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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토 달지 말고 보내주는 대로 믿고 받아먹으세요”

등록 2012-09-13 19:42수정 2012-09-14 10:20

2009년 7월에 시작한 경북 상주군 외서면의 봉강공동체 여성 농민들이 꾸러미 포장을 하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언니네텃밭사업단 제공
2009년 7월에 시작한 경북 상주군 외서면의 봉강공동체 여성 농민들이 꾸러미 포장을 하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언니네텃밭사업단 제공
[99%의 경제]
여성농민들 채소꾸러미 사업 ‘언니네텃밭’
나주와 광주
나주 여성 11명이 화요일마다
각자 기른 채소·반찬류를
꾸러미 상자로 포장한다
광주 40곳 집집마다 직접 배달

강원도 횡성에서 시작
벌써 3년…지금은 15곳에서
생산자 140명 회원 1200명
회원들에 월 10만원씩 받아
월 60~70만원대 수입

고자세 마케팅
골라 사먹던 소비자 불편해도
여성들이 텃밭서 가꾼 ‘무농약’
그날 수확한 채소 그날 배달
“너무 싱싱” 반응 덕에 날개

#전남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의 여성 농민 김원숙(46)씨는 화요일 오후마다 자동차를 몰고 광주광역시를 훑고 다닌다. 2명이 나눠 꾸러미 상자 40개를 집집마다 다 배달하는 데 5시간이 걸린다. “보안장치 때문에 아파트 배달이 힘들어요. 그래도 회원들에게 그날 채소를 먹여야죠. 택배에 맡기면 하루 묵히게 되고 비용도 들어 가거든요. 회원들 얼굴 직접 대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김씨가 이끌어가는 사회적기업 ‘언니네텃밭’ 나주공동체의 여성 농민 생산자는 11명. 60대 이상이 8명이다. 화요일마다 각자 기른 채소와 반찬류를 김씨의 배밭 옆 작업장으로 가져와 꾸러미 상자로 포장한다. 시끌벅적 수다판이 벌어진다.

“남자들은 기계 써서 큰 농사만 지으려 하잖아요. 땅 좁은 나라에서 50평, 100평 텃밭을 그냥 놀리고 있지요. 우리는 농약도 제초제도 쓰지 않고 ‘제 식구 먹이는 농사’를 짓습니다. 여성 농민들이 텃밭을 살리고 있는 거죠. 할머니들도 같이 일할 수 있어요.”

나주공동체의 언니네텃밭 꾸러미를 받아먹는 광주 지역의 회원은 40명이다. 한때 70명까지 늘어난 적도 있었다. 김씨는 “꾸러미 사업이 여성 농민의 자존감을 높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은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 여성 농민 통장으로 꼬박꼬박 현금이 쌓이잖아요. 텃밭에서 뭘하겠냐고 시큰둥하던 남편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가정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탄탄해졌지요.” 꾸러미를 매주 받는 소비자가 내는 월회비는 10만원이다. 배달과 관리비용을 빼고, 7만원 이상이 여성 농민의 통장으로 입금된다.

“원하는 대로 골라 먹던 소비자들이 불편한 꾸러미에 잘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떨어져나가는 회원들도 적지 않아요. 사업이 쉽지 않지만, 회원이 100명까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김씨의 희망이다. 2010년 말에 뒤늦게 시작한 나주공동체의 수입은 언니네텃밭의 다른 공동체들보다 제법 많이 모자라는 편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박경희(오른쪽)씨가 11일 제철 채소 꾸러미를 받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왼쪽은 언니네텃밭사업단의 윤정원 사무장이다. 언니네텃밭사업단 제공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박경희(오른쪽)씨가 11일 제철 채소 꾸러미를 받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왼쪽은 언니네텃밭사업단의 윤정원 사무장이다. 언니네텃밭사업단 제공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작은 연립주택. 박경희(45)씨가 채소 꾸러미를 받아 들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늙은 호박이네요. 쌀가루까지. 오늘은 아이들 좋아하는 호박죽 끓여야겠어요. 태풍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폭등해도 우리는 걱정없어요.” 꾸러미 상자 안에는 ‘태풍에도 살아남은’ 노지 상추와 들깻잎이 방사 유정란, 무농약 청양고추와 함께 들어 있었다. 손으로 담가 만든 고구마대김치, 매실장아찌, 매집장(장류 반찬의 일종)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박씨는 화요일마다 강원도 횡성의 여성 농부들이 생산한 꾸러미 채소를 받아먹는 재미를 만끽한다. “용산 지역 꾸러미 회원들은 시골에서 보낸 채소를 그날 받아먹어요. 너무 싱싱해요. 우리 동네는 근처의 여성민우회생협 ‘행복중심’ 매장에서 조합원들에게 직접 배달해주지요.”

작은 식당을 하는 박씨는 일곱살, 네살 두 딸아이를 위해 올 5월부터 언니네텃밭 꾸러미 회원으로 가입했다. 6월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 횡성의 공근면 오산리의 언니네텃밭 공동체를 다녀왔다. 신나게 옥수수를 심고 고구마 순을 옮겨심었던 아이들은 그 뒤로 꾸러미가 오면 서로 먼저 달려간다. “‘내가 심은 거’라고 팔짝팔짝 뛰고, 별로 맛이 없는데도 ‘진짜 맛있다’며 잘 먹어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2009년말 횡성에서 월회원 21명으로 제철 채소를 배달하는 ‘언니네텃밭’의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윤정원 사무장은 “‘얼굴 있는 생산자 여성 농민’과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유기농 이상의 자연순환농사를 짓고, 각 공동체에서 가까운 도시지역으로 공급하는 ‘로컬푸드’ 원칙을 실천한다. 석유를 때서 겨울 비닐하우스의 온도를 높이는 농사는 금기사항이다. 아직은 택배 배달이 더 많지만, 전남 나주와 서울 용산처럼 당일로 배달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회원 수가 올 6월 말 1200명 수준으로, 꾸준한 성장의 길을 달리고 있다. 횡성 1곳으로 시작했던 생산공동체가 불과 3년 사이에 15곳으로, 여성 농민 생산자는 140여명으로 늘어났다. 여성 농민 1명이 평균적으로 9명의 회원을 책임지고, 60만~70만원대의 월 수입을 올린다. 지난해에는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김은진 교수(원광대)는 “언니네텃밭 사업의 기본전략은 농민 생산자 중심의 철저한 고자세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토를 달지 말고 ‘보내주는 대로 믿고 받아먹도록’ 처음부터 도시 소비자를 교육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고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가다 보면, 대규모 공장 가공을 돌릴 수밖에 없고 결국 중소농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허남혁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여러 꾸러미 사업체 중에서도 소비자에게 가장 불편한 언니네텃밭이 오히려 더 성공적”이라며 “가치지향 마케팅의 독특한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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