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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퀘벡인구 70%가 조합원…세계서 가장 안전한 은행 20위

등록 2012-08-16 19:37수정 2012-08-17 09:49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데자르댕 본사 모습. 4개의 건물이 하나의 복합빌딩을 형성하는 몬트리올의 랜드마크이다.  몬트리올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데자르댕 본사 모습. 4개의 건물이 하나의 복합빌딩을 형성하는 몬트리올의 랜드마크이다. 몬트리올
[99%의 경제]
북미 최대 신협 ‘데자르댕’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협동조합이 지역경제의 30%를 담당한다. 스페인의 노동자협동조합인 몬드라곤은 국내 7~8위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참 좋은 모델이지만, 우리가 본받아 따라 하기에는 멀어 보인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의 취재지원을 받아 우리에게 좀더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캐나다의 퀘벡 지역을 찾았다.

탄생 배경
금리 3000% 고리채 횡행
1900년 퀘벡시
데자르댕 부부가
새로운 신협 모델 고안했다

놀라운 성장기
시골농부들 다달이 10센트
110년 동안 불린 자산이
지난해 216조원
조합원 배당 4500억

소규모 대출 미회수율 0%
파생상품엔 아예 손안대
민주적 운영에 지역사회 기여
조합원 충성심·신뢰 높아
‘사회적 금융’ 선도자 구실

데자르댕(Desjardins)이었다. 퀘벡에서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도, 데자르댕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북미 최대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댕은 퀘벡의 크고 작은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의 대부이고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주역이었다.

데자르댕은 퀘벡시의 세인트로렌스 강 너머에 있는 레비에서 1900년에 탄생했다. “퀘벡의 프랑스계 사람들은 가난했어요. 시내에서 멀어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고, 고리채 금리는 3000%까지 치솟았지요. 보다 못해 알퐁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가 이 지역에 적합한 새로운 신협 모델을 고안했습니다.” 데자르댕 기념관의 역사학자인 피에르 풀랭의 설명이다. 데자르댕 부부는 가난한 사람들도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5달러의 출자금을 주 10센트씩 1년에 나눠 내도록 했다. 데자르댕 모델은 그 뒤 미국으로 전파돼 9000여개의 신협을 낳았다.

데자르댕의 오늘은 화려하다. 가난한 시골농부들이 다달이 10센트씩 모아 110여년 동안 불린 자산이 지난해에 216조원이나 됐고, 1년 순이익만도 1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4대 금융지주에도 별로 뒤지지 않은 규모이다. 1979년에 세운 거대한 복합건물은 퀘벡주 최대 도시인 몬트리올의 랜드마크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데자르댕의 주인인 조합원은 580만명으로 800만명에 육박하는 퀘벡 주 전체 인구의 70%를 넘어서고, 직원만 4만7000명에 이른다.

데자르댕의 금융건전성은 더욱 돋보인다. 자기자본비율이 17.3%로, 13~14%대인 주요 은행을 능가한다. 부실채권비율은 0.43%로, 미국의 1.87%, 캐나다 은행 평균 0.79%보다 훨씬 낮다. 파생상품이나 서브프라임모기지 같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파생상품 거래규모를 묻자, 데자르댕의 한 직원은 “파생상품,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데자르댕과 무관해 보였다. 지난해에 14.4%의 매출성장세를 구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 20위로 올라섰다.

조합원들한테는 4500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예를 들어, 6만5000달러의 주택대출(모기지)을 받은 조합원의 경우 1년 동안 납입했던 이자총액의 16%에 해당하는 300달러를 배당으로 돌려받았다고 한다.

지난 3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데자르댕의 연례 총회에서 1300명 조합원이 모니크 르루의 연설을 듣고 있다.
 몬트리올/데자르댕 제공
지난 3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데자르댕의 연례 총회에서 1300명 조합원이 모니크 르루의 연설을 듣고 있다. 몬트리올/데자르댕 제공
데자르댕 설립자인 알퐁스 데자르댕의 초상화 앞에서 선 홍보담당자들. 가운데가 홍보책임자인 장미셸 라베르주. 몬트리올
데자르댕 설립자인 알퐁스 데자르댕의 초상화 앞에서 선 홍보담당자들. 가운데가 홍보책임자인 장미셸 라베르주. 몬트리올

데자르댕은 퀘벡주에서 가장 큰 거대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지만, 민주주의와 지역사회 기여라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내세우고 실천한다. 데자르댕이 퀘벡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이유이다. 홍보 책임자인 장미셸 라베르주는 데자르댕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강조했다. “17곳으로 나뉜 각 지역 데자르댕에서 255명의 대의원을 포함해 모두 5900명의 선출직이 뽑힙니다. 경영 판단에 조합원의 뜻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지요. 연차 총회에는 1300명의 지역 조합원이 참석합니다.”

피에르 풀랭은 “데자르댕 조합원의 32%가 농촌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캐나다 은행 고객 가운데 농촌 거주자가 평균 2%에 그치는 점과 크게 대비된다. 그는 또 “다른 은행들이 수익성 낮은 농촌 점포를 폐쇄할 때 데자르댕은 거꾸로 인수에 나섰다”며 “협동조합이기에 수익성이 낮더라도 조합원한테 다가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데자르댕의 철저한 협동조합 원칙은 조합원의 충성심과 사회적 신뢰를 높이면서 종국적으로 데자르댕의 수익성 향상에 기여했다. 데자르댕 사람들은 소규모 대출인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미회수율이 0%라는 점을 자랑한다. 일반 은행에서 거래를 기피하는 신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또는 영세 업체에 대해 500~1000달러씩 연 수백만달러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벌이는데, 지금까지 떼인 돈이 한푼도 없다는 것이다.

데자르댕은 1970년대부터 연대저축기금을 만들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에 대한 금융지원의 토대를 구축했다. 데자르댕의 이런 노력은 주정부와 시민사회가 ‘사회적 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드는 선도자 구실을 했다. 몬트리올의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 또한 데자르댕 연대기금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데자르댕은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합원들에 대한 경제교육을 중시한다. “소비하기 전에 생각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민들에게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성을 심어준다. 데자르댕은 최근 순이익의 1%(올해 180억원)를 경제교육에 추가로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몬트리올·퀘벡/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데자르댕, 전체 협동조합 경제의 버팀목”

‘퀘벡 사회적경제’ 연구 김창진 교수
‘퀘벡 사회적경제’ 연구 김창진 교수
인터뷰/ ‘퀘벡 사회적경제’ 연구 김창진 교수

퀘벡의 사회적 경제를 연구해온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부·사진)는 “퀘벡의 ‘사회적 경제’는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살아 있어 우리 사회가 배우기에 의미있는 모델”이라면서도 “시간의 시험대를 견뎌내야 한다”고 말했다. 퀘벡 취재에 동행한 김 교수를 현지에서 인터뷰했다.

-퀘벡 사회적 경제의 특징은?

“비영리부문까지 합치면 전체 경제의 8~10%쯤 될 것이다. 특히 금융부문에서 신용협동조합이 강력해 데자르댕이 전체 협동조합 경제의 버팀목 노릇을 한다. 우리는 재벌이 시혜를 베풀듯이 사회공헌에 나서지만, 여기에서는 협동조합이 오히려 사기업과 지역사회를 지원한다. 농업 부문에서도 협동조합이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상조, 노인돌봄, 주유소 등의 협동조합이 돋보이고, 앰뷸런스와 택시 노동자들의 협동조합도 잘 운영된다. 우리의 사회적협동조합과 유사한 연대협동조합의 결성이 활발하다.”

-사회적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1980년까지 퀘벡 정부의 조용한 혁명이 사회적 경제와 긴밀한 파트너십(제휴)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보수 정당이 들어서더라도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영역을 흔들 수 없다. 무엇보다 데자르댕을 중심으로 한 재정적 기반이 아주 튼튼하다. 관련 법령이 잘 정비돼 있어, 기금과 세제 등을 통한 정부지원이 다면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주정부는 지원을 권한으로 인식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당연히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로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지역개발사업은 정부의 몫이었지만, 퀘벡에서는 협동조합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시도한다. 주정부 입장에서도 협동조합이 나서면 예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관이 나서서 민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민의 주도로 관이 결합하는 퀘벡 방식을 눈여겨볼 만하다. 17곳의 ‘지역개발 협동조합 네트워크’(CDR) 활동도 중요하다.”

-사회연대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데자르댕을 필두로 국가부문과 각 노동운동 단체에서 수십억~수천억원 규모의 다양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전체 사회적 경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간부들부터 협동조합을 알아야 하고, 사회연대기금 설치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퀘벡의 교훈이다.”

몬트리올/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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