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윤리적 소비 공모전 수상자 6명이 지난 9월2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방담을 하기 전 밝게 웃고 있다. 이세아, 최선인, 유은혜, 주세운, 김이경씨와 초등학생 수상자들, 정호영군.(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경제연구소
‘윤리적 소비 공모전’
‘윤리적 소비 공모전’
소비는 또다른 투표다. 우리가 소비생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과 국가가 흔들리는 가운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윤리적 소비도 중요해졌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 청소년과 청년들은 윤리적 소비를 어느 정도 알고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겨레경제연구소는 9월26일 ‘윤리적 소비 공모전’ 수상자 가운데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등 6명을 한자리에 모아 윤리적 소비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은 “많은 사람이 윤리적 소비를 잘 알지 못한다. 실제 윤리적 소비는 쉽지 않다. 걸림돌이 많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윤리적 소비는 소비를 넘어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방담에는 정호영(14·중학생)군과 유은혜(17·고등학생)양, 이세아(24·대학생)·최선인(26·청년모임활동가)·김이경(29·대학원생)·주세운(28· 구직중)씨가 참여했다.
수상자 6명 방담
정호영(이하 정): 주변 친구들을 보면 사실 윤리적 소비 자체를 모른다. 그나마 윤리적 소비를 아는 친구들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아는 정도다. 나는 학교에서 공정무역에 대해 알리려 온 분들의 수업을 듣고 윤리적 소비를 알게 됐다. 공모전에 참여하려고 인터넷에서 찾다 보니 윤리적 소비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더라.
유은혜(이하 유): 얼마 전까진 공정무역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을 단 커피가 비싸서 ‘바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홍보지를 보고 공정무역 동아리에 든 뒤 공정무역이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바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세아(이하 이): 나도 비슷한 이유로 윤리적 소비가 사치라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공정무역 커피는 기업들의 마케팅에 이용되는 유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믿질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 학교 학생들 일부가 모여 지역의 재래시장과 함께하는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선인(이하 최): 아프리카 여행을 가서 윤리적 소비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한 흑인 아주머니가 독거미에 물려 죽을 뻔한 나를 아무런 대가 없이 살려 줬다. 그분이 내가 하고 있는 금귀걸이를 보고 “금 캐는 일을 하다 죽는 흑인들이 많아 나는 금 장신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주머니같이 좋은 분들이 아프고 힘들어하는 걸 알게 되면서, 그때부터 윤리적 소비를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 보면
윤리적 소비 자체를 몰라
그나마 아는 친구들도
공정무역 초콜릿 아는 정도 김이경(이하 김): 윤리적 소비는 내게 불편한 주제다. 대학 들어가 공정무역을 알고 열심히 참여했다. 소비자의 측면을 너무 강조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졸업하면서 우리는 고용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임에도 기업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이런 관점이 강해질수록 소비하고 정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소비의 측면을 계속 강조한다고 과연 지속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윤리적 소비를 넘어 생산까지 고려되었으면 한다. 주세운(이하 주):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윤리적 소비를 생각할수록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나의 가능성에 한계를 느꼈다. 커피나 초콜릿을 즐기지 않으면서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일부러 공정무역 제품을 사 먹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절약이 이뤄져야 하듯, 윤리적 소비도 의미있는 제품을 사는 것만큼 재활용 등 소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 중학생들은 돈이 별로 없어 윤리적 소비를 실제로 하기 어렵다.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갖고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권유하는 게 윤리적 소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어려우니 지혜로운 소비라 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서 날 살려준 아주머니
“금 캐는 일을 하다
죽는 흑인들이 많아
금 장신구 안한다”고 말해 유: 사람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정확하게 안다면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알리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 가서 공정무역 알리기 교육을 할 계획이다. 물론 시중에서 공정무역 관련 제품을 사기가 너무 어렵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교육이나 인식 제고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윤리적 소비가 뭔지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기업이나 사회,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 주는 장이 있을 때 윤리적 소비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생이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하는 환경에 지쳤다. 생협을 계획하고 주최하는 학생회는 학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고 마이너리티에 가까운 집단이라 운동이나 움직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 호응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것 같다. 최: 공정무역 등 윤리적 제품을 사지 못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예를 들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옥상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혼자 할 때엔 힘들었는데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함께해서 신나고 즐겁다. 금융이나 투자 쪽에서도 소셜펀딩이나, 개발국 투자자들이 저개발국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공공펀딩인 ‘키바’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힘을 키우면 좋겠다. 윤리적 소비가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가슴 아프지만 현실 김: 이자를 조금 더 준다든지, 조금 더 싸다든지 등 사소하고 조그마한 차이로 생각과 다른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사정에 맞춰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런 게 바뀌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윤리적 소비를 쉽게 설명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다. 주: 윤리적 소비가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개별 소비자에 대한 형태로 보게 되면 계속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공공기관에서도 윤리적 소비가 활성화되고 제도적으로 정착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정리/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부소장 hslee@hani.co.kr
작은병원 옥상 텃밭이 가져온 기적
필리핀에 ‘패키지-공정’ 2번 여행기
미 아이오와 옥수수밭 파헤치기도 눈길 끈 응모작 해마다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들어오는 응모작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읽을 수 있다. 올해 응모작의 특징은 다루는 소재의 폭이 넓어지고 경험도 국제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커피·초콜릿 등의 공정무역과 ‘아나바다’ 유의 알뜰소비에 대한 것이 많았으나, 올해는 공정여행·도시농업·로컬푸드 등으로 넓어졌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의 윤리성을 의식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인 수상작 가운데 <그 옥상의 일년>(이세아 작)은 잿빛 콘크리트의 삭막함을 녹색의 싱싱함으로 바꿔주는 도시농업 사례를 다루고 있다. 첫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아버지가 다시 안착한 서울 변두리의 작은 병원. 담배꽁초가 나뒹굴던 병원 옥상에 아버지가 상추와 토마토를 심으며 텃밭을 꾸렸을 때 병원 직원들은 모두들 심드렁해했다. 하지만 햇볕과 바람을 쐬고 조금씩 새순이 올라오자 병원 식구들은 모두 아이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고, “아파 죽겠다”고 짜증을 달고 살던 입원병동 할머니들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불편한 허리를 구부리고서 잡초를 솎아내고 일일이 벌레를 잡아주는 할머니들의 정성에 힘입어 채소들은 싱싱하게 자랐다. 직원과 환자들이 텃밭 앞에 모여 웃고 떠들며 서로 끈끈함을 느끼는 가운데 병원의 침울함은 어느새 사라졌다고 이씨는 수기에서 밝힌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임은희양(대전 반석고)은 필리핀을 한번은 패키지 여행으로, 또 한번은 공정여행으로 다녀오며 느낀 차이를 <공정여행 속엔 윤리적 소비가 콸콸콸>이란 수기에 담았다. 어학연수 때는 호텔에서 먹고 자고, 주말이면 고급 렌터카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여행을 했던 임양. 하지만 사회적 기업인 여행사를 통해 필리핀을 다시 찾으며 임양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공정여행이 좁고 불편한 필리핀 국적기를 굳이 이용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소를 찾는 것은, 여행이 그 나라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행을 하면 패키지 여행 때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임양은 동생뻘인 필리핀 아이들이 신발도 없이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썼다.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지만 차츰 무너져가는 필리핀의 계단식 논을 보수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밝힌다.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윤리적 소비를 느끼고 실천하게 된 계기를 찾은 이들도 많았다. 일반부문 수상작인 <아름다움을 구매하는 작은 방법>(최선인 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하던 중, 무심코 달고 있던 금귀걸이를 계기로 마주하게 된 국제 귀금속 유통의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다. 현지 여행중에 친해진 흑인 뮤리얼 아주머니는 최씨가 달고 있는 금귀걸이를 보자 “유난히 예뻐 보인다”면서도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주머니는 “나는 금귀걸이는 못해”라며 “나뿐 아니라 흑인들은 가난하고 못살아서 (보석 치장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나온 시에라리온 광산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꼭 다이아몬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최씨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구매한 보석이 지구 반대편 흑인 아이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인터넷 서핑이라도 해서 확인해 보는 소비자의 지혜를 발휘하자고 제안한다. 일반부문 수상작인 김혜연씨의 <커피 한잔의 행복도 포기할 수 있을까?>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보고 느낀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옥수수는 가축 사료로 쓰이는데, 이를 먹인 가축은 빠르게 자라고 살을 많이 찌울 수 있다. 하지만 풀을 먹인 가축에 비해 면역력이 약해 항생제를 늘 달고 살아야 하고, 고기의 영양성분도 균형이 깨져 있다. 김씨는 이런 것들을 보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 삶의 방식, 소비의 방식과 의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밝힌다. 원낙연 이로운넷 이사는 “윤리적 소비의 소재가 넓어지고 지역적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느낀 것들이 출품됐다”며 “윤리적 소비가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지구적 이슈이자 화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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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소비 자체를 몰라
그나마 아는 친구들도
공정무역 초콜릿 아는 정도 김이경(이하 김): 윤리적 소비는 내게 불편한 주제다. 대학 들어가 공정무역을 알고 열심히 참여했다. 소비자의 측면을 너무 강조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졸업하면서 우리는 고용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임에도 기업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이런 관점이 강해질수록 소비하고 정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소비의 측면을 계속 강조한다고 과연 지속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윤리적 소비를 넘어 생산까지 고려되었으면 한다. 주세운(이하 주):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윤리적 소비를 생각할수록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나의 가능성에 한계를 느꼈다. 커피나 초콜릿을 즐기지 않으면서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일부러 공정무역 제품을 사 먹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절약이 이뤄져야 하듯, 윤리적 소비도 의미있는 제품을 사는 것만큼 재활용 등 소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 중학생들은 돈이 별로 없어 윤리적 소비를 실제로 하기 어렵다.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갖고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권유하는 게 윤리적 소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어려우니 지혜로운 소비라 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서 날 살려준 아주머니
“금 캐는 일을 하다
죽는 흑인들이 많아
금 장신구 안한다”고 말해 유: 사람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정확하게 안다면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알리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 가서 공정무역 알리기 교육을 할 계획이다. 물론 시중에서 공정무역 관련 제품을 사기가 너무 어렵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교육이나 인식 제고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윤리적 소비가 뭔지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기업이나 사회,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 주는 장이 있을 때 윤리적 소비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생이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하는 환경에 지쳤다. 생협을 계획하고 주최하는 학생회는 학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고 마이너리티에 가까운 집단이라 운동이나 움직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 호응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것 같다. 최: 공정무역 등 윤리적 제품을 사지 못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예를 들어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옥상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혼자 할 때엔 힘들었는데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함께해서 신나고 즐겁다. 금융이나 투자 쪽에서도 소셜펀딩이나, 개발국 투자자들이 저개발국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공공펀딩인 ‘키바’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힘을 키우면 좋겠다. 윤리적 소비가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가슴 아프지만 현실 김: 이자를 조금 더 준다든지, 조금 더 싸다든지 등 사소하고 조그마한 차이로 생각과 다른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사정에 맞춰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런 게 바뀌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윤리적 소비를 쉽게 설명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해야 지속될 수 있다. 주: 윤리적 소비가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개별 소비자에 대한 형태로 보게 되면 계속 사치 아닌 사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공공기관에서도 윤리적 소비가 활성화되고 제도적으로 정착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정리/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부소장 hslee@hani.co.kr
작은병원 옥상 텃밭이 가져온 기적
필리핀에 ‘패키지-공정’ 2번 여행기
미 아이오와 옥수수밭 파헤치기도 눈길 끈 응모작 해마다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 들어오는 응모작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읽을 수 있다. 올해 응모작의 특징은 다루는 소재의 폭이 넓어지고 경험도 국제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커피·초콜릿 등의 공정무역과 ‘아나바다’ 유의 알뜰소비에 대한 것이 많았으나, 올해는 공정여행·도시농업·로컬푸드 등으로 넓어졌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의 윤리성을 의식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반인 수상작 가운데 <그 옥상의 일년>(이세아 작)은 잿빛 콘크리트의 삭막함을 녹색의 싱싱함으로 바꿔주는 도시농업 사례를 다루고 있다. 첫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아버지가 다시 안착한 서울 변두리의 작은 병원. 담배꽁초가 나뒹굴던 병원 옥상에 아버지가 상추와 토마토를 심으며 텃밭을 꾸렸을 때 병원 직원들은 모두들 심드렁해했다. 하지만 햇볕과 바람을 쐬고 조금씩 새순이 올라오자 병원 식구들은 모두 아이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고, “아파 죽겠다”고 짜증을 달고 살던 입원병동 할머니들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불편한 허리를 구부리고서 잡초를 솎아내고 일일이 벌레를 잡아주는 할머니들의 정성에 힘입어 채소들은 싱싱하게 자랐다. 직원과 환자들이 텃밭 앞에 모여 웃고 떠들며 서로 끈끈함을 느끼는 가운데 병원의 침울함은 어느새 사라졌다고 이씨는 수기에서 밝힌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임은희양(대전 반석고)은 필리핀을 한번은 패키지 여행으로, 또 한번은 공정여행으로 다녀오며 느낀 차이를 <공정여행 속엔 윤리적 소비가 콸콸콸>이란 수기에 담았다. 어학연수 때는 호텔에서 먹고 자고, 주말이면 고급 렌터카를 타고 유명 관광지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여행을 했던 임양. 하지만 사회적 기업인 여행사를 통해 필리핀을 다시 찾으며 임양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공정여행이 좁고 불편한 필리핀 국적기를 굳이 이용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숙소를 찾는 것은, 여행이 그 나라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행을 하면 패키지 여행 때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임양은 동생뻘인 필리핀 아이들이 신발도 없이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썼다. 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지만 차츰 무너져가는 필리핀의 계단식 논을 보수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밝힌다.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윤리적 소비를 느끼고 실천하게 된 계기를 찾은 이들도 많았다. 일반부문 수상작인 <아름다움을 구매하는 작은 방법>(최선인 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하던 중, 무심코 달고 있던 금귀걸이를 계기로 마주하게 된 국제 귀금속 유통의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다. 현지 여행중에 친해진 흑인 뮤리얼 아주머니는 최씨가 달고 있는 금귀걸이를 보자 “유난히 예뻐 보인다”면서도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주머니는 “나는 금귀걸이는 못해”라며 “나뿐 아니라 흑인들은 가난하고 못살아서 (보석 치장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나온 시에라리온 광산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꼭 다이아몬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최씨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구매한 보석이 지구 반대편 흑인 아이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인터넷 서핑이라도 해서 확인해 보는 소비자의 지혜를 발휘하자고 제안한다. 일반부문 수상작인 김혜연씨의 <커피 한잔의 행복도 포기할 수 있을까?>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보고 느낀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옥수수는 가축 사료로 쓰이는데, 이를 먹인 가축은 빠르게 자라고 살을 많이 찌울 수 있다. 하지만 풀을 먹인 가축에 비해 면역력이 약해 항생제를 늘 달고 살아야 하고, 고기의 영양성분도 균형이 깨져 있다. 김씨는 이런 것들을 보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 삶의 방식, 소비의 방식과 의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밝힌다. 원낙연 이로운넷 이사는 “윤리적 소비의 소재가 넓어지고 지역적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느낀 것들이 출품됐다”며 “윤리적 소비가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지구적 이슈이자 화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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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팡에 빠진 의원님은 누구일까요?
연재싱크탱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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