보를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제공요청 또는 형사소송법상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에 따라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을 열람 또는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종합해보면 상황은 이렇다. 포털 쪽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가입자 정보를 수사기관에 마구 넘겨주고 있다. 헌재와 법원은 정반대 논리를 대며 영장주의에 위배되는 법률에 의해 한해 580만여건의 인터넷 가입자 정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오가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사이 하루 평균 1만6000여건의 가입자 개인정보가 수사기관 등에 흘러가고 있고,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차씨가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민사24부 재판장 김상준)가 오는 18일 판결을 내릴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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